말 안 통하고, 반목하던 이들을 묶어낸 ‘빵과 장미’[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8. 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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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과 장미
브루스 왓슨 지음│홍기빈 옮김│빵과장미
1912년 美 ‘로렌스 섬유 파업’
빵 한조각 끼니 때우는 환경속
임금 삭감 겹치며 노동자 투쟁
생존권·인간답게 살 권리 외쳐
美남성만 조직화하던 AFL 대신
IWW, 인종·성별 없이 받아들여
전국적 모금운동 등 지지 끌어내
1912년 1월부터 3월까지 일어난 ‘로렌스 섬유 파업’에는 51개국 2만8000명의 노동자들이 국가는 물론 연령과 성별을 넘어 동참했다. zinnedproject.org 제공

“파업!”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뜻의 한 단어를 외친다. 함께 외치는 이들은 독일, 이탈리아 등 51개국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미국 북동부의 공업 도시 로렌스로 건너온 이민자이자 노동자들이다.

오늘날의 미국 사회를 표현하기 위해 가장 빈번히 동원되는 단어 ‘멜팅팟’(Melting pot·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에서 여러 인종·민족·문화가 뒤섞여 하나로 동화되는 것)은 현재의 시대성을 담아 여러 문화권의 유색인종을 아우르는 평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미국은 흑인 인권운동과 남북전쟁 이전부터 전 세계 이민자들이 모여 발전을 거듭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외부자의 시선에서 지금은 비슷한 백인으로 보일 수 있는 그들도 한때는 이방인이었다. 이 책에는 이들이 오래전부터 하나로 동화돼 온 역사가 담겨 있다.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메사추세츠주 로렌스시를 뒤덮었던 방직공장 노동자 2만8000명의 함성은 ‘로렌스 섬유 파업’이라는 직설적 명칭보다 ‘빵과 장미 파업’이라는 은유적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존권을 의미하는 빵과 인간답게 살 권리를 뜻하는 장미라는 이미지를 넘어 실제 로렌스 섬유 파업의 역사적 가치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미국에도 많지 않다.

당연한 일이지만 서로 다른 나라에서 모인 이주노동자들은 공용어인 영어 사용에 능숙하지 않아 소통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방직 공장 노동자라는 단순 노무를 맡아 한 집단이 파업할 때 다른 집단은 오히려 대체 노동의 기회를 잡는 식으로 반목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은 1912년 1월 1일 주당 노동시간이 56시간에서 54시간으로 감소하고 임금도 삭감되자 결국 공장을 멈춰 세웠다.

이들의 단결을 이끌어 낸 촉매제는 두 가지였다고 책은 말한다. 첫째는 극도로 열악한 노동 환경이다. 로렌스의 이주노동자들은 좁은 방 한 칸에서 6∼8명이 부대낀 채 피곤에 지쳐 쓰러져 새우잠을 자고 빵 한 조각으로 간신히 허기만 달랜 후 일하러 나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높은 영아 사망률을 기록할 정도로 열악한 삶이었다. 삭감당한 임금은 불과 24센트에 불과했지만 이는 당시 기준 빵 3∼4덩이를 구입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간절한 것이었기에 마침내 뜻을 모았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의 등장에 있었다. 로렌스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고자 했을 때 미국인 남성 숙련공만을 조직화하려 했던 미국노동조합총연맹(AFL)은 그들을 외면했다. 반면 새롭게 결성된 IWW는 연령과 인종, 성별에 상관없이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 모두를 끌어안았다.

로렌스 섬유 파업은 하나의 산업을 아우른 동반 파업의 첫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동시에 여러 노동운동 전략의 실험대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파업 장기화로 인한 극심한 빈곤을 오히려 동력으로 삼았다. 전국의 파업 지지자들로부터 모금을 진행했으며 종국에는 로렌스 이주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을 뉴욕의 지지자 가정으로 보내 미국 전역에 파업 사실을 알리고 연방 정부 차원의 대응까지 이끌어냈다. 여성들은 노동운동과 가정 사이에서 헌신했다.

그러나 20세기 노동사에서 이토록 중요한 사건이 지금껏 덜 알려진 원인에는 사상적인 배척이 있었다고 책은 주장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을 목격한 미국 사회는 일명 ‘빨갱이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삼았던 IWW 활동가들이 개입한 파업을 사상적 반란으로 치부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2000건 넘는 주석을 달 정도로 방대한 기록을 종합해 파업 이후 노동자와 IWW 활동가들의 삶을 추적한다. 이로써 IWW 활동가들이 로렌스 노동자들의 사상을 변화시키지 못했고 파업이 끝난 후엔 각자 삶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1세기가 넘는 시간과 미국이라는 공간을 넘어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빵과 장미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어느덧 산업과 노동의 형태가 크게 달라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또한 간접고용, 플랫폼 노동이 만연한 시대에 기존의 노동조합이 어떻게 노동자를 아우르며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해 무거운 고민을 던진다. 544쪽, 2만95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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