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명품백 직무관련성' 근거 된 '조국 뇌물 무죄'…수심위 판단은?

원종진 기자 2024. 8. 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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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과 뇌물죄에서의 '직무관련성' 범위는?

다음 주 금요일(9월 6일),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의혹' 사건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립니다. <청탁금지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부인이 연루된 이번 사건에서, 김 여사가 제공받은 '명품 가방'이 공직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이 돼 왔습니다. 무혐의 결론을 내린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 수사팀은, 일반 시민이 포함된 수사심의위원들을 상대로 김 여사가 제공받은 '명품 가방'이 공직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논리를 전개할 예정입니다. 이번 취재파일에서는 수사심의위 개최 1주일을 앞두고, 검찰이 어떤 근거로 이런 논리를 구성하고 있는지, 검찰 논리와 다른 시각은 없는지 면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또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어온 이번 사건의 의미와 파장에 대해서도 되짚어보겠습니다.
 

검찰의 '직무관련성' 해석 근거 된 '조국 부산대 의전원 뇌물 무죄'


<청탁금지법>은 본래 '직무관련성과 상관없이' 공직자가 금품수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민간인 신분일 수 있는 공직자 배우자의 경우에는 '직무와 관련'해서만 금품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했습니다. 배우자가 공직자라는 이유로 사적인 선물 교류 등을 제한받는 건 과도한 자유의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직자의 배우자가 단독으로 금품을 받았을 때 핵심은 '직무관련성'의 해석 문제입니다. 그런데 <청탁금지법> 주관부서인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해설집(2024)]에서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3)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의 의미
- 직무수행의 공정성을 의심받게 하는 금품등의 수수를 금지하고 있는 입법 취지에 비추어 「형법」상 뇌물죄의 직무관련성과 같은 의미

- 청탁금지법상 직무는 '공직자등이 그 지위에 수반하여 취급하는 일체의 사무'를 의미
:법령상 관장하는 직무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또는 관례상・사실상 소관하는 직무행위 및 결정권자를 보좌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직무행위도 포함(99도5753)

- 직무관련성 판단 시 공직자등의 직무 내용, 직무와 금품등 제공자의 관계, 쌍방 간에 특수한 사적인 친분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금품등의 다과, 금품등을 수수한 경위와 시기 등의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판단

즉,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에 생기는 '직무관련성' 문제를 해석할 때는, 형법상 뇌물죄를 적용할 때 쓰이는 '직무관련성'의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는 해석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도를 따르면, <청탁금지법>상 배우자 금품수수의 '직무관련성'을 법리적으로 따지는 과정은 뇌물죄 사건과 유사하게 흘러가게 됩니다.
 
형법 제129조(수뢰, 사전수뢰) ①공무원 또는 중재인이 그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 요구 또는 약속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영부인이 연루된 <청탁금지법> 사건을 수사하게 된 검찰 수사팀은 권익위가 제시한 해석 기준을 따른 것으로 파악됩니다. 배우자의 금품수수로 인한 청탁금지법 위반 기소 사례가 매우 드문 상황. 검찰은 '직무관련성'이 쟁점이 된 최근의 뇌물죄 판례들을 검토했는데, 조국 의원의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수수 뇌물 무죄' 사건이 중요 케이스 중 하나가 된 걸로 전해집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조국 의원이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당시, 노환중 전 부산의료원장으로부터 딸의 부산대 의전원 장학금 명목으로 받은 600만 원이 '뇌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사와 재판에서 검찰은 가계 곤란이나 성적 우수 등의 사유가 없는 딸 조 씨가 장학금을 받은 건 민정수석 '직무와 관련해' 받은 뇌물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검찰은 당시 부산대병원 본원 원장 지원을 앞두고 있었던 노 원장이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하는 민정수석실 지원을 기대하고 장학금을 뇌물로 줬다는 논리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노 원장이 나중에는 사비까지 털어 지급한 장학금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직무관련성'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노 원장이 가려고 한 부산대 본원 병원장 자리는 민정수석실의 정식 인사검증 대상이 아니고 ▲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 '직무와 관련해서' 돈을 받는다는 고의적 인식이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뇌물죄 무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는 특히 "이익을 수수할 당시 장래에 담당할 직무에 속하는 사항이 그 수수한 이익과 관련된 것임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면 직무에 관해 수수되었다거나 그 대가로 수수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뇌물죄에서 '직무관련성'을 따질 때 금품의 수수와 '직무관련성'이 구체적으로 확인돼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법원은 이러한 논리들을 근거로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 공직자였으므로 <청탁금지법>의 처벌 대상은 되지만, '직무관련성'이 명확히 입증돼야 하는 뇌물죄의 처벌 대상은 아니라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김 여사 명품가방 의혹 수사팀은 이 사건을 포함한 뇌물죄 사건들의 '직무관련성' 해석 사례 등을 근거로, 김 여사와 최재영 목사가 명품 가방을 주고받은 일의 '직무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최 목사가 검찰 조사에서 '구체적 청탁 목적이라기보다는 분위기를 보기 위한 만남 목적 내지 위장 취재 목적으로 디올 가방을 제공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남긴 점 ▲최 목사가 공적 지위에 있는 '직무대상자'가 아니라는 점 ▲최 목사가 명품 가방 제공 뒤 전달했다는 청탁들이 시간상 너무 떨어져 있거나 (통일TV 송출 재개) ▲직무와 관련한 청탁이 전달ㆍ실현되지 않은 점 (김창준 국립묘지 안장, 금융위원 인사청탁) 등이 중요 판단 근거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년여 전 검찰은 조국 의원에게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하며 '직무관련성'을 넓게 해석했지만, 그 논리가 법원에 의해 막히게 되었고, 지금은 이를 김건희 여사 무혐의 결론의 주요 근거들 중 하나로 삼게 된 아이러니컬한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청탁금지법의 '직무관련성', 뇌물죄와 같게 봐야 하나?


이번 사건 수사에서 전담수사팀 구성을 직접 지시하며 '국민 눈높이'를 여러 차례 강조한 이원석 검찰총장도 수사팀 결론을 보고받은 뒤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수긍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권익위 해석과 같이 구도가 비슷한 뇌물죄 사건을 기준으로 '직무관련성'을 판단한 수사팀 논리 구조에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청탁금지법을 연구하는 법학자들 여럿도 이러한 해석이 국민정서상으론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겠지만, 적어도 법리적 근거가 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김건희 여사가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를 할 것이고 감성적으로는 부적절하니 어떻게든 형사적 책임을 누군가에게 지워야 한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운데, 어쨌든 배우자의 경우 공직자의 어떤 직무와 관련돼서 금품을 받았는지, 또 직무와 관련해서 받았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등을 명확하게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신봉기/청탁금지법 연구회 회장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그런데 대통령 부인이 연루돼 두고두고 <청탁금지법>상 배우자 규율의 '리딩케이스'가 될 수밖에 없는 이 사건 수사심의위에서 '직무관련성'의 해석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 여지도 있습니다. 법학계의 다수 의견은 아니지만, 법 취지에 비춰봤을 때 <청탁금지법>에서 규정한 '직무관련성'은 뇌물죄에서의 '직무관련성'보다 더 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박상흠 변호사가 낸 논문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의 개념]이 대표적입니다.

박 변호사는 논문에서 <청탁금지법> 8조 3항 2호의 예외 규정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청탁금지법> 8조 2항은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해서는 대가성 여부를 불문하고 100만 원 이하의 금품도 받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8조 3항을 통해 예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품들을 규정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3항에 나열된 바에 따르면,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 등의 목적으로' 선물 등을 제공하는 경우라 하더라도,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 (5만 원, 10만 원 등) 안에서만 허용토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뇌물죄 판례에서는 관계자와의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를 목적으로 할 경우에는 '직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지만, <청탁금지법>에서는 '원활한 직무수행과 사교의례'가 목적이라 하더라도 일정 가액 이상의 선물은 주고받지 못하게 돼 있으니, 규율하는 '직무관련성'의 범위를 뇌물죄에서보다 더 넓게 봐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박상흠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의 개념]에서 인용

박 변호사는 직무관련성을 '직접적 직무관련성'과 '간접적 직무관련성'으로 구분하고, 뇌물죄에서 규율하는 직무관련성은 '직접적 직무관련성'에 한정되지만, <청탁금지법>의 규율 범위는 '간접적 직무관련성'까지 확장된다는 논리도 제시합니다. 판례상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등의 영역을 제외한 '직접적 직무관련성'만을 따지는 뇌물죄와는 달리, '원활한 직무수행 또는 사교'목적이라 할 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는 금품 가액을 제한한 <청탁금지법>의 규율 범위가 더 넓다는 것입니다. 정호경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논문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의 구조와 쟁점] 또한, <청탁금지법>에서의 '직무관련성' 개념은 뇌물죄에서의 개념보다 최소한 같거나 넓게 해석돼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박상흠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의 개념]에서 인용

이처럼 청탁금지법의 '직무관련성' 해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첨예한 논의들이 진행돼 온 만큼, 이번 검찰 수사심의위에서 실제 진행될 '직무관련성' 논의가 법학계와 우리 사회에 던질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절'할 필요 없게 하려고 만든 법인데…


수개월 간 서울중앙지검의 '에이스' 검사 여럿이 동원되고, 담당 검사 사표 파동과 검찰 최고위 수뇌부의 갈등을 거쳐, 이윽고 검찰총장의 직권 수심위 회부까지 이른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사건.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이 '배우자가 박절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거치며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청탁금지법>은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라, 공직자와 그 주변인이 금품 수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로 쓰라고 만들어진 법이라는 점입니다. 대중들에게 청탁금지법의 별칭으로 통하는 '김영란 법'의 제안자이기도 한 김영란 대법관은 저서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에서, 판사생활을 하던 당시 사건 청탁을 들었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자신 같은 공무원을 청탁의 환경에서 보호해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법안을 구상했다는 것입니다. 검찰총장까지 지낸 최고위 법률가 출신 대통령과 배우자가 이 법 위반 소지에 대해 해명하며 '박절'을 근거로 든 것은 법안 취지를 무색케하는 말입니다.

선한 의지로 만들어진 법안들과 사법 시스템들이 어느 순간 목적을 잃어버린 힘 싸움의 수단으로 동원된 상황도 국민적 불행입니다. 처음에는 인터넷 언론사로서 '위장 취재'에 나선 거라던 최재영 목사 측은 검찰 조사에서는 청탁 목적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진술을 남긴 걸로 전해집니다. 이는 검찰의 처분 근거가 된 것도 모자라, 수십 명의 위원들이 소집되는 수사심의위원회 개최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됐습니다. 수심위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누군가에게 '면피' 정도는 될 수 있겠지만, 폭발해버린 사회적 갈등과 준사법기관이 입게 된 상처는 수습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국회에는 이번 일을 계기로 <청탁금지법> 상 배우자의 금품수수 제한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들이 무더기로 발의 돼 있습니다. 민간인인지 아닌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공직자의 배우자는 선물 등 금품을 수수할 수 없도록 막아버리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안이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자명합니다. 공직자 배우자의 자유 침해와 같은 고매한 논의는 차치하고, 공직자의 동생, 자녀, 처제 등에게 전달하는 선물이 문제될 경우에는 또 '무조건 제한'하는 법을 만들 것인지 의문입니다. 갈등의 사법화, 그리고 이 과정을 겪고서도 남은 앙금들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은 채 섣불리 입법화되는 우리 사회의 악순환 고리가 또다시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수사심의위의 결론은 하루 만에 나올 예정이지만, 결론을 놓고 또다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입니다. 지겨운 도돌이표입니다만, 그래도 얻어가야만 할 교훈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제도를 만들고 고치고 하더라도, 영향력 있는 이들의 행동 한 번에 예기치 않은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참고문헌
박상흠, <청탁금지법상 직무관련성의 개념>, 동아법학 제76호
정호경,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의 구조와 쟁점>, 행정법연구 제47호
국민권익위원회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해설집>
정형근,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관한 연구 - 금품등의 수수금지를 중심으로 ->, 경희법학 제52권 제1호
김혜경, <형법상 뇌물죄와 청탁금지법의 관계 - 대가성 요건을 배제한 해석가능성 ->, 형사법의 신동향 통권 제63호
김영란 이범준 <김영란법, 김영란에게 묻다>, 풀빛 출판사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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