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경하는 북한 MZ… ‘밥’보다 ‘자유와 교육’ 찾아 탈북”[M 인터뷰]
지난해 탈북민 20대 가장 많아… 그 다음 10·30대 順
‘8·15 독트린’은 이런 주민에 다가가겠다는 정부 메시지
김정은 수해현장 방문은 그만큼 민심이 흉흉하다는 얘기
배신자 취급받던 탈북자, 요즘은 ‘그 놈 좋겠다’ 부러워해
“수해 현장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옆 빼빼 마른 아이들의 모습이 공개되면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눈살을 의식했을 겁니다. 북한이 최근 자폭 무인기, 240㎜ 방사포 실험을 공개한 이유는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고 ‘우리는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태영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북한의 수해 복구 작업과 관련해 “국제 공동체를 향해 ‘북한은 약하고 취약한 작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이번 수해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점을 김 위원장 역시 간접적으로 인정했다고 분석했다. 태 사무처장은 통일을 염원하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1980년대 이후 태어난 청년층)가 권력의 중추 자리에 갈 것에 대비해 ‘8·15 통일 독트린’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8·15 통일 독트린에 대응해 ‘적대적 2국가론’의 사상적 논리를 만들기 위해 북한 사상이론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을 것이라는 예측도 내놨다. 태 사무처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20일 민주평통 집무실에서 이뤄졌으며 29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보완했다.
―북한의 압록강 일대가 수해로 초토화됐다. 수해로 인한 사상 피해는 매년 반복되는 북한의 고질적 문제인데, 해결되지 않는 원인은 뭐라고 보나.
“구조적으로 북한의 예산 집행 구조와 관련이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예산 집행자가 마음대로 예산을 전용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은 최고지도자인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중점 사업이 변하고 예산 전용도 수시로 이뤄질 수 있다. 북한이 제방 공사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은 건 아니었을 거다. 문제는 계획에 그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방치되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북한의 수해 대응 상황을 지켜보면, 과거와 다른 모습이 많이 포착된다. 김 위원장이 고무보트까지 타고 가서 둘러본다든지 수재민들을 평양에 초청하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에서 평양에 초청된다는 건 전쟁 참전 유공자 등에게만 해당하는 일종의 특혜다. 그만큼 북한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증거다. 이 정도로 달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북한 당국의 계산이 깔린 것이다.”
―수해 와중에도 북한 당국은 자폭형 무인기와 240㎜ 방사포를 공개했다.
“수해 현장을 찾은 김 위원장 사진을 봤나. 아이들이 빼빼 말랐다. 수해를 계기로 북한 체제의 취약성이 외부에 공개되자, 북한 당국이 그 시선을 돌리기 위해 무기 실험을 연달아 공개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제 공동체를 향해 ‘북한은 약하고 취약한 작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김 위원장도 이번 수해를 인재라고 간접 인정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이 ‘인명피해까지 발생시킨 대상들에 대해서 엄격히 처벌할 것’이라며 사회안전상과 도당위원회 책임비서 등을 경질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적대적 2국가론’을 천명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자유 민주 통일 국가가 만들어지는 날, 비로소 완전한 광복이 실현된다”고 했다.
“북한이 통일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고 두 국가 체제로 나아가겠다고 선언했으니 우리 정부도 결정을 해야 했다. ‘우리도 통일하지 않겠다’고 돌아서든지 집념을 갖고 ‘끝까지 통일하자’고 설득하든지 선택은 두 가지였다. 그중에서 윤 대통령은 통일이란 민족적 숙원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북한 정권이 통일을 포기한다면,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통일로 나아가겠단 메시지를 낸 거다. 이건 주변국에 북한의 적대적 2국가론에 대한 한국의 대응을 천명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진 통일 정책을 짤 때 북한 ‘정권’만을 상대 주체로 여겨왔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북한 정권을 상대로 강경책도 써보고, 유화책도 써보고, 퍼주기 정책도 해보고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다 실패했다. 즉, 기존 패러다임을 유지한다면 현상 변경은 없단 뜻이다. 8·15 통일 독트린을 통해 우리 정부는 북한 정권을 대화 상대로 간주하지만, 이와 동시에 북한 주민을 향해 직접 다가가겠다는 새로운 메시지를 줬다. 북한 주민의 인식 변화를 통해 통일을 향한 열망이 거세지면 김정은 정권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지면서 한국의 젊은 세대는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 주민이 여전히 통일을 염원한다고 보나.
“북한의 젊은 세대는 확실히 그렇다. 북한에서 한국으로 오는 탈북민들의 연령대 구성과 탈북 동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 온 탈북민 가운데 가장 많은 연령대가 20대다. 그다음이 10대, 30대다. 탈북 동기를 물어보면 과거와 달리 ‘배고파서 왔다’는 경제적 이유는 거의 없다. ‘좀 더 자유로운 삶’ ‘좀 더 훌륭한 교육’을 위해서 왔다고 한다. 이를 보면 북한의 10·20대와 30대 초반은 대한민국을 동경하고 미래의 대안으로 보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 권력의 중추에 진입하지 못했고 인구도 적다. 하지만 기존 세대는 언젠가는 퇴직할 거고, 이들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될 거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윤 대통령이 8·15 통일 독트린을 통해 선제적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아직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북한 측 반응이 없다.
“윤 대통령이 2022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북한이 비핵화의 첫걸음만 내디뎌도 정치·경제적 협력을 시작하겠다는 내용의 제안. 사흘 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며 전면 거부 의사를 밝혔다)을 내놨을 때와 현격히 다른 모습이다. 북한의 숙고 시간이 왜 길어질까? 김 위원장은 적대적 2국가론에 대한 화두를 던졌지만, 그 사상 논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진 않았다. 그동안 북한 정권은 ‘우리 민족을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시켜 한반도 전역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며 북한 노동당 존립과 김 씨 일가의 세습 체제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했다. 그런데 최종 지향점인 통일을 포기한다고 하니까 이 정당성도 흔들리게 됐다. 북한이 이를 대신할 논리 체계를 고심하고 있던 찰나에 윤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 즉 자유통일론이 나온 거다. 지금 8·15 통일 독트린을 반박하기 위해 북한의 사상이론가들이 총동원돼서 머리를 맞대고 있을 거다.”
―리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 등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이 잇따르고 있다.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인사도 많다. 자녀를 무연고자로 만들어 탈북시키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 러시’의 근본 원인은 뭐라고 보나?
“북한에 미래가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 같은 자애로운 국가에서 자녀의 꿈을 펼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과거와 김정은 시대를 구분하는 가장 뚜렷한 정책적 차이점은 북한 당국이 북한 내부로부터 외부로 탈북할 수 있는 루트를 적극적으로 차단한다는 거다. 북한 당국은 북·중 국경 일대에 군부대를 촘촘히 배치한 뒤 지뢰를 묻고 철조망을 쳤다. 지난 시기엔 압록강, 두만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는데 이젠 다 막혔다. 이 때문에 북·중 국경을 돌파해 탈북하는 사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해외로 나와 있는 외교관들의 탈북은 비교적 쉽다. 김정일 시대가 계속됐으면 북·중 국경을 돌파한 탈북이 더 많았을 거다.”
―탈북한 리 전 참사와 개인적으로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들었다.
“내가 탈북한 다음 중앙당에서 북한 외무성에 내려와 외교관들을 상대로 면접 담화를 했다고 한다. 그때 ‘태영호 같은 사람이 한국으로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 주였다고 한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북한 외교관들이 탈북할 수도 있겠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하더라. 또 내가 탈북하기 전엔 ‘한국에 가서 어떻게 살려고 거기 갔을까’ ‘나라를 배반하고 어떻게 탈북할 수 있나’라는 반응이 많았는데, ‘그놈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하더라. 그만큼 북한 내부도 많이 변하고 있다고 느꼈다.”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된 지 한 달이 지났다. 민주평통에 불어넣고 싶은 변화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뿌리 깊이 박힌 남남(南南)갈등을 해소하고 싶다. 민주평통은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 성향에 따라 자문위원들도 자연히 바뀐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통일 철학이나 제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통일 정책은 일종의 축구 경기다. 왼쪽으로 공격할 수도, 오른쪽으로 공격할 수도 있는 거다. 경기를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감독(대통령)의 권한이다. 오른쪽으로 공격했는데 골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나쁜 감독이라고 할 순 없다. 대통령의 통일 정책은 시대의 철학에 따라 달라지므로 현재 시대상이나 이전 시대상에 근거해 판단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민주평통이 통일 정책을 둘러싼 양분된 생각을 끌어안고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나가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
―임명 당시 대통령이 특별히 당부한 게 있었나.
“탈북민들이 한국에 잘 정착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멘토링 사업을 해달라고 했다. 탈북민들이 한국에 도착하면 정착지원금과 임대주택을 받지만, 이것만으론 한국 사회에 온전히 정착하기 어렵다. 탈북민이 지역사회에 녹아들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 지역사회와 탈북민을 하나로 잘 엮어달라는 게 대통령의 당부였다. 실제로 민주평통을 바라보는 탈북민들의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예전엔 민주평통을 자신과 상관없는 기관으로 여기는 탈북민이 많았다. 하지만 탈북민 출신의 사무처장이 오고 나선 ‘친정에 온 것 같다’고 말하는 탈북민이 많다.”
北 외교관 출신 엘리트… 탈북민 최초 국회 입성·차관급 기용
■ 태영호 사무처장은…
태영호(62) 신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탈북민 출신 인사로는 처음으로 정부 차관급 요직에 기용된 북한 전문가다.
그는 1962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학원과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뒤 외무성에서 일했다. 그는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로 근무하던 2016년 7월,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미래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영입 인재로 발탁됐다. 보수 텃밭인 서울 강남갑에 전략공천을 받아 당시 더불어민주당 4선 의원 김성곤 후보를 제치고 당선, 정계에 입문했다. 원내 입성 후에는 국민의힘 원내부대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를 맡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비판에 앞장섰다. 지난해 3월엔 국민의힘 최고위원으로 선출돼 탈북민 최초로 여당 지도부에 입성했다.
그는 지난달 19일 자로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당시 그는 “북한 이탈주민도 그 어떤 차별과 편견 없이, 그 어떤 직책도 맡을 수 있다는 것을 북한 주민을 향해 보여줬다”며 임명 소감을 밝혔다.
△1962년 평안남도 평양 출생 △평양국제관계대학 졸업 △베이징외국어대 영문학 학사 △주영국북한대사관 공사(2013∼2016) △대한민국 망명(2016) △국민대 법무대학원 통일융합법무 석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2017∼2018) △제21대 국회의원(서울 강남갑)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간사(2023)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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