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병원 건설법…건물부터 짓고 설비는 나중에 [스프]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2024. 8. 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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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식의 N코리아 정식] 건물 없어서 병원 운영 안 되는 건 아닌데
 

북한을 어떻게 정확히 볼 것인가? '기대'와 '관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에 기반해 차분하게 짚어드립니다.
 

북한이 올해 들어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책 가운데 하나가 '지방 발전 20x10 정책'입니다. 매년 전국의 20개 시, 군에 현대적인 경공업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지방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겠다는 정책으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야심찬 지방 발전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지방 발전 20x10 정책'의 첫해인 올해 전국 20개 지역에서 경공업 공장 건설이 진행되고 있는데, 김정은이 지난 24일과 25일 건설 현장들을 찾았습니다.

김정은은 건설 현장들을 둘러본 뒤, 전반적으로 총공사량의 80%를 넘어섰다며 만족을 표시했습니다. 실제로 북한이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공장 외관은 상당 부분 완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은이 현지 지도한 지방 공장 건설 현장. 외관은 거의 완성됐다.
 

새로운 과제 제시한 김정은

김정은은 그런데 이번 현지 지도에서 새로운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방 공장 건설과 함께 보건시설, 과학기술보급거점, 양곡관리시설 건설을 병행하자는 것입니다. 김정은의 지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먼저, 보건시설. 김정은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방 시, 군들에 큰 규모의 발전된 병원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지방 인민들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것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필수 과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과학기술보급거점'과 관련해 김정은은 농촌을 도시 못지않게 선진화하고 과학기술인재화를 실현하려면 시, 군마다 '과학기술보급중심(센터)'을 만들고 여러 분야의 필요한 지식을 보급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은 또, '양곡관리소'를 설립할 것을 제시하면서, 낱알 보관 관리를 잘하고 인민들에게 질적으로 가공된 식량을 보장해 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지방 공장 건설 현장을 현지 지도하며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있는 김정은

특이한 것은 김정은이 지시한 건설 방식입니다.

김정은은 지방 공장 건설을 위해 인민군 부대들이 전개돼 있는 만큼, 이 기회를 살려 건물 공사를 먼저 해놓자고 밝혔습니다. 현재 각지의 경공업 공장 건설을 위해 군인들이 투입돼 있는데, 이 군인들을 활용해 건물부터 지어놓자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시설 운영은 추후 계획을 세워 하면 된다는 것이 김정은의 구상입니다.

병원 건설에서도 같은 방식이 제시됐습니다. "우선 건물 건설을 지방 공업공장 건설 일정에 맞추어 선행시키고 설비들은 국가적인 차후 계획에 따라 갖추어놓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김정은은 지시했습니다.
 

건물 없어서 병원 운영 안 되나

북한 의료 시스템은 무상치료제와 예방의학, 의사담당구역제를 기초로 합니다. 무상치료제란 말 그대로 국가가 전적으로 주민들의 건강을 무료로 책임지는 것이고, 예방의학이란 병에 걸려 치료받기 전에 병을 예방하는 것으로 방역을 비롯해 위생 사업을 강화하고 예방접종을 실시하는 것 등을 가리킵니다. 의사담당구역제는 의사가 일정한 주민들을 담당해 그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보호 관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북한의 의료 시스템은 현재 거의 붕괴된 상태입니다.

먼저, 의료기관에는 의료설비나 의약품이 부족해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없습니다. 지방 의료기관의 경우 주사기, 거즈, 천, 붕대 등 일회용 의료용품도 재활용할 정도라고 하고, 병원에 약이 부족해서 필요한 약은 주민들이 약국이나 비공식 약국, 장마당 등에서 직접 구해와야 하는 사정이라고 합니다.

배급이 안 나오다 보니 의사들도 환자들에게 뇌물을 받는 것이 일반화됐고, 병원의 능력이 안 되다 보니 입원을 하게 되면 식사, 의약품 등 필요한 것들은 환자 스스로가 부담해야 합니다. 무상치료제는 이미 허울이 된 지 오래입니다.

이상에서 보듯 북한 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돌아가고 있는 것은 병원 건물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병원 건물 자체도 좋지는 않겠지만, 병원에 약이 없고 의료설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료와 치료가 어렵습니다.

북한이 2020년 3월 건설에 착수해 같은 해 10월까지 완공하겠다고 했던 평양종합병원이 아직까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의료설비 부족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정은의 각별한 관심 속에 건물 외관은 그럭저럭 갖춰졌지만, 병원을 운영할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4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은 지난 1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평양종합병원을 올해 완공하겠다고 밝혔는데, 북러 밀월 속에 러시아의 도움으로 개원이 가능할지 지켜볼 일입니다.

2020년 7월 김정은이 현지 지도했던 평양종합병원 건설 현장. 건물 외관은 거의 완성됐다.
 

일부 병원 건물, 흉물로 전락하나

병원이 제대로 운영될 것이냐의 문제는 결국 의료설비와 의약품 등이 제대로 갖춰지느냐에 달려있는데, 김정은은 일단 병원 건물부터 지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건물을 짓는 것은 시멘트와 철근, 노동력만 있으면 되니, 북한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부터 하자는 취지인 것 같습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안정식 북한전문기자 cs792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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