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다 나와" 길고양이 독살사건에 남은 ‘퍼즐 한 조각’ [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③]

2024. 8.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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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2022년 경찰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은 55.7%에 그치고, 그나마 송치된다 하더라도 법정에 기소될 확률은 31.9%에 그칩니다. 불송치, 불기소 사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대당한 동물 상당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이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 과학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동그람이는 지금까지 동물 부검이 범행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또 실패한 사례를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수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동물 부검 체계가 나아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에서 발생한 길고양이 독살사건의 피해 고양이들의 모습. 총 5마리 중 3마리가 죽고 1마리가 실종됐다. 케어테이커 A씨 제공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북서울꿈의숲. 68만4,157㎡에 달하는 서울 동북부 지역 최대 녹지공원. 서울 시민들의 안식처였던 이곳을 소란스럽게 만든 그 사건은 지난해 12월 초 발생했다. 이 공원에서 지내는 길고양이 먹이를 챙겨주던 시민 A씨는 사건 당일, 유독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돌아봤다.

먹이를 주는 장소에 항상 같은 시간에 나타나던 길고양이 다섯 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꺼림칙한 기분에 고양이들의 겨울집으로 향한 A씨. 그곳에는 다섯 마리 중 하나인 ‘등오’가 누워 있었다. 그런데, 등오가 누워 있는 자세가 심상치 않았다.

사건 당일 A씨가 목격한 상황. 고양이 '등오'가 겨울집에 누워 있었다. 통상적으로 잠들 때는 웅크리지만, 등오는 몸을 겨울집 밖으로 내놓고 누워 있는 상태였다. 케어테이커 A씨 제공
겨울집에서 보통 고양이들은 웅크려 있잖아요. 그런데, 등오는 뒷다리 쪽 몸을 겨울집 밖으로 내놓은 거예요.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가까이 갔는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어요. 고양이별로 떠난 거였죠.
북서울꿈의숲 케어테이커 A씨,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등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체를 수습하던 A씨에게 동료 케어테이커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등오와 함께 지내던 고양이 ‘은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급히 달려가 마주한 은이는 다리를 휘청거리며 비틀대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다. 곧바로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응급처치를 시도하며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의심이 깊어지는 A씨에게 확신을 준 것은 은이를 진단한 수의사의 한 마디였다. “이거.. 뭔가에 중독된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들은 A씨는 수습하려 했던 등오의 사체도 확보해 경찰에 신고하고 사체 부검을 의뢰했다.

두 마리의 사체를 한꺼번에 건네받은 농림축산검역본부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즉시 신장 상태부터 확인했다. 1차적으로 진단한 동물병원에서 급성 신부전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 연구관은 “한 마리의 혀뿌리에는 궤양이 발견됐고 신장은 노랗게 변색돼 있었다”며 부검 당시 육안으로 확인한 상태를 전했다.

동물병원 수의사의 최초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등오와 은이의 신장을 급속도로 악화시켰을까. 이 연구관이 지목한 물질은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 상온에서는 색도 없고, 냄새도 나지 않지만, 끈적거리며 단맛을 내는 물질. 흔히 자동차의 냉각수에 첨가해 어는점을 낮추는 부동액의 원료로 사용된다고 알려져 있다.

동물이 에틸렌글리콜을 섭취하면 체내에서는 분해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체내에 글리콜산과 젖산이 축적된다. 이 과정에서 ‘대사성 산증’이 일어난다. 또한 분해 과정에서 발생한 최종 대사체인 옥살산과 혈중 칼슘이 만나 ‘칼슘 옥살레이트’라는 요로결석이 형성된다. 이 모든 화학작용이 급격히 발생해 혈뇨 또는 무뇨증 등 신부전 증상이 나타나고, 심각하면 동물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실제로 등오와 은이의 체내에서는 칼슘 옥살레이트가 검출됐고, 위 내용물에서도 마저 분해되지 못한 에틸렌글리콜 성분이 나타났다.

칼슘 옥살레이트 결석. 부동액을 섭취할 경우 최종 대사체인 옥살산이 체내 칼슘과 결합해 형성된다. 부동액 섭취의 물적 증거 중 하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입니다.

이 연구관은 “고양이의 경우 에틸렌글리콜 최소치사농도가 몸무게 1㎏당 1.4㎖ 수준”이라며 “4~5㎏인 고양이의 경우 7㎖ 이하의 소량만 섭취해도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고양이의 1일 적정 음수량은 몸무게 1㎏당 40~50㎖ 수준이다.

같은 겨울집에 살며, 같이 먹이를 먹으며 한 지역에 서식하는 고양이 두 마리가 연속으로 같은 증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주 희박한 가능성이겠지만, 사고일 가능성은 없었을까. 이 연구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틸렌글리콜 중독증은 흔하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사고 또한 죽일 의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불의의 사고'라고 한다면 무색무취의 특성상 물과 혼용될 가능성이 있는데, 그마저도 국내에서 나오는 부동액 시판 상품은 제조 과정에서 녹색 혹은 분홍색으로 처리돼 출시됩니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사체 근처에서 발견된 사료에서도 에틸렌글리콜 성분이 검출됐다는 겁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사료에 부동액을 섞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북서울꿈의숲에서 돌봄받던 길고양이 '금비'의 생전 모습. 금비는 등오와 은이가 목숨을 잃은지 약 열흘 만에 모습을 드러내 중독 증상을 보였다. 케어테이커 A씨 제공

의도치 않을 사고일 가능성은 현저히 낮은 상황. 그런데, 이 연구관이 등오와 은이의 사체 부검을 마치고 경찰에 부검 감정서를 전달한 그날, 공교롭게도 같은 경찰서에서 또 다른 고양이 사체 부검 의뢰가 도착했다. 이번에도 사건이 발생한 곳은 북서울꿈의숲, 부검 의뢰자는 등오와 은이를 발견한 A씨였다.

부검이 진행되는 열흘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A씨는 그 사이 등오와 은이와 함께 지내다 사건 이후 모습을 감춘 고양이들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고양이 ‘금비’를 마주했다. 목격한 증상은 은이와 같았다. 비틀거리다 주저앉기를 반복한 것이다. 이미 한차례 경험이 있었기에 A씨는 급하게 동물병원을 찾았다. 수의사의 진단도 열흘 전과 동일했다.

금비도 끝내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A씨는 금비의 사체를 들고 경찰에 찾아가 부검을 요청했다. 그러나 경찰의 대응은 시큰둥했다고 A씨는 기억했다.

(금비도 부검을 해야겠다고 하니) 경찰에서는 ‘다 똑같은 증상 아니냐, 굳이 부검을 할 이유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였어요. 마치 케어테이커가 진상을 부리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느낌도 받았지요.
북서울꿈의숲 케어테이커 A씨,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그러나 A씨는 범죄 사실들을 명확하게 남겨놓기 위해서라도 부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요하게 요구한 A씨의 요구에 부검 요청과 사체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도착했다.

금비의 사체 부검을 실시한 이 연구관은 동일한 사건임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위장에서 발견된 에틸렌글리콜과 신장에서 발견된 옥살산염은 이 사건이 같은 범인의 같은 방식으로 이뤄진 범죄였을 가능성을 지목하고 있었다. 검사 결과 보고서를 보낸 이 연구관은 동시에 경찰에 연쇄 범죄 가능성을 설명했다.

범행 장소와 방법, 도구 등 사건의 모든 퍼즐은 맞춰졌다. 그러나 마지막 한 조각, 범인은 끝내 붙잡을 수 없었다. 당시 북서울꿈의숲에는 CCTV가 모자랐다. 즉, 범인이 고양이를 상대로 부동액을 살포하는 모습이나 동선을 파악할 증거자료가 없었던 셈이다. 다행히 지금은 동물보호단체와 케어테이커들의 요청을 받아들인 공원 관리사무소 측에서 예산을 확보해 CCTV를 설치하기 위해 나선 상태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고양이들을 향한 실체적인 위협은 드러나지 않았다.

사건 이후 자취를 감춘 고양이 '깻잎'(왼쪽)과 생존한 채 공원에 남아 있는 '칠이'의 모습. 칠이는 여전히 낯선 이들을 경계하고 있다. 케어테이커 A씨 제공

사건은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사건이 남긴 상처는 아직 공원에 남아 있다. 끔찍한 상황을 두 눈으로 목격한 생존 고양이 ‘칠이’는 당시의 기억이 남아 있는 듯, 풀숲에 숨어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A씨는 “칠이는 입맛이 다소 까다로운 편인데, 그래서 다행히 범인이 준 사료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먹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건 이후 자취를 감춘 ‘깻잎이’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평화롭게 지내던 5마리 길고양이 무리 대부분이 세상을 떠난 지금, 범인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범행이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 성공에 취한 범인이 언젠가 다시 동물학대의 현장으로 다시 나타날 수 있다. 방심한 그의 덜미를 붙잡아 지금까지 간직해온 증거들이 언젠가 빛을 볼 날이 있기를, A씨는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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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자료제공 =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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