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끝내 업로드될 수 없는 욕망의 끝은?[책과 삶]

박송이 기자 2024. 8. 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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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외피를 버리고 데이터 인간이 된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누구도 죽지 않는 가상세계 ‘롤라’행 티켓을 두고 벌이는 복마전 그려
무결핍의 완전한 상태는 영원한 천국이 아닌 ‘영원한 지옥’인 것을
신작 <영원한 천국> 낸 정유정 작가가 28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영원한 천국 |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524쪽 |1만9800원

숨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전개, 긴박감 넘치는 생생한 묘사로 한 번 책을 열면 좀처럼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스릴러의 대가’ 정유정 작가가 3년 만에 신작 <영원한 천국>으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누구도 죽지 않는 가상세계 ‘롤라’를 배경으로 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롤라’행 티켓을 두고 벌어지는 복마전을 몰입감 넘치게 그린 작품이다.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의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 작가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 데우스>를 읽고 소설을 처음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호모 데우스>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신과 같은 능력을 거머쥔 인류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전망한 책이다. 정 작가는 “지금도 전 세계인의 데이터가 수집이 되고 있지 않나. 인간이 생물학적인 몸을 버리고 우리 뇌의 의식·무의식을 모두 데이터화해서 업로드한다면 어떤 세상이 올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작품은 궁극적으로 결핍 없는 세계 ‘롤라’에 끝끝내 ‘업로드’ 될 수 없는 인간 최후의 욕망에 대해 묻는다. 정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같이 말한다.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설은 핵심 등장인물인 경주와 해상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전개된다. 타인의 욕망을 가상세계에서 구현해내는 스토리텔러이자 프로그래밍 기술자인 해상은 자신에게 들어온 하나의 기이한 의뢰를 따라 경주를 만나게 된다. 이 둘이 만난 곳은 ‘롤라’다. 소설은 해상과 경주과 ‘롤라’로 오게 된 과정, 현실 세계에서 얽히고설켜 있던 그들의 인연을 추적한다. 모든 이야기들의 실타래가 풀어질 때쯤 경주는 ‘롤라’의 설계를 뛰어넘는 제안을 해상에게 건네고, 소설은 한 번 더 예측 불가한 지점을 향해 질주한다.

<영원한 천국>. 은행나무 제공

정 작가의 작품에는 압도적이면서도 정교하게 구성된 공간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유빙’과 ‘사막’이 실감 나게 그려지고 있다. 정 작가는 “공간을 설정할 때 그 공간을 등장인물의 정체성으로 삼는 패턴이 있다”라고 말했다. 서로 부딪히며 쿵쿵 충돌음을 내는 거대한 유빙들에 포위된 어둠의 바다, 태초에는 바다였으나 이제는 황량하고 메말라 버린 바하리야 사막은 현실 세계에서 잇따른 불행을 겪은 경주와 해성의 정체성과 연동된다. 매끈한 가상세계와 대비되는 거칠고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현실 세계의 공간은 작품의 주제 의식이기도 한 ‘야성’의 의미를 환기한다. 정 작가는 이들 공간을 그려내기 위해 일본 홋카이도에서 쇄빙선을 타고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에서 밤을 지새웠다.

정 작가가 SF 장르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상세계 ‘롤라’를 그려내기 위해 관련 자료를 읽는 데만 1년이 걸렸다. “생명공학 쪽으로 공부가 많이 필요했어요.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저작을 제일 많이 읽었죠. ‘노화’와 관련한 생물학 서적들과 우주에 관한 철학이 궁금해 칼 세이건의 저작들도 다시 한번 살펴봤죠. 물론 소설은 저의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과학이 발전해 나가는 방향을 알고 그 방향에 대한 작가로서 저 자신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에 대한 저의 세계관과 철학을 만들기 위해 1년 가까이 책을 읽었죠.”

1년 가까이 책을 읽으며 정 작가가 도달한 생각은 “비관적”이다. “인간이 생물학적 외피를 버리고 ‘데이터 인간’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피엔스가 절멸하고 새로운 인류가 되는 거 아닐까하는, 썩 밝지 않은 전망이죠.”

책 제목인 ‘영원한 천국’도 반어법이다. 정 작가는 “‘영원한 천국’은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결핍이 있을 때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과 의지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욕망이 채워지고 나면 행복을 느낀다”라며 “‘완전한’ 상태가 되어버리면 그다음에 찾아오는 건 생의 의지가 아니라 지루한 권태다. 영원한 천국이 아니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지옥’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전작 <완전한 행복>에 이은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욕망 3부작을 구상할 때, 첫 번째 작품은 인간의 자기 파괴적인 욕망에 대해 두 번째 작품은 인간의 긍정적인 욕망, 인간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욕망에 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3부는 ‘소유에 대한 욕망’을 공포 스릴러로 풀어볼 예정이다. 정 작가는 “이번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스터 에그’(숨겨진 메시지)처럼 다음 책의 힌트를 숨겨놓았다”라고 귀띔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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