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못믿겠다”…불붙는 한국 자체 핵무장론, 실현 가능할까 [박수찬의 軍]
‘우리도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만들자.’ 1990년대 이래 한국 안보에서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이슈다.
한국은 냉전 시절부터 미국에서 핵우산을 제공받았다. 추상적 개념이었던 핵우산은 확장억제라는 형태로 바뀌었고, 현 정부에선 핵협의그룹(NCG)을 통해 미군 핵전력과 한국군 재래식 전력을 결합하는 형태의 억제력으로 발전했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희망이 줄어들고,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북한 핵위협 수준에 대한 공감대와 일치된 의견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반박도 많다.
◆트럼프의 공포가 몰고온 나비효과
정부는 독자적인 핵무장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과 한미 동맹 등을 근거로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확장억제력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추진본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미래 세대의 지속 가능한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핵무장을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한다”며 “한국의 핵무장은 동맹과 우방의 글로벌 에너지 안보와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균형에 유익하며 진정한 핵 동맹으로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달 열린 북한인권 서울포럼에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으로 일본 수준의 잠재적 핵 능력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핵무장 방안이 정부와 민간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이라고 밝히면서 핵무장을 외쳤다.
여론조사에서도 핵무장 찬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통일연구원이 지난 6월 27일 공개한 통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에는 66%가 찬성했다.
주한미군 주둔과 핵무기 보유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핵무기를 선택하겠다는 비율은 44.6%로 주한미군 선호비율 40.6%보다 높았다. 과거 조사에서는 주한미군 주둔 응답이 더 높았으나 올해 조사에선 핵무장 응답이 처음으로 더 많았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제공하는 억제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독자 핵무장에 더 주목하는 이유는 단 하나, 트럼프 변수다.
한국인들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트럼프는 재임 기간 미국의 동맹에 대해 깊은 경멸을 드러냈다.
한국에 대해선 과도한 수준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했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비용 부담과 철수 등을 거론했다.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감축하겠다는 의도도 드러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트럼프의 공포’가 현실화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불안정성과 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다수의 국민도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 철수 등을 추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접근이다. 카멀라 해리스 후보의 경우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동맹을 중시하고 정책적인 틀 안에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반면 트럼프는 북미 대화 등을 통한 거래(Deal)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한미일 3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바이든 행정부 기조와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미 관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상황은 극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된다.
정치·경제·기술적 관점에서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이나 타당성과는 별개로 정부는 확장억제력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문제는 핵보유를 주장하는 여론과의 간극을 좁히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고, 한미 동맹 관련 이슈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면, 이같은 간극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여론과 현실 사이에서 정부가 딜레마에 직면할 수도 있는 셈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트럼프 리스크와 맞물려 한국과 미국에서 찬반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인 북한의 핵위협 수준과 유사시 사용 방법 등에 대해선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모양새다.
전략적 의미를 지닌 무기를 새롭게 도입하려면, 잠재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의 위협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위협평가를 진행하고, 그에 맞는 전력소요를 검토·제기·검증·확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핵무장을 논의하려면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평가가 우선 필요하다.
단거리·장거리 핵 투발 능력을 과시한 평양이 유사시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평양의 핵전략과 교리 및 의사결정체제는 무엇인지, 핵물질은 얼마나 확보했는지 등을 모두 따져봐야 한다.
이같은 정보를 토대로 민관군이 함께 위협평가를 진행해 북한의 핵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공감대 또는 일치된 의견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핵무장에 대한 합리적 이유가 설명이 된다.
북한 핵위협에 대한 구체적인 공감대와 의견은 핵무장 논의를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군사적으로는 북핵에 맞설 수단으로 핵무장이 꼭 필요한지, 다른 대안이 있는지를 검증하는 데 유용하다.
‘북한에 핵이 있으니 우리도 갖자’는 식의 주장은 냉전 초기에나 통할 방식이다. 철저한 위협평가를 토대로 만들어지는 북핵 위협 수준에 대한 단일 의견은 국방예산 집행과 군사력 건설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한미 동맹 관계는 물론 향후 벌어질 수도 있는 비핵화 협상 국면에도 유용하다.
반면 한국은 단거리탄도미사일과 전술핵 등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국과 미국의 위협 인식과 절박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와 학계, 시민사회 등에서 북한 핵위협 수준가 실체에 대해 일치된 공감대를 확립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 정치권과 행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싱크탱크 등을 설득한다면 북핵 위협 인식에 대한 한미 조야의 간극을 줄일 수 있다.
미국 대선 이후 한반도 정세가 극적인 변화를 맞게 되어 북미, 남북 대화 국면이 열렸을 때도 유용하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으려는 제안이 한반도의 핵 위협을 낮추거나 비핵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 한미를 기만하거나 이간질하려는 속임수인지를 파악하려면 정부와 학계, 시민사회 간 북한 핵위협 실체에 대한 공감대가 확립되어야 한다.
이는 북한이 협상을 준비하면서 핵전력 중 어떤 것을 지키려 하고, 어떤 요소를 내줄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부나 학계, 시민사회단체에서 거론되는 것은 핵무장에 대한 정치적 파급력이나 기술적 가능성, 한미 동맹에 미치는 영향 등에 집중되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핵무기는 군사적 억지력의 수단이자 국가의 자주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면 주변 강대국들과의 군사적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생각이 존재한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응하려면 핵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하지만 북한 핵위협 수준에 대한 공감대와 의견일치, 평양의 의중에 대한 분석이 없는 상황에서 핵무기 개발 주장은 국내외에서 설득력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핵무장을 주장하기 전에 평양이 지금까지 밟아온 행보를 되짚어보면서 ‘핵보유국 북한’의 실체를 파헤치는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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