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끝내 상식으로 수렴된다 [안병욱 칼럼]
안병욱 |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광복회 등 항일운동 단체들은 올해 광복절 기념식을 정부와 별도로 백범기념관에서 거행했다. 독립기념관장에 부적절한 인사가 임명되자 이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면서 대통령 참석의 기념식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더해 대통령 경축사는 또 다른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행한 연설에서 치열했던 항일운동, 일제의 야만적인 학살탄압 등은 외면했지만, 반면에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는 식의 해설을 매번 곡진히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엉뚱하게 “1919년 3·1운동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민들의 일치된 열망을 확인했습니다”라고 했다. 앞서 올 3·1절 기념사에서 “기미독립선언서는 일본을 향해, 우리의 독립이 양국 모두 잘 사는 길이며, 이해와 공감을 토대로 ‘새 세상’을 열어 가자고 요구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던 것에 이은 발언이다. 3·1운동을 한낱 일본에 대한 청원운동으로 폄하하면서 항일투쟁의 의미를 지우는 발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독립이라는 말의 다의적인 면을 곡해해서 마치 한국이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비로소 자립할 수 있게 된다고 인식하는 듯하다. 그러나 아메리카 등 신대륙에서 이민으로 나라를 건설하게 된 경우에는 독립했다는 표현을 쓰지만, 나치 독일의 침략을 당했던 프랑스 등 유럽 나라들이 2차 대전이 끝난 뒤 독립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1919년 3월1일에, ‘조선 건국 4252년 3월1일’자로 발표한 ‘선언서’의 요체는 ‘우리가 …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의 희생물이 돼 … 이민족의 압제를 받은 지 … 이미 10년이나 됐다. 그동안 우리가 생존권을 빼앗겨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컸으며, 마음과 정신의 발전을 가로막힌 것이 얼마나 심했던가’라는 선언과, ‘선언서’라는 당당한 제목으로 시작해 ‘최후 1인까지 최후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결연히 주장하라’고 단호하게 천명한 공약에 있다.
일제는 이 공약을 심각하게 보고 재판에서 “조선사람 모두 다 독립으로 구속을 받든지 폭동으로 전쟁이 되기까지 독립의사를 발표하여 조선사람이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멸망할 때까지 민족자결로 독립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라”라는 주장이라고 다그치면서 신문했다.(1920. 7. 14. 특별법정 공판 때 최남선과 일본 판사의 공방) 실제로 3월부터 5월 말까지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투옥된 사람이 일제 통계로도 8521명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은 군대·헌병·경찰을 풀어 시위자에게 발포해 살육하고 마을을 전소시키고 집단학살을 자행해, 시위 참가자 수천명을 학살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진실을 가린 경축사를 두고 비난 여론이 높자, 대통령실 관계자가 해명하고 나섰다. 친일 논란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방송 대담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해 “마음이 없는 사람을 다그쳐서 억지로 사과를 받아낼 때 그게 과연 진정한가”라며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했다. 그렇듯 윤석열 정권은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핵 오염수 투기 문제 등에서 일본의 주장을 옹호하고 ‘일본 마음’까지도 세심히 배려하지만, 광복절을 경축하려는 국민 정서를 고려할 마음은 없었다.
이는 그동안 용산 정객들이 몇차례 보였던 비슷한 사례들을 상기시키고 있어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우선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준비하던 당시에 ‘전두환씨가 정치는 잘했다’고 발언했다가 비판이 일자, 말로는 사과하면서도 곧이어 반려견에게 사과를 주는 사진을 에스엔에스에 올린 바 있다. ‘사과는 무슨 개 사과냐’고 조롱했던 이른바 ‘개 사과 사건’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수수 사건에 대한 해명들은 용산 대통령실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2월7일 한국방송의 새해 대담에서 “대통령 부인이 어느 누구한테도 이렇게 박절하게 대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되는데 … 시계에 ‘몰카’까지 들고 와서 이런 걸 했기 때문에 공작이죠”라고 되치기로 호도했다. 드디어 대통령실 행정관이 7월3일 검찰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김 여사가 디올백을 받은 당일 내게 선물을 돌려주라고 지시하였는데 지시대로 이행할 것을 깜빡 잊었다”고 진술하기에 이르렀다. 애초 듣는 국민들의 심정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무엇보다 코믹한 변명은 순방 외교로 방문한 리투아니아에서 1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명품가게 쇼핑에 나섰다가, 현지 언론 보도로 들통나자 내뱉은, ‘호객행위에 낚였다’라는 말이다. 한곳도 아닌 다섯 가게에서? 아이들 소꿉놀이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소꿉놀이 수준도 못 되는 국정 탓에 나라 꼴이 한심한 지경이다.
윤석열 정권의 이념적 배경인 식민지근대화론은 1980년대 일본의 연구비 지원에서 시작됐다. 1980~90년대 국내의 학술 연구비 지원은 극히 미미했다. 그런 상황에서 일부 경제사 연구자들은 일본으로부터 파격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일본 취향에 맞는 연구를 수행했다. 일제 식민정책 통계자료들을 편의적으로 이용해 작업한 일종의 주문생산이었다.
식민지배를 긍정하면서 일제 침략을 감싼 그들의 주장은 수구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미 역사의 심판과 평가를 받은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등을 미화하고 추앙하는 ‘일베’식 논리로 비화하였다. 수구세력과 보수언론이 부추기면서 조장한 이른바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발호이다. 그들은 시류에 야합하는 언행을 무기로 과거 지향의 권력에 편승해서 생존해 간다. 뉴라이트를 비롯해 패거리 위주로 추천하고 발탁하는 윤석열 정권의 인사 행태는 조선시대 수렴청정이 행해지던 세도 정권기 모습이다.
파리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은 우수한 기량과 품격 있는 스포츠 정신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날 전두환 정권은 직면한 난관을 호도하려고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에 매달렸다. 그러나 그의 속셈과는 달리 두 대회를 통해 세계와 호흡한 시민들의 자의식은 조폭 수준의 정권을 용납할 수 없어 끝내 6월 항쟁으로 내쫓고 이어 5공 청산에 나섰다.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새삼 확인한 국민의 높은 자의식은 다시 천박한 소꿉놀이 정치를 다그칠 것이다. 역사는 끝내 상식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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