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의지해 싸우던 여야 모두 패자 신세
13 _‘명백한 운명’ 검찰의 정치 진출
승자는 검찰일 뿐이고, 보수 역시 패자나 다름없다. 잘 봐야 들러리다. 한국의 정당, 정치인들은 말처럼 사냥꾼인 검찰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때론 사슴처럼 사냥꾼에게 당했다. 그 덕에 그들은 입과 등에 족쇄를 차야 했다. 마부에게 멱살 잡힌 꼴이다.
영화 ‘1987’에 나오듯이 검사들은 전두환-민정당 독재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그 민정당을 계승한 정치세력이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민주화 이후 2번이나 검찰에 의해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한번은 노무현 정부 때 대선자금 수사, 다른 한번은 박근혜 대통령 때 국정농단 수사였다. 그럼에도 보수와 검찰은 가깝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대권 매개로 보수를 선택했고, 보수정당은 그를 극진히 받아들였다. 우연일까? 검찰이 진보와 척지고 보수와 친한 데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다.
검사는 법률가다. 법률가에 대해 재미있으면서도 의미 있는 지적이 있다. “법률가들은 때로는 정치권력의 도구로 구실 했으며, 때로는 정치권력을 도구로 이용했다.”(토크빌)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유레카 모멘트’(eureka moment·무엇인가 깨닫게 되는 순간)를 만나는데, 이 대목이 바로 그랬다. 또 있다. “법률가들을 통치 집단 안에 포섭하는 것만큼 군주에게 유익한 것도 달리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법률가·군주를 검찰·대통령으로 읽으면 맛이 확 산다. 검찰은 정치권력의 도구로 쓰이다가 이젠 정치권력을 도구로 쓰고 있다.
토크빌에 따르면, 법률을 전공한 사람들은 질서에 대한 습관, 형식에 대한 취향, 그리고 질서정연한 사고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 애착 따위를 직업상 습득하게 된다. 그런 탓에 민주주의의 무분별한 열정에 적대적이 되고, 대중의 행동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뿐만 아니라 인민의 통치에 대한 은밀한 경멸감을 갖는다. “법률가들이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바로 질서 잡힌 생활인데, 질서에 대한 가장 듬직한 보장은 바로 권력이다. 그리고 법률가들이 설사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준법성을 더 우선시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압제(tyrannie)보다 전횡(arbitraire)을 더 두려워하는 것이다.”(‘아메리카의 민주주의’ 이용재 옮김) 국민에 대한 압제보다 자신들에 대한 전횡을 더 싫어하는 게 검찰이다.
검찰은 자부심으로 당당한 조직이다. 공부 잘해 좋은 대학 나왔다는 사탕발림에다 사법고시 패스에 따른 선민의식, ‘정의 중독’이라 불릴 정도의 투철한 정의감까지 그들의 정체성은 ‘나잘난’이었다. 보도를 통해 듣게 되고, 수사를 통해 확인된 정치 부패는 그들에게 정치를 우습게 여기고, 정치인을 ‘예비 범죄자’로 보는 확증 편향을 갖게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나라 지킨다’는 사명감을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으로 받아들였다. 윤석열, 한동훈이 ‘내가 수사해 봐서 잘 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서 조롱거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말이 아니라 검사 출신들이 책임 있는 자리를 맡으며 흔히 내뱉는 말이었다. 그걸 듣는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1960년대, 70년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쿠데타 군인들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폭력으로 사회적 평화를 강압하는 일에 동원된 경험이 있으므로 민간 정치에 개입하여 자본 축적의 위기를 잘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당시 군부 조직에 만연했던 일종의 믿음 혹은 문화 같은 것이었다. 그런 조직 문화를 군부 정치 연구자들은 ‘신직업주의’(new-professionalism)라고 불렀으며 그것을 쿠데타 원인으로 꼽았다.”(김태일) 그들에게 정치 개입, 정치 진출은 명백한 운명이었다.
검찰 내의 특정 그룹, 정치화된 분파가 지닌 소명의식이 그들로 하여금 정치에 직접 뛰어들도록 하는 지적 인프라의 역할을 했다. 그들은 부패를 청산하고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런 소명의식이나 자신감은 진보에 불편하다. 질서보다는 변화를 선호하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정으로 기득 질서를 바꾸고자 하는 진보에 검찰은 동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진보는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데, 검찰은 정치를 부패집단으로 폄훼한다. 뿐인가. 진보는 검찰 개혁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오래 집권한 바 있는 보수세력과는 인적 친화성도 강하다. 검찰로선 보수가 훨씬 편하고, 생각도 통한다.
“검찰 개혁이라고 하면 보통 검찰이라는 집단에 대한 인적 쇄신 또는 수사권 조정 등 수사 관련 법·정책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그 이전에 온갖 문제가 수사 대상이 되는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은 늘 ‘형사 사건화’되어 왔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광우병 사건, 세월호 사건, 황우석 사건, 국정농단 사건, 사법농단 사건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수사 대상이 돼 검찰이 문제 해결의 키를 쥐었다.”(홍성수) 우리 사회에는 모든 사건을 형사적으로 풀려고 하는 이상한 습성이 만연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정치권이 무책임하게 문제 해결을 검찰에 떠넘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의 모든 법에 형사처벌 조항을 넣어두고 있는 법체계가 더 근본적인 요인이다. 1948년 8월 헌법과 정부조직법을 처음으로 제정한 이래 2017년 현재 발효 중인 법률은 1450개다. 이 중 65% 정도가 형벌 조항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50% 수준이었다가 90년대에 65%에 도달했다. 형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법령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형사처벌 조항을 두고 있다. 과잉 범죄화다.(김두얼·김원종) 이런저런 법에 형사처벌 조항을 넣어두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다. 실제로 거의 모든 사건에 검찰이나 경찰이 형사처벌을 목표로 수사에 나서고 있다. 형사처벌을 엄하게 해야 언론이나 국민도 만족하는 듯하다. 여기에 정치권이 툭하면 검찰에 사건을 떠넘기고, 최근에는 시민단체까지 고소·고발에 나서는 ‘정치의 검찰화’ 현상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검사의 나라가 되기에 딱 좋은 구조적 토대가 마련돼 있는 셈이다. 이처럼 검찰국가의 물적 인프라는 ‘형사 사회’다.
검찰에 의해 혼나는 정치권의 모습을 언론은 즐기고, 국민은 반겼다. 내 삶의 고단함을 정치가 풀어주는 효능감이 주어지지 않으니 정치인들이 부패 등으로 추궁당하거나 처벌되고, 심지어 몰락하는 모습에서 국민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정치의 위선도 한몫했다. 검찰에게 몽둥이를 맡겨놓고, 그걸 마음껏 휘두르라고 한 게 정치권이다. 그래놓고 어느 날 그 몽둥이가 자신을 향한다고 화를 내며 몽둥이를 빼앗으려 한다. ‘무능한 놈들이 부패한 데다 수사도 못 하게 하네.’ 검찰이 나빠도 정치인보단 나아 보였다. 마침 진보정권 시절이었다. 절호의 기회! 검찰은 보수와 손잡고 검찰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냥꾼은 한가지 조건을 달았다. ‘정말로 복수하고 싶거든 내가 고삐로 널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우고, 사슴을 쫓는 동안 내가 편히 앉도록 등 뒤에 안장을 얹어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결국 말은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말은 사냥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 하지만 사냥꾼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단 말이야.’”(‘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딱 우리 정치와 검찰의 모습이다. 승자는 검찰일 뿐이고, 보수 역시 패자나 다름없다. 잘 봐야 들러리다. 한국의 정당, 정치인들은 말처럼 사냥꾼인 검찰에게 도와달라고 했고, 때론 사슴처럼 사냥꾼에게 당했다. 그 덕에 그들은 입과 등에 족쇄를 차야 했다. 마부에게 멱살 잡힌 꼴이다.
이제 시대적 맥락에서 왜 검찰이 진보와는 ‘웬수’가 되고, 보수와는 동맹을 맺었는지 살펴볼 차례다.
이철희 |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다 정치에 나서 20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마지막 정무수석을 지냈다. 2020년 ‘대통령 탄핵 결정요인 분석: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 비교’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인자를 만든 참모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등의 책을 냈고, ‘진보는 어떻게 다수파가 되는가’ 등의 역서가 있다. 우리 정치가 어쩌다 이렇게 나빠졌는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나아질 것인지 등에 대해 터놓고 얘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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