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규 칼럼] 고졸 얼리, 대세가 될까?

조원규 2024. 8. 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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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얼리, 대세가 되지 않을까요?
랭킹 5위 이내 선수는 얼리가 좋다
대학은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
과제는 제2의 송교창을 만들 시스템

“스카우트팀이 바빠졌다. 당장 이찬영의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감독님이 언제 영상을 요청할지 모른다.”

이찬영의 얼리 선언 후 모 남자프로농구 구단 관계자의 말이다. 이근준, 박정웅에 이어 이찬영도 얼리 드래프트 참가를 결정했다. 이찬영은 송도고의 주득점원이다. 퍼리미터 지역에서의 슈팅과 돌파, 패스 모두 수준급이다. U18 대표팀에 승선했고, 공격이 답답할 때 해결사 역할을 기대한다. 앞서 얼리를 선언한 두 선수와 비교하면 수비의 적극성은 다소 아쉽다는 평가다. 그래도 높은 순위에서 뽑힐 잠재력이 있다.

이근준과 박정웅은 1순위도 가능하다는 평가다. 물론 변수는 많다. 시각에 따라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다를 수 있다. 팀 성적이 필요한 팀은 즉시 전력감을 원한다. 이 경우 당장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팀에 꼭 필요한 포지션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대학 선배들의 얼리 선택도 지켜봐야 한다.

대학과 프로 모두 계산이 복잡해졌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대학부터 살펴보자. 농구는 선호도가 확실하다. 대부분의 선수가 고려대와 연세대를 가장 선호한다. 다음은 수도권 대학이다. 경희대, 동국대, 성균관대, 중앙대, 한양대(이상 가나다순) 등이다. 대체로 서울에서 멀수록 선호도가 낮아진다. 팀 성적과 프로 진출 성적표도 영향을 미친다.

 


이근준과 박정웅은 고려대와 연세대도 탐을 내던 선수다. 팀 성적과 개인 성적 모두 좋다.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찬영도 탐내는 학교가 많았다. 그런데 세 선수의 자리가 비었다. 대입 눈치작전이 심해질 전망이다. 그 결과에 따라 12개 대학의 리쿠르팅 성적표가 달라질 수 있다. 대학 감독들은 고등학교 유망주들의 동향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

프로구단도 급하긴 마찬가지다. 픽 순위에 따른 경우의 수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송교창의 고졸 성공 신화 이후로 서명진, 김형빈, 차민석, 조석호 등 고교 유망주의 얼리 선택이 많아졌다. 그러나 송교창 이후 픽 순위 대비 퍼포먼스는 기대 이하였다. 그래서 셈법은 더 복잡하다.

▲ 송교창 신화, 그 이후는?

송교창은 2015년 1라운드 3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첫 시즌은 20경기 평균 1.5득점으로 평범했다. 2년 차 시즌은 달랐다 52경기에 나왔고 평균 32분을 뛰었다. 11.9득점, 5.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기량발전상을 받았다. 당시 송교창의 기록은 연봉 7억 1천만 원을 받던 문태영(평균 12.4점, 4.3리바운드)과 비슷했다. 송교창은 상무 입대 직전인 2021~2022시즌 7억 5천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후 서명진만 프로에 연착륙했다. 2018년 1라운드 3순위로 지명된 서명진도 데뷔 시즌은 21경기 평균 2.7득점에 그쳤다. 이후 꾸준히 출전 시간을 늘렸고, 2022~2023시즌에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전 경기에 출장했고 평균 27분 11초를 뛰었다. 평균 득점도 10.2점으로 상승했다.



2019년 1라운드 5순위로 지명된 김형빈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2022~2023시즌에야 26경기 평균 8분 55초를 뛰며 2.6득점, 2리바운드. 다음 시즌에 평균 득점을 3.7점으로 높였으나 출전 시간과 리바운드는 줄었다. 득점의 80%는 4쿼터에 만들어졌다. 김형빈의 득점이 승부에 미치는 영향은 적었다.

차민석은 최초의 고졸 신인 1순위로 프로에 입성했다. 그러나 아직 1순위 기대치에 맞는 활약은 아니다. 다행히 2023~2024시즌은 22경기, 평균 20분 이상 출전에 6.3득점을 기록했다. 가능성은 확인한 것이다. 차민석과 같은 해에 진출한 조석호는 통산 4경기 출전에 그쳤다. 금명중 시절 한국중고농구 역사상 최초로 쿼드러플더블을 달성했던 유망주는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송교창과 서명진의 성공에는 운도 따랐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은퇴로 구단은 어린 유망주 육성의 명분을 얻었다. 반면 차민석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잦은 부상으로 기회가 줄었다. 얼리는 선수 개인의 노력, 구단의 비전, 감독의 성향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운도 따라야 한다.

▲ 고교 상위 랭커는 얼리가 좋다

고졸 얼리에 대한 농구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전직 KBL 지도자 5인에게 물었다. 프로와 대학의 현직 감독은 이해당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 감독은 “고교 랭킹 5위 이내 선수는 얼리가 좋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1, 2년이 농구선수에게 필요한 근육을 만드는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기에 대학보다는 프로가 낫다.

B 감독은 한 걸음 더 나갔다. “각 구단이 한 명씩 얼리를 뽑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대학은 수업을 들어야 한다. 운동시간이 프로에 비해 적다. 성장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잠재력이 큰 선수를 빨리 관리하는 것이 한국농구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좋다는 견해다.

C 감독의 생각도 비슷하다. 아울러 “고교농구 활성화, 대학농구 평준화에도 좋다”고 봤다. 5명, 10명의 선수가 프로에 가면 5명, 10명이 더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고등학교 농구선수에게 대학 진학은 예민하다. 대학 진학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당면한 선수 수급의 어려움도 일부 해소할 수 있다는 기대다.



고교농구 유망주 풀이 넓지 않다. 연세대와 고려대가 오랜 기간 대학농구 패권을 양분하는 이유다. “가장 우수한 선수들이 프로에 직행하면 대학 간 격차는 줄어든다. 실제로 대학야구나 대학축구는 연세대와 고려대 시대가 끝났다”라고 C 감독은 말했다. 야구는 유망주의 2년제 대학 선호도가 높다. 제약 없이 프로에 일찍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는 대학에 위탁하는 개념이 강하다.

D 감독은 “피지컬이 중요하다. 몸싸움이 되면 얼리도 좋은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프로에 대학 졸업장은 필요하지 않다”라며 경쟁력이 있는 선수는 조기에 프로 진출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했다. 다만 "프로에서 통하는 수준의 높이나 힘을 가졌을 때"라는 전제를 달았다.

E 코치는 “대학은 프로와 비교해 운동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가 커질 수밖에 없다”라며 “NBA도 4년을 모두 마친 선수는 인기가 없다. (유망주) 대부분은 1년 혹은 2년만 마치고 프로에 나간다”고 했다. 고졸뿐만 아니라 대학교 저학년도 얼리를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 2부 리그와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은 필수

8월 27일 현재 KBL 등록 국내 선수는 148명이다. 10개 팀이니 팀당 14.8명이다. 상무까지 포함해도 168명이다. 선수가 많지 않다. 정상적인 2부 리그 운영이 어렵다. NBA도 그랬다. 그래서 마이너리그 격인 NBA D-League(Development League)는 모 구단 운영에서 NBA 직접 관리로 바뀌었다.

D-리그에서 뛰는 대부분은 NBA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하거나 방출된 선수들이다. 이미 한번 검증을 거친 선수들이라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희망을 이어갈 수는 있다. 2007 NBA 드래프트 2라운드 56순위로 지명된 라몬 세션스(Ramon Sessions)가 그랬다. D-리그 출신으로 NBA에서 9시즌을 뛰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선수가 선배들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B 감독은 그것을 “구력의 차이”로 설명한다. 프로 선배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선수들과 오래 경쟁했다. 외국인 선수, 필리핀 출신 가드들도 경쟁의 대상이다. 그 차이가 크다. 어린 선수들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

경기 경험은 성장에 필수 요소다. 2부 리그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시즌 기준 KBL D-리그에 참가한 팀은 7개다. 3개 팀은 참가하지 않았다. 참가한 팀의 2군 로스터도 풍부하지 않았다. 모 구단의 운영이 어려우면 KBL이 관리하는 시스템도 고려할 수 있다.



C 감독은 프로야구의 ‘2차 드래프트’ 도입을 주장했다. “재능은 있는데 경기에 못 나오는 선수들이 있다. 그 선수들은 뛸 수 있는 다른 팀으로 보내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리그 전체의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 2차 드래프트와 2부 리그 운영 모두 유망주 육성이 목적이다.

“이제 고졸 얼리는 대세가 되지 않을까요?”

한 농구인의 말이다. 과연 그럴까? 송교창의 성공 이후 한때 고졸 얼리가 유행했다. 그런데 유행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넥스트 송교창이 없었기 때문이다. 고졸 얼리가 대세가 되려면 실패보다 성공 사례가 많아야 한다.

▲ 정답은 없다. 과제는 시스템

농구선수로서의 성공만 생각하면 대학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대학은 운동시간이 적다. 프로와 비교해 체계적이지도 않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일종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공부만이 아니다. 네트워크도 있다. 대학에서 맺은 인연은 선수 은퇴 후 진로 모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NBA도 고졸 얼리는 변화가 많았다. 대학 졸업장 문제가 본질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돈과 인기를 얻는 것 혹은 그 반대에 대한 부작용이다. 반면 유럽은 더 어린 나이에 프로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다. 1999년생 루카 돈치치(댈러스 매버릭스)는 2015년 레알마드리드에 입단했다. 스페인의 육성 시스템이 낳은 결과다.

정답은 없다. 선수마다 성향이 다르고 사정이 다르다. 대학에서 몸을 만들고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한 선수가 있다. 빨리 더 큰 무대에서 경쟁하는 것이 좋은 선수도 있다. 과제는 그 어떤 선택도 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대학은 프로 외에 다른 진로 선택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프로는 ‘안정’보다 ‘도전’을 택한 선수들의 성장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는 체계적인 유망주 육성 시스템이다.

조원규_점프볼 칼럼니스트
chowk87@naver.com

#사진_점프볼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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