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설] 손바닥만 한 운동장을 ‘국제 야구장’으로 부르는 교토국제고…재일동포들의 영원한 야구부다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2024. 8. 3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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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 야구부./학교 소셜미디어
재일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 야구부./학교 소셜미디어

유난히도 길게 가는 더위, 재일동포들이 준 감동으로 그 고통을 달랠 수 있었다. 실핏줄 터진 김지수 선수와 허미미 선수의 파리올림픽 유도 메달. 교토국제고교의 일본 고시엔 전국야구대회 우승은 시원한 빗줄기와도 같았다. 국민들의 마음을 크게 적셨다. 김지수의 눈물을 보면서, ‘동해바다 건너서..’ 시작하는 교가를 들으며 국민들은 재일동포들과 함께 울었다.

1947년 재일동포들이 세운 학교는 현재 일본 학생이 대부분. 누군가는 “선수 전부가 일본 아이들인데 한국이 왜 난리인가?”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교토국제고교는 한국 정부가 인가한 한국의 학교. 동포들에게는 여전히 마음 속 모교요 고향이다. 늘 ‘재일한국인’의 존재감을 일깨우는 곳. ‘본국’ 사람들도 그들이 동포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값진 곳이 아닐 수 없다.

재일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 야구부./학교 소셜미디어

■교토국제고는 재일동포들을 이어주는 다리다

몇 달 전 오사카의 재일동포는 자신의 개인방송에 교토국제고가 고시엔구장에서 지역 예선 경기를 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50여년을 산 그에게 구장은 켜켜이 추억이 쌓인 장소. 1981년 재일동포 선수 다섯 명이 고시엔 대회 결승에 오른 두 학교의 주전으로 뛴 것은 지금 떠올려도 신나고 가슴 벅차오른다.

그는 “중계진이 ‘김 상’ ‘강 상’으로 불렀다. 뒷날 일본프로야구 최고 선수가 된 김의명은 재일동포임을 밝히고 한국 이름을 그대로 썼다”며 자랑스러움과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방송이 선수 성을 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일본방송이 한국 성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그에겐 감격이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다. 재일동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팠으면 그럴까?

그는 교토국제고를 다닌 적이 없다. 특별한 인연도 없다. 굳이 교토국제의 시합 날을 골라 고시엔에 간 것은 재일동포들이 세운, 재일동포들이 다니는 학교이기 때문. 장훈, 김정일 등 전설의 프로야구선수를 많이 길러 낸 재일동포들은 야구 애착이 남다르다. 그러니 야구 잘 하는 동포학교를 응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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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교토국제고 교가부터 들려준다. 학교에 대한 그의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시합 전 대형화면의 K-팝 동아리 모습도 담긴 학교 영상을 보면서 “한국어 수업도 한답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일본 학생들도 한글 교가를 부르며 한국어를 배우는 학교가 일본에 있다. 일본 야구의 성지인 고시엔구장에서 그 학교가 소개된다. 이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 평생을 산 그에게 남다른 의미일 것이다. 그의 ‘본국’에 사는 우리들은 잘 알 수 없는 재일동포만의 본능과 감성. 남의 나라에서 맵고 신 삶을 살아 온 그는 벅찬 감정이 북받쳤으리라... 모든 재일동포들이 그럴 것이다.

외야석의 그에게 마침 중년 부부가 자리를 찾으며 스스럼없이 한국말로 물었다. 교포. 전혀 처음 보는 사이지만 “끼리끼리 금방 알아본다”고 했다.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 그렇게 무섭다. 부부의 아들은 14년 전 교토국제고의 주장. 그날도 아들과 함께 다른 지역에서 응원하러 온 것이다. 이처럼 인연이 있든 없든 교토국제고는 동포들을 이어주는 다리다. 동포 학생들이 아무리 적어도 상관없다. 나의 아들이, 나의 동포가 뛰었으니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재일동포들의 영원한 야구부다.

■고맙지만 자존심 상하는 일본 신문의 기사

교토국제고가 결승전을 치루기 전날. 일본의 유명 신문은 강호가 된 비밀이 ‘불우한 환경’속에 숨겨져 있다고 적었다. 얼마나 처지가 딱했으면 애써 학교를 찾아가 그 불우함을 다뤘을까. 고맙지만 자존심 상하는 기사다.

“작은 언덕 위에 교사가 있다.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운동장이 있다. ‘운동장’이라 해도 크기는 70m☓60m 정도. 형태도 비뚤어진 사다리꼴 모양. 높이 20m 정도의 그물이 쳐져 있으나 타구가 자주 넘어 버린다. 타격 연습 때는 선수들이 미리 주차장에서 기다리며 타구가 차에 맞지 않도록 공 잡을 준비를 해야 한다. 왼쪽 방향은 나무가 우거져 있다. 연습 타격 때마다 조금만 멀리 치면 공을 잃어버리기 일쑤.

시미즈 시타 선수(2학년)는 중학 때 연습을 견학했다. ‘좁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나 이 운동장에서 선배들은 고시엔 4강에 갔다. 어떤 연습을 하면 그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이유를 알고 싶었다.’

‘선택과 집중.’ 좁아서 자유 타격을 할 수 없는 만큼 수비 연습을 철저히 한다. 실전 타격연습도 가끔 할 수밖에 없다. 오른쪽 방향으로 높이 뜬 공을 치면 주차장의 차나 학교 건물에 맞는다. 그래서 선수들은 평소 그물을 겨냥한 낮고 빠른 직선 타구를 노린다.

야구부 부부장은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 넓은 운동장이 있어도 제대로 연습하지 않으면 보물을 썩히는 것이 되고 만다’고 했다.

재일한국인이 세운 교토국제고 야구부./소셜미디어

2008년 취임 때 고마키 노리츠구 감독은 ‘큰 운동장이 있으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자신만의 연습 방법으로 전국의 강호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왔기 때문. 그는 이 좁은 운동장을 ‘국제 야구장’이라 부른다. ‘형편없는 환경에서, 혜택받은 강한 고등학교를 무찌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국제 야구장’이란 과장된 표현으로 아쉬움을 달래는 감독. 짠하다. 슬프다. 그러나 말도 안 되는 ‘불우한 환경’을 통 크게 넘기는 것이 놀랍다. 그러니 오랜 세월 16년을 버티고 마침내 우승했으리라…. 재일동포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의 끈기를 배운 덕분일까? 재일동포들의 영원한 야구부를 다함없이 돕고 응원하자.

[손태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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