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발등에 ‘핵‘ 떨어지겠네...한반도에 벌어질 ‘억지 딜레마‘
과거 한·미 합동군사연습과는 다른 차원의 훈련이 한반도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한·미·일과 북·중·러 두 진영이 핵무기 사용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핵 사용 시나리오를 전제로 한 군사훈련을 할 판이다. 핵보유국인 미국·중국·러시아 3국과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서 국제레짐을 위반하고 핵무장을 하는 북한을 포함하면, 핵 보유 4개국의 안보 이해관계가 한반도에서 부딪치고 있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중단되었다. 반면 한·미 군사연습은 진화했다. 성격부터 바뀌었다. 북한 핵 공격에 대한 반격 차원의 핵 작전 연습이 포함되었다. 7월30일~8월1일 한국과 미국은, 북한이 핵과 대량살상 무기로 도발할 경우를 대비해 핵과 재래식 무기를 통합하기 위한 ‘의사결정 절차’에 방점이 찍힌 ‘아이언 메이스(iron mace·철퇴) 24’ 연습을 실시했다.
이 연습은 지난 7월 한·미 정상이 서명한 ‘한·미 핵억제 핵 작전 지침’을 이행하기 위한 첫 번째 조치다. ‘철퇴 연습’은 북한 핵 사용을 가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미군의 핵전력과 우리 군의 재래식 전력이 함께 방어·반격하는 도상연습(CNI TTX)이다. 도상연습은 지도에서 부대나 무기 등을 배치하고 이동시킨다.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이에 해당한다. 야외에서 실제 병력을 동원하는 야외 기동훈련(FTX)과 구분된다.
8월19일 시작하는 ‘을지 자유의 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에서 한·미 양국은 도상연습뿐 아니라 쌍룡연합상륙훈련과 같은 야외 기동훈련도 한다. 이번 연습은 한·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 동맹이 ‘핵 기반 동맹’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강조했던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을 처음으로 가동하는 훈련이 될 것이다.
한국과 ‘공동기획’하는 미국의 숨은 뜻
한·미 당국이 공식 발표한 문건에 따르면, ‘일체형(CNI·Conventional-Nuclear Integration)’은 ‘핵 및 재래식 통합 방안의 공동기획과 공동실행 논의’와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미국의 핵 작전에 통합’한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국 정부는 ‘공동기획’과 ‘공동실행’ 구절 때문에 고무된 듯하다. 김태효 청와대 안보실 1차장은 “핵·재래식 통합을 통해 우리 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핵 운용과 관련해 정보 공유, 협의, 기획, 연습, 훈련,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실전적 핵 대응 능력과 태세를 구비하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핵 정책과 관련해 다른 나라와 공동기획과 공동실행을 논의한 사례가 없다고 판단한 정부 당국자로서는 성과를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과 공동기획과 공동실행을 하는 데는 ‘숨은 뜻’이 있다. 미국이 ‘일체형 확장억제 협력’을 하는 것은 ‘한국의 재래식 전력을 미국의 핵 작전에 통합’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지난해 7월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 1차 회의 발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미 양국은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한 한국의 비핵 지원의 공동기획과 실행을 논의’한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해 ‘한국의 비핵 지원의 공동기획과 실행’을 논의한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 초대 안보실장이었던 김성환 교수는 일체형 확장억제에 대해 “우리 군이 미군과 함께 한반도 핵 운용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전략을 협의하고 기획하며, 연습·훈련·작전을 수행함으로써 실전 대응능력을 갖출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된 셈이다. ‘재래식 전력에 바탕을 둔 한·미 동맹’이 ‘핵에 기반한 동맹’으로 격상됐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한·미 핵협의그룹에 미국 대표로 참가한 비핀 나랑 미국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그는 7월17일(현지 시각) 미국의 소리(VOA)와 한 인터뷰에서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해 한국의 재래식 지원을 ‘조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만이 미국 핵무기의 사용을 승인할 수 있다. 그러나 확장억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는 동맹국들의 재래식 지원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 대응이 어떤 모습일지 조율해야 한다. 제가 동등한 파트너라고 말하는 것은 미국의 핵 작전에 대한 한국의 재래식 지원을 조율하는 능력을 높였다는 의미다. 한국이 미국을 지원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개념을 결정할 때 우리는 동등한 파트너로서 접근한다.”
나랑 차관보의 발언은 지극히 타당하다. ‘확장억제’라는 개념 자체가 미국의 핵 능력뿐만 아니라 재래식 능력으로 확장시켜 외부 핵 위협으로부터 우산을 씌워주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확장억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동맹국들로부터 재래식 지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높아졌다는 상황 변화가 생겼다. 그래서 ‘논의’나 ‘조율’의 절차를 강조한 것이다. 독자적 핵무장을 추구하고 싶은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은 ‘논의’나 ‘조율’에 대한 절차가 강조된 것에 고무되고 있다.
한·미 연합연습뿐만 아니라 한·미·일 연합연습도 정례화되고 있다. 7월28일 한·미·일 3국 국방부 장관은 일본 도쿄 방위성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프레임워크(TSCF) 협력 각서(MOC)에 서명했다. 이 협력 각서는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대한 기본 방향, 정책, 지침을 제시하는 최초 문서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은 한·미·일 군사협력관계를 사실상 ‘군사 신동맹’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번 협력 각서는 이를 세부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한·미·일 3국 관계는 유사 군사동맹 차원이 아니라 21세기형 군사동맹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비정기적으로 실시해온 3국 군사훈련을 정례적·체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에 대한 실시간 공유와 효과적 운용을 위한 체계도 강화했다. 또 3국 국방장관 회담, 합참의장 회의를 순환하며 개최한다.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는 우리 국방장관과 일본 방위장관 상호 방문 활성화, 한국 육해공 참모총장과 일본 막료장 간 상호 방문 재개에도 합의했다. 또 육군-육상자위대, 해군-해상자위대, 공군-항공자위대 사이에 정례 협의와 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이런 형태가 바로 21세기형 군사동맹의 모습이다.
연합연습 범위도 확대되었다. 이 협력 각서에서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범위를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그리고 그 너머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역내 도전과 도발, 위협에 대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미국의 숨은 뜻은 2022년 바이든 정부가 발간한 ‘핵 태세 검토 보고(NPR·Nuclear Posture Review)’에 잘 나타나 있다. NPR은 미국의 핵전략에 대해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보고서다. 2022년 NPR에 따르면 미국은 확장억지와 맞춤형 비핵 능력을 접목하는 ‘통합 억지 접근(integrated deterrence appraoch)’으로 억지력의 효과를 유지하려는 전략을 수립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미국이 확장억제와 비핵 능력을 접목하기 위해 재래식 무기에 대한 유용성을 평가했다는 점이다. 핵 능력과 비핵 능력 결합이 통합 억지 접근의 핵심이다. 즉, 미국의 핵 작전 수립 과정에 동맹국이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동맹국의 비핵 능력을 활용하기 위해 동맹국과 공동기획 및 연습을 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일체형(CNI) 확장억제에 고무된 상황은 사실 국제분쟁에 연루되는 위험지수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다.
핵 관리 체계 점차 정밀화하는 북한
워싱턴의 전략 변화는 중국의 군사능력 발전에 따른 대응 차원이다. 중국은 미국 항공모함을 위협할 수 있는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확보했다. 중국 영토 내 목표물에 대한 미국의 정밀타격 작전 환경이 급격히 바뀐 것이다.
미국은 다각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필리핀, 오스트레일리아, 파푸아뉴기니에 있는 미군 기지를 활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는 이유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필리핀 등과 양자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 관계를 21세기형 신동맹으로 끌어올린 이유다.
한·미·일뿐만 아니라 북한도 핵 반격이라는 명분으로 핵무기 사용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4월23일 ‘핵 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을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핵 위기 사태가 발생하면 ‘경보 발령-반격 태세로 이행-지휘 체계와 핵 반격 부대 가동-초대형 방사포탄 발사’ 순서대로 대응하는 훈련이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북한이 핵 위기 사태 경보인 ‘화산 경보’ 체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남한 전역에 도달할 수 있는 미사일인 초대형 방사포에 전술 핵탄두 ‘화산 31’을 장착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북한은 이 훈련을 통해 “전체 핵 무력에 대한 지휘 및 관리통제 운용체계의 믿음성을 다각적으로 재검열하고 초대형 방사 포병부대들을 신속히 핵 반격에로 넘어가게 하기 위한 행동 질서와 전투조법들을 숙달하였다”라고 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초대형 방사포들의 높은 명중 정확성에 대하여 마치 저격수 보총사격을 본 것만 같다”라며 만족해했다.
북한은 이번 훈련에서 지난해 3월에 이어 두 번째로 국가핵무기종합관리체계에 ‘핵 방아쇠’를 작동시켰다(〈시사IN〉 제814호 ‘김정은의 핵 방아쇠, 낯선 이름에 담긴 뜻’ 기사 참조). 핵 방아쇠가 핵무기 사용에 대한 절차를 관리하는 체계라면, 이번에 처음 등장한 용어인 ‘화산 경보’는 경보 발령 체계다. 북한 핵 관리 체계가 점차 정밀화되는 추세다. 북한의 핵무력법에 따르면 북한의 핵 사용의 문턱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이런 상황을 미국의 NPR은 ‘억지 딜레마(deterrence dilemma)’라고 정의한다. 그동안 ‘안보 딜레마’라는 용어는 국제사회에서 자주 통용되었다. 한 나라의 안보를 위해 군사력을 강화하면, 이에 맞서 상대국도 군사력을 강화해 도리어 안보를 위협한다는 의미다. 억지 딜레마는 2022년 NPR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미국에 억지 딜레마를 제공하는 나라는 북한이다. 억지 딜레마에 대해 NPR 비공개본에 상세한 설명이 있을 수 있다. 공개본에는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여러 핵 국가가 개입하여 분쟁이 비화할 수 있다’라는 표현만 나온다.
억지 딜레마의 상황은 이미 한반도에서 벌어질 조짐이다. 한반도 핵 위기 1차 책임은 국제레짐에서 이탈해 핵무기를 개발하는 북한이 져야 하지만, 북한 핵 저장고가 강화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기한 미국도 같은 무게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미국의 새로운 억지 전략에 무지한 채, 미국과 핵 공유를 했다고 흥분하는 한국 정부는 대단히 위태로워 보인다. 최근 외교안보 라인의 ‘돌려막기 인사’ 만 보더라도 그 무지와 위험성이 드러난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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