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침체로 성장 전망 떨어지는데…자화자찬 바빴던 尹
수출 급증했다지만 성장률 전망은 줄줄이 하향 조정
고용 확대·임금 인상으로 이어지진 않는 수출…그동안 내수는 침체일로
'부자 감세'로 역대급 재정 위기 자초…바뀐 기준까지 감추며 자화자찬 급급
경제 뇌관 가계부채·부동산 문제에도 안일한 인식만 드러내
"우리의 경쟁력과 성장 추세를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가 확실하게 살아나고 있고, 앞으로 더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국민 여러분께 분명하게 말씀을 드립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9일 '국정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경제 지표를 '아전인수'격으로 활용하며 '자화자찬'으로 가득 채웠다.
서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있는 가계부채와 집값의 폭증, 고용침체와 실질임금 하락에 고금리·고물가까지 맞물려 급격히 침체된 내수, 감세 일변도 정책으로 2년 연속 세수 펑크 위기에 몰린 재정건전성 악화 등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문제 인식조차 결여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내놓았다.
'수출 증가' 강조하며 자화자찬 반복…정작 성장률은 줄줄이 하향 조정
이날 윤 대통령은 "세일즈 외교도 적극적으로 펼쳐왔다"며 체코 원전 건설 사업 수주 성과도 "제가 직접 챙길 계획"이라고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면서 기자회견문의 첫 머리를 장식했다. 지난해 '카르텔 척결'을 명분으로 유례가 없는 R&D 예산 삭감을 벌이며 업계의 반발을 샀던 현실과 동떨어지게, 기업 규제 완화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을 내세워 "첨단 산업 발전의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쏟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현재 한국 경제 성적표에 대해서는 글로벌 AI(인공지능) 업계의 발달로 수요가 급증한 반도체 산업 덕분에 증가한 수출 실적을 거듭 강조하며 "과거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이 된 것"이라고 호평했다. 또 지난 7월 IMF(국제통화기금)이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한 일을 "주요 선진국 중 두번째로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는 377억 3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달러 강세와 AI 업계 호황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수출이 급증한 덕분이다. 최근 반도체 수출은 한국 전체 수출액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지난달에도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달 전체 수출액의 19.5%에 달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강조한 것과 달리 올해 2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0.2%로 전분기보다 역성장했다. 최근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과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5%, 2.4%로 잡아 지난 5월 전망보다 0.1%p씩 줄줄이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아주대학교 국제학부 김용기 교수는 "이미 지난해 GDP 성장률도 1.4%로 매우 낮았고, 잠재성장률도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며 "특히 정부의 GDP에 대한 성장기여도는 2022년 4분기 0.7%p, 2023년 4분기 0.4%p, 2024년 1분기 0.1%p, 2024년 2분기는 0.0%p에 불과해 정부가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도, 고용도 역대 최고라는 尹…내수 침체로 고통받는 서민들 안 보이나
수출 호조세에도 이처럼 한국 경제의 성장 전망이 어두운 까닭은 무엇일까. KDI는 "기존 전망에 비해 수출 증가세는 확대되는 반면,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회복은 지연"되고 있다고 짚었다. 한은도 "내수는 회복 흐름을 재개했지만 회복세가 더딘 것으로 평가된다"고 진단했다.
현재 한국의 역대급 흑자 행진은 수출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환율·고금리로 내수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수입할 수요가 줄어든 탓이기도 하다.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고용 확대·임금상승을 통해 내수 시장으로 흘러들어오는 '낙수 효과'가 단절되면서 서민들의 체감 경기는 차갑기만 하다.
최근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 석유제품 등은 모두 제조업이다. 하지만 반도체는 애초 고용 유발 효과가 매우 낮은 산업이고, 자동차 등도 기대만큼 고용을 늘리지 않고 있다. 이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보면 제조업 고용 증가폭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지난 5월 한 달 1만 1천 명을 기록한 빼면 줄곧 1만 명을 넘지 못하며 0% 초반대 증가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고용률은 30개월 연속 최고를 기록했고, 실업률 또한 역대 최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50대, 60대 노인 일자리 사업이 최근 100만 개가 넘어가면서 고용률이 높아보이는 착시효과"라며 "20대와 40대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60대 이상에서 고용이 27만 8천 명 증가했지만, 15~29세 청년층은 14만 9천 명 감소했다. 일자리를 가진 노동자를 보여주는 고용률에도, 구직 활동자를 보여주는 실업률에도 잡히지 않는 비경제활동인구를 살펴보면, 청년층 중 별다른 이유 없이 구직을 포기한 '쉬었음' 인구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4만 2천 명 늘어난 44만 3천 명에 달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만약 해당 업종들이 충분히 성숙해 추가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적어도 이미 고용된 노동자들은 충분한 임금을 받고 있을까? 통계청 등에 따르면 치솟는 물가에 실질임금은 윤석열 정부 첫해인 2022년 -0.2%, 지난해 -1.1%를 기록했고, 올해 상반기에도 0.4% 감소해 3년 연속 실질임금이 하락할 위기다.
국민들이 돈을 벌지 못하니 내수 시장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올해 2분기 전국 소매판매는 전년동기대비 2.9% 감소해 9분기 연속 감소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4.5%) 이후 15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는 100만 명에 육박하는데, 지난달에도 고용원 없는 영세자영업자가 11만 명이나 줄어서 지난해 9월(-2만 명) 이후 11개월 연속 여전히 감소 중이다.
'부자 감세'로 자초한 재정 위기…바뀐 기준 쏙 감추고 "국가채무 줄였다" 주장
민간에 여력이 없다면, 정부가 적극적 재정 사업을 펼치며 시중에 돈을 풀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집권 첫해부터 펼친 '감세 드라이브' 후폭풍으로 찾아온 2년 연속 세수 펑크 위기에 정부 재정은 '제 코가 석자'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를 대거 낮췄고, 올해도 상속세 감세에 나서면서 '부자감세' 논란을 자초해왔다. 과도한 감세 정책에 지난해 국세수입은 애초 예상치보다 56조 4천억 원 덜 걷히는, 비교할 대상조차 찾기 어려운 역대급 세수 펑크가 일어났다. 심지어 올해는 더 상황이 심각해서 상반기까지 들어온 세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조 원 더 줄었다.
이에 맞서 윤 대통령은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세수가 줄어도 돈을 아껴쓰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 재정에 대해서는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채무와 대조하며 "내년 예산안 기준 국가채무비율이 48.3%로, 3년간 1.3%p 증가에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87조 원으로 코로나19로 전세계 경제가 멈춰섰던 3년 간을 제외하면 역대 최악 수준이었다. 올해 상반기 역시 재정 적자가 103조 4천억 원에 달해 역대 두번째로 높은 기록이다.
더구나 이마저도 GDP산출 기준연도가 개편돼 GDP 규모가 커지면서, 분모 자체가 커졌기 때문에 자연히 국가채무비율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사실을 감춘 얘기다. 어느덧 임기 반환점을 돌아 집권 3년차를 맞았는데도, 비교 기준조차 다른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지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던 전임 정부를 굳이 소환해 비교하면서 재정 악화를 감추려한 것이다.
시한폭탄 가계부채·과열된 부동산에도 "잘 관리하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답변 반복
윤 대통령은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GDP 대비 거의 100%에 가까운, 90% 후반이었는데 우리 정부는 90%대 초반으로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위와 같이 GDP 비교 기준이 달라진 결과인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올해 2분기 말 기준, 대출과 카드 사용 금액을 합친 가계신용 규모가 1896조 2천억 원으로 2분기에만 13조 8천억 원 급증해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자회견이 있기 불과 이틀 전인 지난 27일 금융감독원이 "가계부채가 적절한 관리 수준 범위를 벗어났다"고 평가한 일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한 대통령의 발언이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은 최근 수도권 아파트 급등 현상에 대해 "수도권에 기업과 인력 집중이 강해져서 수요 압박에 의해 집값이 오르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재개발을 안하고 공급도 안하고 징벌적 과세만 때리면 시장 구조가 왜곡된다"며 "되도록 징벌적 과세를 줄였고 필요할 때 적시에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지난 8.8 대책에서도 연평균 11% 이상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작 8.8 대책 이후 시장가격은 상승세를 보였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서울 민간아파트의 최근 1년간 ㎡당 평균 분양가는 1331만 5천 원(평당 약 4401만원)으로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특히 전년동월대비 37.62%나 급등해 역시 최대치다. 향후 집값에 대한 기대도 커져서 한은이 발표한 주택가격전망CSI는 118로 전월보다 3p 올라 2021년 10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내놓은 8.8 대책에 시장 반응은 뜨악했다. 그린벨트 해제 등은 야당·시민사회의 반발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워 공급 확대에 기여하기보다 기대심리만 부추길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초고층·대형 평수의 고급 아파트 단지를 짓도록 허용한 것도 비슷한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치솟는 집값과 가계부채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정책금융 기조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들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은 언급도 없었다. 단순히 공급을 확대해 집값을 잡겠다는 단순한 '수요-공급' 논리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서울대학교 이필상 특임교수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경제가 제대로 살아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가계부채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내수 침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금리를 인하해야 하는데, 부동산 정책을 잘못 써서 금리를 제대로 내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완전히 딜레마에 빠진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계속 늘고 있고 부동산 시장은 상승하는데 정부가 이것들을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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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김민재 기자 te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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