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부실한 기후 위기 대응에 제동…'끝 아닌 시작' 입법의 시간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CBS노컷뉴스 민소운 기자 2024. 8. 3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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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탄소중립법 8조 1항 '헌법 불합치'
헌법 전문 들어 "미래에 부담 떠넘기지 말아야"
부문·연도별 감축목표 위헌은 5대 4로 안돼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입법자에게 구체적 입법 의무와 책임 있어"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헌법 전문 中)

미래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우리는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12살 한제아 공개 변론 中)

헌법재판소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구체적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 탄소중립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아시아 첫 번째 기후 소송이 시작되고, 4년 반 만에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누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무엇보다 헌재는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계획을 세울 때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다. "꿈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며 '아기 기후 소송'에 나섰던 청구인 한제아 학생은 헌재 결정 이후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우리의 행동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31년 이후 '기후 대응 계획' 없어 …'미래 기본권' 침해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날 청소년·시민단체·영유아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 4건을 심리하고,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심판대에는 탄소중립기본법과 같은 법 시행령,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등이 올랐다. 올해 4월과 5월 두 차례 공개 변론도 했다. (관련기사: [법정B컷]"파국적 수준의 기후위기"…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스마트이미지 제공


탄소중립법 8조 1항은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35퍼센트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로 한다'고 돼 있다. 같은 법 시행령 3조 1항은 그 비율을 '40%'로 정했다.

같은 법에는 2050년에까지 실질적인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적혀있다.

헌재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에서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 간의 감축목표에 관해서는 어떤 형태의 정량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과소보호금지원칙 및 법률유보원칙에 반해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했으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과소보호금지 원칙은 국가가 국민의 법익 보호를 위해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함을, 법률유보 원칙은 일정한 행정권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하여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헌재는 탄소중립을 '어떻게' 달성할지 손에 잡히는 계획이 없어 미래 세대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탄소중립을 목표로 세우면서도 2031년 이후 대강의 목표치도 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상 주요 기본권인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대응을 두고 "기후 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최소한의 보호조치로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며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감축경로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2031년 이후의 기간에 대해서도 그 대강의 내용은 '법률'에 직접 규정돼야 한다"고 했다.

헌재는 "헌법 전문에서는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한다고 하는바 국가가 기후 위기의 위험 상황에 대응하는 보호조치를 마련함에 있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미래 국민의 자유 보장을 위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 사이의 평등한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다.

구체적 감축목표 위헌 확인에는 한 발 뒤로 물러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아기기후소송의 청구인 한제아 양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30년까지만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고 있는 현행 탄소중립법 조항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해 헌법에 어긋난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류영주 기자

그러나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하도록 한 같은 법 시행령 3조 1항에 대해서는 기각 결정했다.

재판부는 "시행령은 중장기 감축목표의 구체적인 비율의 수치를 정한 것일 뿐"이라며 이것 자체로 현재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 목표조차 없으면) 그나마 존재하는 정량적인 중간 목표마저 사라지므로, 오히려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후퇴하는 더욱 위헌적인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23년 수립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중 부문·연도별 감축목표를 두고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헌법소원을 낸 청소년과 시민단체는 부문·연도별 감축목표가 기후 위기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해 왔다. 정부는 경제와 산업에 미칠 영향을 고려할 때 감축 목표를 더 강화할 수 없다고 맞선 부분이기도 하다.

청구인들은 헌재가 정부의 설정 배출량 목표치를 높여야 한다고 했지만, 헌재는 구체적 수치까지 정하는 것은 사법적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봤다.

헌재는 "입법자 또는 집행자가 여러 평가 요소를 채택해 정한 '특정 연도'의 감축목표 비율에 관한 '구체적 수치'에 대해 원칙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기여해야 할 우리나라의 몫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단정해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이번 기후 소송이 큰 틀에서 기본권 침해를 인정했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할 거란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에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부문·연도별 감축목표는 중장기 감축목표를 달성할 수 없도록 설계됐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다만, 위헌 결정을 할 수 있는 심판 정족수는 6명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는 기준연도인 2018년은 '총배출량'으로, 목표연도인 2050년은 '순배출량'으로 기준을 삼았는데, 이에 대한 재판관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청소년 기후 소송대리인 이병주 변호사는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독일의 기후 소송처럼 우리나라 국회의 후속법 개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전체에 대해 실질적인 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시작'…이제 입법의 시간

스마트이미지 제공

헌재가 탄소중립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기에 해당 조항은 2026년 2월 28일까지만 효력이 인정된다. 정부와 국회는 개정 시한까지 헌재의 결정 취지에 맞게 기후 대책을 다시 수립해야 한다.

선고를 마치고 나온 청구인들이 "판결(결정)은 끝이 아닌 기후 대응의 시작"이라는 구호를 외친 이유다. 이제는 입법의 시간인 셈이다. 재판부도 법 개정 논의 등 정치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했다.

헌재는 "이른바 미래세대는 기후위기의 영향에 더 크게 노출될 것임에도 현재의 민주적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제약돼 있다"며 "중장기적인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대해 입법자에게는 더욱 구체적인 입법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구성되는 입법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장기적인 대응책을 추구해야 할 기후위기와 같은 문제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될 구조적 위험이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의 긴급성에 비춰 온실가스의 급속한 감축을 위해 노력하고 관련 정책의 방향을 늦지 않게 제시할 필요성, 입법자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정량적인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대강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한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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