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로 밥줄 끊기고 사냥꾼에 목숨 잃고…박제도 ‘푸대접’[멸종열전]

기자 2024. 8.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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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까치오리
현재 캐나다 레드패스 박물관에서 올바로 전시되고 있는 까치오리. 출처 www.inaturalist.org

1878년 12월12일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뉴욕 롱아일랜드의 해안가. 회색빛 하늘 아래 바닷바람이 서서히 불어오며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온다. 해안가에는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쓸쓸한 풍경을 더한다.

한 사냥꾼이 낡은 사냥용 소총을 조심스럽게 쥐고,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의 옷은 두껍고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어깨에는 오래된 사냥 가방을 메고 있다. 그의 눈은 목표물을 향해 날카롭게 고정되어 있다.

사냥꾼의 눈에 오리 한 마리가 띄었다. 검고 희끄무레한 깃털을 가진 작은 오리는 잔잔한 물결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떠 있으면서도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사냥꾼은 오리를 찬찬히 살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검은 줄무늬가 선명한 흰색 깃털과 둥근 머리의 몸집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사냥꾼은 이내 자신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오리라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사냥꾼은 숨을 고르며 소총을 들어 오리를 겨냥한다. 그의 손가락은 방아쇠에 살며시 올려져 있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함이 해안가를 감싼다. 사냥꾼의 눈은 정확하게 오리를 주시하고, 숨을 죽인 채 긴장을 풀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방아쇠가 당겨진다. 총성이 울려 퍼졌다. 해안가는 다시금 조용해지고 파도 소리만이 사라진 오리를 애도하듯 잔잔히 들려온다. 사냥꾼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의 격발로 한 종이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이 순간 까치오리(Camptorhynchus labradorius·캄토린쿠스 라브라도리우스)는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다행히 사냥꾼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았다.

까치오리의 멸종은 당시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1만년 이상 이어진 일상에 가까웠다.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을 갈라놓는 베링 해협에서 물이 빠진 적이 있다. 물이 빠진 베링 해협은 그 폭이 최대 700~1100㎞에 달하는 제법 넓은 지역이었다. 당연히 사람이 살았다. 여기에 살던 사람들은 점차 동쪽으로 생활 반경을 넓혀가다 1만4000년 전에는 알래스카에 도달하였고, 큰 동물들을 쫓아 캐나다 내륙과 해안지방으로 점차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그들은 대륙의 포유동물 135종을 멸종시켰다. 특히 덩치가 큰 포유동물의 4분의 3을 멸종시켰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생태계는 나름 균형을 잡아갔다. 하지만 한 번 일어난 일이 또 일어나지 못할 법은 없지 않은가.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캐나다 북동부의 래브라도 해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1만 년 이상 먼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땅을 가로챘으며 작은 동물들을 멸종시켰다.(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들여놓기 전 이미 까치오리는 흔한 종은 아니었다.)

까치오리의 생태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너무 일찍 멸종되었기 때문이다. 까치오리는 큰 나무 위에 마른 가지를 모아 지름 1m 정도의 공 모양 둥지를 짓고 번식한다. 봄에 갈색 얼룩이 있는 녹색 알을 5~6개 낳는다. 알을 품은 지 17~18일이면 부화하고, 그 후 22~27일 동안 새끼를 키우다가 둥지를 떠난다. 쥐와 곤충도 잡아먹는 잡식성이지만 사람들에게는 나무열매, 곡물, 감자, 고구마를 훔쳐 먹는 새로 보였을 뿐이다.

생물은 이름이 전부다. 이름을 알면 그 생물이 보인다. 나비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를 구분할 수 있다.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노랑부리저어새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름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까치오리를 북미 사람들은 스컹크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어떻게 생겼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름만 알려주고 상상해서 그리라고 하면 아마 사람들은 검은색과 흰색 크레파스만 집을 것이다.

까치오리의 생김새는 짐작하는 대로다. 머리와 목은 회색이고 목 주변에 흰색 띠가 있다. 가슴과 배는 흰색이고 가슴에는 검은 줄무늬가 있다. 회색 날개 끝에는 흰색 띠가 있으며 부리는 검은색이고 눈 주변에는 흰색 반점이 있다. 몸길이는 40~50㎝로 중간 크기에 속하며 날개길이는 70~80㎝ 정도다. 유난히 긴 부리와 둥근 꼬리도 주요 특징이다.

번식을 마친 까치오리는 주로 뉴저지와 뉴잉글랜드의 바닷가에서 모래사장과 얕은 바다의 연체동물과 작은 갑각류를 잡아 먹으며 살았다. 바닷가에서 까치오리의 습성을 본 사람들은 까치오리를 모래부리오리라고 불렀다.

아메리카 대륙서 1만년 이상 명맥
1878년 마지막 1마리 총탄에 희생
주요 먹이 연체동물·조개류 편중
서식 환경 변화 따라 급격히 멸종
9개국 박물관에 ‘박제’ 55마리뿐
제임스 오듀본이 그린 까치오리 한쌍. 누가 암컷이고 누가 수컷인지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더 아름다운 쪽이 수컷이다. 거의 모든 동물이 그렇다. 위키피디아

까치오리는 털이 매력적이었다. 깃털이 거래되었지만 본디 양이 많지 않아서 까치오리 깃털을 노린 사냥이 흔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까치오리는 맛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애써서 사냥할 새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물론 먹을 게 없을 때는 식용으로 사냥하기도 했지만 맛도 없는 데다 빨리 썩어서 값이 나가지 않았다. 사냥꾼들이 일부러 찾지는 않았다. 하지만 번식지에서는 알을 쉽게 도둑맞았다. 까치오리는 해마다 같은 집을 수리해서 쓰기 때문에 둥지는 매년 조금씩 더 커진다. 그리고 사람 눈에는 더 잘 띄었고 사람들은 기억력이 좋았다. 그렇다고 해서 알 몇 개 훔치겠다고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오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까치오리는 왜 멸종했을까? 먹을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캐나다와 미국 동부에 인구가 늘고 산업이 발전했다. 겨울철 먹이로 삼았던 홍합과 조개 같은 연체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모든 바다오리가 얕은 물의 연체동물을 즐겨 먹지만, 까치오리는 연체류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편식성이 컸다. 편식하는 동물치고 잘 사는 동물이 없다.

까치오리는 멸종했지만 우리는 아직 까치오리를 볼 수 있다. 비록 박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몇 마리 남지 않았다. 전 세계 까치오리 박제는 총 55마리에 불과하다. 그것도 영국(7곳), 프랑스(4곳), 독일(9곳),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러시아(각 1곳), 캐나다(4곳), 미국(9곳) 등 총 40곳의 자연사박물관에만 보관되어 있다.

그러면 자연사박물관에 가면 까치오리를 볼 수 있을까? 천만에! 대부분 수장고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다. (몇 마리는 은행의 안전금고 안에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과감하게 전시한 자연사박물관이 있었다. 몬트리올 맥길 대학교의 레드패스 박물관이다. 1882년에 세워진 레드패스 박물관은 캐나다가 최초로 박물관으로 설계하여 세운 박물관이다.

어떤 곳일까? 자동차와 여행에 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캐나다자동차협회(CAA)는 “소장품의 전시 상태는 예전과 거의 비슷하다”고 평하였다. 이게 무슨 뜻일까? 까치오리 박제와 알을 보겠다고 앞에서 말한 40곳의 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한 캐나다 조류학자 글렌 칠튼은 “이것은 전시 상태가 칙칙하고 먼지투성이며 지루하다는 의미의 정중한 표현이다. 하지만 몬트리올에서 폭풍우를 만났는데 커피 한잔 마실 돈이 없다면 가볼 만한 곳”이라고 해석했다.

레드패스 박물관은 캐나다에서 몇 안 되는 무료입장 박물관이다. 아무튼 레드패스 박물관은 다른 선택을 했다. 감춰둔 표본으로는 멸종에 대한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이유로 2007년 까치오리를 전시하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는 옳은 결정이라고 보인다. 내가 관장이라고 해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이 문제다. 레드패스 박물관은 까치오리를 유리 보관함에 넣은 채로 2층과 3층 사이의 계단참에 전시하였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던 사람들 가운데 까치오리에 관심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쪽 눈알은 빠져 있는 그야말로 허접한 박제인 데다 별다른 설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전 세계 55개밖에 없는 표본을 전시하면서 왜 허접한 상태로 설명도 하지 않았을까? 레드패스 박물관 직원들은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까치오리 표본의 중요성을 몰랐다. 까치오리 박제를 보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한 글렌 칠튼이 2009년 그 험난한 과정을 담은 여행기 <이상한 조류학자의 어쿠스틱 여행기>를 출간하자 레드패스 박물관은 잽싸게 박제를 수장고로 옮겼다. 이제야 까치오리 박제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다.(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요즘은 정상적으로 전시되고 있다.)

나는 2013년 7월3일 맥길 대학교의 레드패스 박물관에 방문했다. 폭풍이 불지도 않았고 커피값 정도는 있었지만 자연사박물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역시 레드패스 박물관은 계단참을 여전히 전시장으로 쓰고 있었다. 화가 잔뜩 난 채로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는 거대한 고릴라 박제는 정말 압권이었다. 그 어디서도 이렇게 멋진 고릴라 박제를 본 적이 없다. 조지라는 이름도 있다. 표범과 영양의 박제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멋진 박제들은 유리 보관함도 없이 그냥 계단에 노출되어 있다. 먼지가 쌓일 것이다. 청소부는 먼지떨이로 털 것이다. 아이들은 슬쩍슬쩍 만지고 지나갈 것이다. 박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전시였다.

원래 이 박제들은 유리장 속에 고이 모셔진 채 전시되어 있었지만, 새로 취임한 박물관장에게는 자신의 전공인 광물을 전시할 공간이 모자랐다. 신임 박물관장은 멋진 동물 박제를 유리장에서 층계참으로 옮겼다. 박제가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하게 보존된다고 해도 기껏해야 500년 정도 버틸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먼지에 노출시킨다면 그 수명은 불과 몇십 년으로 줄어들고, 그 아름다움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화난 고릴라의 표정을 볼 때 내 가슴이 다 아팠다.

남아 있는 까치오리 알은 정말 까치오리의 것일까? 궁금하면 확인해 보면 된다. 과학자들은 까치오리의 알껍질 9개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하여 여러 물새 염기서열과 비교했다. 9개 중 6개는 붉은가슴물떼새, 2개는 청둥오리, 1개는 참솜깃오리와 일치했다. 까치오리 표본에서 얻은 염기서열과 일치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남아 있는 까치오리 박제 55개 가운데 글렌 칠튼이 본 것은 총 54개다. 하나는 어디 갔을까? 원래 뉴욕자연사박물관에 예쁘게 전시되어 있었다. 천장에 파이프를 설치하는 공사를 하느라 작업자가 전시장 점검구를 잠깐 열어놓았을 때 누군가가 까치오리를 꺼내 유유히 사라졌다. 별일이 다 있다.

참, 베를린자연사박물관도 까치오리를 일반인이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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