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딸 '송혜희'를 보내며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딸도 함께 떠났다. 생사를 모른 채, 25년간 실종된 딸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가 생과 마지막 이별을 했을 때, 동아줄처럼 붙잡고 있던 딸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희망도 아스라이 사라졌다. 이제 전국 곳곳에 잊을만하면 기억을 되살리던 '송혜희 실종' 현수막은 더 이상 볼 수 없을지 모른다.
딸을 잃어버린 1999년 2월 13일부터 25년간 '자신의 인생'을 삭제하고 오로지 '딸의 생존'에만 몰두했던 아버지 송길용씨가 71세 일기로 지난 26일 생을 마쳤다. 트럭에 딸 사진을 붙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던 그 노력과 정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듯, 교통사고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딸이 실종된 이후 송씨가 딸을 찾기 위해 3년을 헤매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내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딸의 얼굴이 그려진 전단을 품에 안고 살던 아내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송씨는 아내가 떠난 후 같이 생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남겨진 첫째 딸, 계속 찾아야 하는 둘째 딸 생각에 차마 떠나지 못했다. 송씨는 2015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쉬지 않으면 (실종) 전단 500장 정도 돌릴 수 있고, 주말에는 700장까지 돌려요. 전국 팔도에 현수막이 붙지 않은 곳이 없고 지금까지 14년간 45만km를 달린 1t 트럭은 2년 전 폐차했어요."
기자도 이 현수막을 여러 번 봤다. 가장 많이 본 곳이 서울 한남대교 건너 경부고속도로 진입할 때다. 여느 실종 전단과 다르지 않아,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잊을만하면 눈에 띄는 현수막 속 이름과 간절한 문구, 17살 소녀의 앳된 얼굴이 뇌리 깊은 어떤 곳에 계속 꿈틀거리며 되살아났다.
어찌나 많이 봤던지 '송혜희'란 이름이 또렷이 각인됐다. 어떤 날은 일하다 알게 된 취재원의 이름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지인의 딸 이름으로 착각해 소환되기도 했다. 이름으로 시작해 내용을 파고들수록 송혜희 이야기는 저절로 눈물을 떨구는 '내 인생의 비가(悲歌)'로 엮였다.
둘째 딸 혜희는 전교 1, 2등을 놓치지 않던 수재로 통했고 언니와 용돈을 모아 아빠의 첫 휴대전화를 사준 복덩어리로 사랑받았다. 아버지는 진전없는 수사에도 단 하루도 희망을 거른 적이 없고 오로지 딸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약했다.
딸을 찾느라 전 재산을 잃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면서도 정부가 주는 지원금 60만원 중 40만원을 전단지와 현수막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두 차례 허리 수술을 하고 뇌경색을 앓으며 현수막을 포기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인생은 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오로지 딸을 향했다.
딸이 사준 휴대전화로 혹시 전화 올까 봐 '016' 번호를 17년 넘게 바꾸지 못한 '딸바보'. 아버지의 인생은 그렇게 46세에 멈췄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에 자신의 인생을 중지시키고 대신 딸의 이름 석자를 남은 삶에 채웠다. 어쩌면 어느 순간, 아버지는 딸의 생사를 가늠했을지도 모르지만 딸의 이름이 계속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기억되고 불려지는 동안 살아있음을, 존재되고 있음을, 그리고 관심받고 있음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부모 없이 자란 혜희 엄마와 11살 때부터 홀로 객지 생활을 한 나에게 혜희는 행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어이없이 실종된 딸의 삶이 그렇게라도 '존재해야'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전단을 뿌리고 현수막을 거는 그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혜희를 '우리 모두의 딸'로 받아들였을 법하다. 볼 때마다 한 번씩 불러보는 그 이름 송혜희.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생활인으로 살다 보니,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딸의 실종' 전단이 이제 더 이상 남의 얘기 같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혜희의 남아있는 마지막 관심도 서서히 꺼질 것 같다. 혜희의 삶과 혜희를 향한 관심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멈춘다고 생각하니,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과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든다. 부디, 인간의 노력으로 맺지 못한 이승에서의 부녀 인연이 저 너머 세상에선 환한 웃음으로 꽃피우길.
김고금평 에디터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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