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제국주의 부추긴 유럽 열강 향신료 쟁탈전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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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동양의 향신료는 매우 구하기 어렵고 값비싼 식재료였다.
유럽인의 향신료 열광은 대항해 시대와 지리상의 발견을 촉발했고 뒷날 근대로의 이행에 물적 토대를 놨다.
'향신료 전쟁'은 부제 그대로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를 다룬 책이다.
외국 서적과 자료를 찾아 독학하면서 세계화와 제국주의의 근원에 유럽 열강의 치열한 향신료 쟁탈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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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최광용 지음 l 한겨레출판 l 2만원
중세 유럽에서 동양의 향신료는 매우 구하기 어렵고 값비싼 식재료였다. 왕가와 부유한 귀족의 전유물 같았다. 향신료는 육류의 냄새를 잡아주고 장기간 보관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여러 약효까지 있다고 여겨졌다. 그중에도 정향, 육두구, 시나몬의 인기가 높았지만 단연 으뜸은 후추(spice·스파이스)였다. 유럽 상인들은 막대한 이익을 기대하며 이슬람 상인들에게 풍문으로만 들은 ‘스파이스 제도’를 찾아 나섰다.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멀고 험난한 항해도 마다하지 않았다. 유럽인의 향신료 열광은 대항해 시대와 지리상의 발견을 촉발했고 뒷날 근대로의 이행에 물적 토대를 놨다. 그러나 향신료 원산지의 사람들에게는 외세 침략과 식민 지배라는 날벼락이었다.
‘향신료 전쟁’은 부제 그대로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를 다룬 책이다. 지은이의 이력이 눈길을 끈다. 그 자신이 책에 나오는 모험가들처럼 30여년 동안 세계 80여개국을 돌아다니며 비즈니스와 여행을 병행했다. 자연스레 세계 각지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고, 특히 향신료의 역사와 매력에 푹 빠졌다. 외국 서적과 자료를 찾아 독학하면서 세계화와 제국주의의 근원에 유럽 열강의 치열한 향신료 쟁탈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패권 경쟁의 시작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열었다. 후추 원산지인 인도 남부와, 바로 밑 섬나라이자 시나몬 원산지인 실론(오늘날 스리랑카)이 주 무대였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선단은 인도로 가던 길에 실론에 상륙해 135년간 시나몬 숲을 독점했다. 스페인에선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국왕의 결혼으로 탄생한 연합왕국이 대서양과 인도양에서 위세를 떨쳤다. 두 나라의 해상 패권은 신흥 강국 네덜란드가 빼앗았다. 네덜란드는 믈라카 해협(말레이 반도 남단과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 사이) 너머 향신료가 넘쳐나는 말루쿠 제도를 석권하며 1640년 스리랑카도 차지했다.
네덜란드의 향신료 교역은 앞서 1602년 상인들이 세운 동인도회사가 주도했다. 동인도회사는 자원 수탈의 거점이자 실행 조직이었는데, 상인들이 투자자들에게 지분을 증명하는 문서를 나눠준 게 오늘날 주식의 효시가 됐다. 영국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칼레 해전(1588년)과 네덜란드와의 네 차례 전쟁(1652~1784)을 이기면서 세계제국으로 떠올랐다. 책은 최근 500년간 숨 가쁘게 전개된 세계사의 격변을 좇아가며 향신료처럼 다채롭고 맛깔스런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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