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필요한 만큼만 쓰는, 이것이 클레어 키건의 단편 [책&생각]

임인택 기자 2024. 8. 3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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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56). 아직은 설익은 이름, 하지만 지난 1년 새 가장 뜨거워진 이름이다.

이번에 출간된 키건의 초기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가 각기 논거를 추가해준다.

절제되고 지적인 암시는 실상 단편에서 더 돋을새김된다.

키건은 사상 가장 짧은 소설로 부커상 최종후보(2022)에 올랐을 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단순함"이란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언명과 함께, 씀에 있어 길게 "계속 나아가는 것보다 들어가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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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56). 사진 ©Ulf Andersen/Getty, 부커상 누리집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l 다산책방 l 1만6800원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56). 아직은 설익은 이름, 하지만 지난 1년 새 가장 뜨거워진 이름이다. 짧은 장편 단 두 권으로의 족적이다. 그중에서도 베스트가 ‘맡겨진 소녀’냐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냐로 독자들이 다툴 만하다.

이번에 출간된 키건의 초기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가 각기 논거를 추가해준다. 절제되고 지적인 암시는 실상 단편에서 더 돋을새김된다. 문장과 문장 사이 ‘넌지시’의 낌새들은 줄곧 적요하다. 그러다 말미엔 아니다, 틀렸다, 그 인물이 아팠구나, 풀숲을 뒤지듯 소설을 되읽게 되니 세 권으로 보건대 이건 키건 특유의 작법이 아니라 키건 자체다.

‘맡겨진 소녀’에 대척하는 작품이 소설집을 여는 ‘작별 선물’이다. 아일랜드 한 농가. 첫째, 둘째는 기숙학교 교육을 받았으나 공부를 잘하던 셋째(아들)와 막내(딸)는 10대 초중반부터 농장일과 가사를 돕는다. 도시로 가서 성장한 장남, 장녀가 종종 “선물과 낙관주의를 안고 오지만 낙관주의는 금방 시드는” 집. 특히 막내인 ‘당신’에겐 “그립지 않을 것”들 투성이인 집, 무엇보다 아빠, 또 엄마. 소설은 ‘당신’이 집을 떠나는 단 하루를 배경 삼지만 가부장제 아래 자행된 성폭력의 양태와 진실이 끔찍이 드리워져 있다. ‘당신’은 아마도 ‘입양’되는 길, ‘당신’은 소설에서 끝내 울지 않는다, 무너지지 않는다. 되레 셋째를 걱정한다. ‘당신’의 상처를 처음 공명해 준 오빠는 제 각오와 달리, 영영 저 농가를 벗어나지 못하겠지.

가난한 대가족의 아이를 한철 떠맡은 먼 친척 노부부가 보여준 배반 없는 사랑(‘맡겨진 소녀’)을 ‘작별 선물’의 ‘당신’은 미국에서 만날 새 가족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이 ‘입양’은 흡사 “미국으로 떠난 아일랜드 소녀의 비극”을 다룬 영화를 보며 오열하는 마사가 여주인공인 또 다른 단편 ‘삼림 관리인의 딸’에 삽화처럼 등장한다. 마사는 농장주 디건과 결혼했으나 “공허”에 짓눌린 삶을 지탱 중이다. ‘이야기’ 지어 들려주길 좋아하는 마사와 땅과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 마사의 절망은 마을 “저 아래” “계곡”에나 전해질 뿐이고, 그 또한 고스란히 되“돌려보”내질 뿐이다. 마사가 외도 비밀을 고백하는 반전에 또 반전은 모순의 땅, 특히 아일랜드 도시 밖 민중의 민낯이고, 한편 생명력이기도 하다. 가부장, 종교, 이웃, 빈부, 남녀, 욕망, 소문, 평판, 술, 비겁함, 두려움…, 이 모두를 때로 감추고 때로 들추는 ‘땅’의 음습한 공기가 활자가 되려면 키건의 함축, 생략과 복선의 감각이 요구될 수밖에 없겠다. 한 번의 주사로 여인을 잃고 침잠한 삶을 사는 남자(‘검은 말’)나 원치 않는 결혼 전 위악을 부리는 남자(‘굴복’)의 이야기가 이처럼 목가적일 수 있나. 이는 두둔이 아니라, 그 판에서 희생되는 아이와 여자를 키건이 ‘넌지시’ 보듬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말을 한다. 자기의 말에 자기가 슬퍼한다. 왜 말을 멈추고 서로 안아주지 않을까? 여자가 울고 있다.”

키건은 사상 가장 짧은 소설로 부커상 최종후보(2022)에 올랐을 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단순함”이란 미국 작가 제임스 볼드윈의 언명과 함께, 씀에 있어 길게 “계속 나아가는 것보다 들어가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맡겨진 소녀’의 안부가 새삼 궁금해진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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