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블랙리스트’가 연, 당신과 나를 지키는 서점

한겨레 2024. 8. 30.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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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책방은요소년의서
소년의서에서 이뤄지는 북토크, 강연, 독서모임 등은 모두 ‘연대’를 지향한다. 지난 5월11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문인들의 낭독회(304낭독회)가 열리고 있다. 소년의서 제공

소년의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린 책 ‘살아남은 아이’(리젬, 2014)를 판매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서점입니다. 책방지기는 변방연극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연극 활동을 해왔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게 되었어요. 또한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의 연극 ‘숙자이야기’를 초대해 공연하기도 했어요.

형제복지원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대감금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고,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 역시 국가에 의해 관리되었으나, 낙인을 홀로 감당하며 고립된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경계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변방이라는 의미가 그 안에서 압사한 것으로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통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일이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극을 하면서 경제 활동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점점 월세도 내기 어렵게 되었어요. 제2의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기로 결심했어요.

그리고 ‘살아남은 아이’를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서점 개업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곧 블랙리스트 싸움에 참여했고 서점은 거의 운영하지 못했습니다. 서점을 열었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했던 분들이 돌아가기 일쑤였습니다.

소년의서 전경. 서점이 위치한 골목길로 들어가기 전 왼쪽에 1935년 개관한 광주극장이 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와중에 지역 콘텐츠를 발굴하여 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습니다. 소년의서는 광주극장 옆에 있는데요, 현재까지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광주극장은 1935년 개관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극장입니다. 오롯이 조선인을 위한 문화시설로 만들어진 공간이었어요.

또한 일대는 조선인 상인들의 활동지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현재까지 직접 손으로 수제화, 양복, 양장 등을 제작하는 상인들의 이야기·자취를 담아 ‘충장디스커버리’(2016)를, 광주동구청과 함께 ‘동구의 인물’(2019, 2020), 충장상인회와 함께 ‘충장로 오래된 가게’(2020)를 발간했습니다.

소년의서 뒷마당이다. 장터가 열릴 때 이곳에서도 좌판이 벌어져 사람들이 드나든다. ⓒ유다, 소년의서 제공

소년의서라는 이름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증언한 한종선의 ‘살아남은 아이’, 그리고 5·18민주화운동을 이야기하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영감을 받아 짓게 되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사건’, ‘마땅한 권리를 가진’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책을 모은 ‘오월서가’를 운영하고, 여성, 장애, 환경 등으로 확장해 가면서 문학, 사회과학 서적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처음 서점에 방문하신 분들 하시는 말씀은 “책이 많다”이고, 다음 “많이 보지 못한 책들이 많아요!”입니다.

평소에 잘 모르는 책들을 발견하게 되어 반갑다는 손님들을 보면 저 역시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변방에서,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미학과 시선을 소통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러한 지향이 소년의서라는 지향을 통해 지속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랜 연대활동을 하며 책방지기는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책으로부터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최근에 다양한 작은 출판사들의 책이 많이 발간되는 경향이 반갑기도 합니다. 많은 노력 끝에 나오는 한 권의 책 발간 속에 담긴 수많은 과정과 이야기를 떠올리며 서점의 역할을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소년의서가 위치한 골목길엔 매달 둘째 주 토요일 ‘지구를 구하는 농부들의 장터’인 ‘지구농장터’가 열린다. 지난 8월10일 뜨거운 여름볕 아래 시장이 섰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소년의서는 일과 이후에도 불이 켜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방 운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대활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소년의서의 밤은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연대활동을 위한 회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북토크나 강연, 독서모임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이웃인 광주극장, 빵과장미, 소년의서의 공유공간과 영화의 집, 영화가 흐르는 골목에서는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지구를 구하는 농부들의 장터’인 ‘지구농장터’가 열리기도 합니다. 지구농장터에서는 자연재배 제철농산물과 그 가공품, 토종쌀, 제로웨이스트 제품 등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씨앗과 소농, 마을 공유지, 자급경제시장 활성화 등을 고민하면서 만들어진 지구농장터를 통해 생산과 유통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소년의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장소이기를 희망합니다. 그렇게 서점에 많은 목소리가 소리 없이 와글거리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의 방문으로 이 와글거림이 더 커졌으면 좋겠습니다.

광주/글·사진 임인자 소년의서 책방지기

소년의서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5가 62-25, 1층 광주극장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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