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끝에서 화이트홀이 탄생한다 [책&생각]
양자 중력 이론으로 화이트홀 해명
블랙홀에서 화이트홀이 태어나듯
우주는 빅뱅 끝없이 되풀이할 수도
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l 쌤앤파커스 l 1만 8000원
카를로 로벨리(68)는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고리) 양자 중력 이론 ’ 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탈리아 출신 이론물리학자다. 로벨리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삼아 블랙홀의 구조를 탐사해왔는데, 그 연장선에서 근년에는 블랙홀의 반대 현상인 화이트홀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연구를 집중하고 있다. ‘화이트홀’(2023)은 밝혀지지 않은 이 신비로운 존재가 어떻게 생성되고 작동하는지를 찬찬히 설명하는 책이다 .
출발점은 아인슈타인이 1915년에 발표한 일반상대성이론의 중력장 방정식이다. 아인슈타인의 발표 이후 이 방정식을 통해 블랙홀의 존재가 예측됐고 수십 년 뒤 실제로 우주에서 블랙홀이 관측됐다. 우리 은하의 한가운데 거대한 블랙홀이 있음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우주 곳곳에 수십억 개의 블랙홀이 퍼져 있다. 그러나 화이트홀은 지금까지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순전한 가설 속의 존재일 뿐이다. 로벨리는 우리에게 이미 알려진 블랙홀에서 설명을 시작해, 우리가 아직 모르는 화이트홀을 해명하는 데로 나아간다. 블랙홀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면 화이트홀이 어떻게 형성되고 작동하는지 그 윤곽을 그려낼 수 있다. 블랙홀의 내부를 여행해 마지막 지점을 통과하면 화이트홀의 세계가 펼쳐진다.
빅뱅 직후의 초기 우주로 눈을 돌려보자. 원시 우주는 거대한 수소 구름이 떠다니는 공간이다. 이 수소 구름이 모여 원시 별이 된다. 이 별이 자체 중력의 힘으로 수축해 가열되기 시작하면 별 안쪽의 수소들이 타올라 헬륨으로 변한다. 수소가 타면서 내뿜는 거대한 열은 팽창력이 되고 팽창력은 별을 안에서 떠받쳐 수축을 막는다. 이 균형 상태는 수소가 다 탈 때까지 수십억 년 동안 지속된다. 마침내 수소가 소진되면 별은 자체 중력을 견디지 못해 안으로 붕괴한다. 그 붕괴의 결과로 블랙홀이 형성된다. 블랙홀의 중력은 너무나 커서 가까이 오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빛도 빠져나갈 수 없어 ‘검은 구멍’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블랙홀이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1974년 스티븐 호킹은 블랙홀이 양자 규모의 미세한 복사열을 밖으로 내뿜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호킹 복사로 인해 블랙홀 속 물질은 에너지를 점점 잃는다. 또 자체 중력으로 크기도 점점 더 작아진다. 물리학자들 다수는 이 물질이 결국에는 사라져버리고 블랙홀도 사멸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여기서 로벨리는 다른 결론을 낸다. 블랙홀은 사라지지 않고 화이트홀로 변한다.
어떻게 블랙홀은 화이트홀이 되는가? 별이 붕괴해 블랙홀이 되면 별의 잔해는 자체 중력으로 쪼그라들면서 블랙홀 속으로 끝없이 떨어진다. 그렇게 잔해가 떨어지는 동안 블랙홀은 거대한 깔때기 모양으로 길쭉해진다. 그 맨 밑바닥에 별의 잔해가 뭉쳐져 있다. 여기까지는 모두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별의 물질이 ‘플랑크 규모’까지 압착되면 더는 작아질 수 없게 된다. 이 최종 물질을 ‘플랑크 별’이라고 부른다. 여기가 블랙홀의 특이점이다. 이 지점에 이르면 아인슈타인 방정식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 극한 지점, 다시 말해 극미의 양자 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양자 중력 이론이다. 이 양자적 세계에서 발견되는 것이 ‘터널 효과’다. 벽을 향해 던진 구슬이 벽을 통과하는 것이 말하자면 터널 효과다. 거시 세계에서 구슬은 벽을 통과할 수 없지만, 양자 현상이 지배하는 미시 세계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양자는 터널을 통과한다. 이 양자 터널을 통해 플랑크 규모로 압착된 물질 곧 ‘플랑크 별’이 ‘양자 도약’을 한다. 그리하여 바닥에 떨어진 농구공이 위로 튕겨 올라오듯 플랑크 별의 반등(바운스)이 일어나고 시공간이 다시 팽창한다. 그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 화이트홀이다. 모든 것이 거꾸로 진행되지만, 화이트홀은 처음의 불랙홀로 돌아가지 않고 아주 작은 규모에 머무른다. 그 화이트홀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끌어당긴다. 또 블랙홀이 복사열을 내보내듯이 화이트홀도 매우 약한 방사선을 방출한다. 그러나 화이트홀은 “전하가 없기에 빛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로벨리는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변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중에 시간의 상대성도 이야기한다. 중력은 시공간을 휘어지게 하는데, 시공간이 휘어지는 만큼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중력이 극단적으로 큰 블랙홀 내부에서는 시간이 극도로 천천히 흐르는 데 반해, 지구에서는 시간이 훨씬 더 빨리 흐른다. 블랙홀의 시간과 지구의 시간은 전혀 다르다. 이 차이가 기이한 시간 현상을 만들어낸다. 지구에서 보면 블랙홀이 화이트홀이 되기까지는 수십억 년이 걸리지만, 블랙홀 내부에서 보면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블랙홀 내부를 우주선으로 여행하고 있다면 여행자는 블랙홀 외부와 내부 사이의 시간 흐름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 여행자에게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른다. 시간이란 우주의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이것이 중력의 시간 효과다.
이 책에서 로벨리는 화이트홀이 암흑물질의 일부일 수도 있다는 가설도 내비친다. 우리 우주의 26.8%는 우리가 볼 수 없는 암흑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화이트홀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주의 수많은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재탄생했다면, 그 화이트홀이 암흑물질에 속해 있으리라고 보는 것은 자연스럽다. 더 흥미로운 것은 화이트홀과 빅뱅의 관계다. 블랙홀 속 ‘플랑크 별’이 화이트홀로 다시 튀어 오르는 현상은 우주 탄생 시점의 빅뱅 현상과 매우 닮았다. “빅뱅은 우주가 양자가 허용하는 최대 밀도에 도달할 때까지 수축한 후 다시 튕겨 나와 팽창하기 시작하는 거대한 우주적 반등(빅 바운스)일 수도 있다.” 로벨리의 이 생각이 맞는다면, 우주는 빅뱅으로 태어난 뒤 다시 수축했다가 팽창하는 과정을 영원히 반복할 것이다.
그 우주가 낳은 것이 우리 인간이며, 우리는 정신의 힘으로 그 우주의 비밀을 밝혀가고 있다. 화이트홀이 그 비밀 가운데 하나다. 로벨리는 시인이 달에게 말을 걸 때처럼 우리를 낳은 그 우주를 ‘그것’이 아니라 ‘당신’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 인간은 그 ‘당신’이 알고 싶어 ‘당신’을 향해 끝없이 나아간다. “당신과 나,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누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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