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수정 인권위원 “안창호, 내가 구속된 사건의 수사검사였다”
차별금지법 관련 극단 주장은 호주제 폐지 때와 비슷”
“우리 기소한 검사 맞네. 안창호 검사.”
김수정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비상임위원(55·법무법인 지향 변호사)은 얼마 전 옛 친구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친구는 1991년 5월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민자당사(현 국민의힘 당사) 점거농성에 함께 가담했다가 구속됐던 ‘공범’, 즉 운동권 동료였다. 9월3일 인사청문회를 앞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자의 뉴스 속 얼굴 사진이 눈에 익어 재판받을 당시의 공소장을 뒤져봤더니 수사검사 중 하나였다면서, 이를 김 위원에게 전한 거였다.
실제로 안 후보자는 당시 서울남부지청 검사로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당시 신문 보도를 보면, 안창호 검사는 그해 7월10일 이 사건 첫 공판에 나와 “피고인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모의한 데다 민자당사 점거과정에서 쇠파이프를 휘둘러 전경들을 부상케 하는 등 폭력을 행사해 명백히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안 후보자가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면 과거 시국사건의 검사와 피의자가 함께 인권위원으로 적을 두는 진기한 상황이 연출된다. 김 위원은 지난 8월26일로 3년의 임기가 끝났으나, 조희대 대법원장이 후임 위원으로 지명한 소라미 변호사의 대통령 임명 절차가 아직 완료되지 않아 당분간 소위 등에는 참석할 예정이다. 김 위원은 “제 사건의 수사검사를 인권위원장 후보자로 맞게 되다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당시 연세대 법학과 3학년생 김수정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구국결사대 46명의 일원으로 시위 도중 백골단의 무차별 집단폭행으로 사망한 ‘강경대 사건’의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서울 여의도 민자당사 점거농성에 참여했다가 체포된 뒤 특수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침입 등의 죄목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의 형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영등포구치소에서 50일간 복역했다.1990년 1월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 이후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이 거세지면서 분신 정국으로 이어지던 참이었다. 안창호 검사는 피고인 김수정을 직접 신문하지는 않았다. 당시 점거농성 사건 구속자는 33명이나 돼, 노태우 정부 시절 단일 시국 사건으로는 최대였다.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무법인 지향 사무실에서 만난 김 위원은 안 후보자와 관련해 “개인적 가치관과 공적인 책임을 구분할 것”이라고 신중하게 표현을 고르면서도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부모-자식 간 성적 행위, 소아성애, 짐승과의 성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등 안 후보자가 밝혀온 소신이 호주제 철폐 소송을 수행할 때 ‘갓 쓴 노인’들로부터 들은 얘기와 너무 닮아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호주제 철폐된 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성평등해진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수정 위원에게 퇴임을 앞둔 소감도 들어봤다. 그는 인권위 파행을 주도했던 김용원 상임위원과 첨예하게 대립했던 위원 중 한 명이다. 김용원 상임위원의 ‘소위원회 자동기각’ 결정의 출발점이 됐던 지난해 8월1일 침해구제제1위원회(침해1소위) 현장에서 정의기억연대 수요집회 보호 진정 건을 놓고 인용 의견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김용원 위원은 “위원 3인이 모두 인용에 찬성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각된다”며 의사봉을 두드린 뒤 퇴장했고, 이는 결국 인권위 파행의 방아쇠가 됐다. 김수정 위원은 “그날 이후로 1년 동안 인권위 생활이 아주 힘들었다. 아쉽고 또 아쉽다”고 말했다.
2001년부터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김수정 위원은 법무법인 해마루·지향 등에서 일하며 굵직한 인권 사건들을 수행했다. 호주제 폐지소송(2005년), 대체복무제 소송(2018년), 낙태죄 위헌 소송(2019년)에 참여했고 2020년 ‘혀 절단으로 방어한 성폭력 사건'(최말자 사건) 소송은 현재 대법원에서 재심 개시 여부를 다투고 있다. 2021년에는 엔(n)번방 사건, 직장 내 성희롱, 가정 폭력 등 여성인권을 위해 변론한 기록을 모은 ‘아주 오래된 유죄’(한겨레출판)를 펴내 전국서점조합연합회의 ‘인문사회과학,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대학생 시절 열혈 운동권이었군요. 민자당사를 점거하고 구속됐어요.
“점거농성이라고 하면 무시무시해 보이지만 어설프기 짝이 없었어요. 현장 답사가 잘못돼 처음에는 그 옆의 조흥은행(현 신한은행) 건물로 들어갔다가 민자당사와 연결된 셔터가 내려가는 바람에 가까스로 당사로 굴러 들어갔어요. 어느 층인지도 몰라서 여러 층으로 흩어졌어요. 들어가기 전 너무 무서워서 잠시 도망갈까 고민도 했었어요. 점거하러 오면서 횡단보도 빨간 신호등 지키느라 못 들어온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요.(웃음) 우연히 저랑 같은 층에 있었던 남학생 한 명은 수십명의 전경들이 방패랑 진압봉 들고 밀고 들어오는 상황에서 무서웠을 텐데요. 그곳에 있던 바둑돌을 움켜쥐고도 한꺼번에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위력적이지 않게 한알씩 던지더라고요. 나중에 물어보니 전경이 맞고 다칠까 봐 그랬다고 해요. 젊은이들이 죽고 다치고 서로 진압하고 진압당하는 참 아픈 시대였습니다.”
― 50일간 구치소에 계셨는데,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구속 당시 경찰은 일종의 준법서약서인 반성문을 쓰도록 종용했어요. 지휘부 선배들은 빨리 반성문 쓰고 나와 투쟁에 합류하라고 했고, 그래서 쓰기 시작했는데, 구속 기간 내내 매일 반성문을 쓰는 바람에 매일 준법을 약속해야 했어요. 그 결과 집행유예로 석방된 거죠. 그런데 그게 양심을 저버리는 일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날수록 석방을 위해 양심을 속인 일이 비수처럼 저를 찌르고 괴롭혔어요. 그 일로 꽤 오랫동안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별거 아니라고 했던 선배들과도 화해하지 못한 채 틈만 나면 트집을 잡고 싸웠어요. 그때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며 함께 해준 이들이 바로 그 친구들이었고요. 사면복권이 되고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아직도 그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의 일을 아프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보상 신청은 안 했어요. 그거 받을 만큼 떳떳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어쨌건 그 일 영향으로 숙명처럼 양심을 지키고자 감옥행을 택하였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18년 가까이 변론하게 되었고 마침내 헌법재판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변론이었습니다.”
― 당시 안창호 검사는 몰랐던 거죠?
“검사가 한 명이 아니었으니까요. 당시 저를 심문한 검사는 제가 나온 학교 법대 선배였어요. ‘우리 학교에 너 같은 학생 없었다’며 엄청 구박했던 게 기억나요.(웃음) 근데 지금 미국에 있던 ‘공범’이 안창호 검사를 기억하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놀랐습니다.”
―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과 비교할 때 안창호 후보자는 어떤 사람 같나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되셨으니까 그 직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심성을 갖추지 않았을까 추측은 해봅니다.”
― 여러 우려가 있는 것 아시잖아요.(웃음)
“그분이 하셨던 차별금지법이나 성 소수자 관련 의견을 봤을 때 보수적 입장인 건 압니다. 하지만 공직을 맡는다는 건 본인의 생각과 가치관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생각은 달라도 직에 부여된 책임이 더 우선일 테니까요. 인권위가 어떤 역사를 거쳐왔고 어떤 조직인지 깊이 이해하신다면 그에 맞는 역할을 하실 거라 봅니다. 헌법재판관 등 여러 공직 맡으셨으니 더 잘 아시겠죠.”
― 안 후보자의 차별금지법 관련 극단적 주장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김 위원님은 호주제 폐지 소송에도 참여하셨잖아요.
“2001년 초짜 변호사 때부터 이석태·강금실 변호사님 따라다니면서 했어요.(웃음) 사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부모-자식 간 성적 행위, 소아성애, 짐승과의 성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주장은 호주제 폐지 반대하셨던 분들이 했던 이야기와 너무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당시 토론회에 갓 쓰고 오신 분 중에서 그런 발언을 하신 분들이 계셨거든요.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거 같아요. 호주제가 폐지된 지 곧 20년이 되는데 그런 일이 생겼나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호주제 폐지 후 더 성평등한 세상이 도래하였지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더욱 평등한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 생각하고, 후보자님께서도 인권위원장직을 수락하신 만큼 충분히 이해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 지난해 8월1일 정의연 수요집회 보호 진정 심의하는 침해1소위 현장에 계셨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날 이후로 1년 동안 인권위 생활이 아주 힘들었어요. 그날 그런 일이 없었다면 인권위가 이 정도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거 같아 참 아쉽죠. 그날은 정의연 수요집회 보호 진정 건이 세 번째로 상정된 날이었어요. 계속 합의가 안 되니까 조사관들이 현장에 가서 영상 찍어왔고, 영상도 보자고 한 상태였어요. 이날도 합의가 안 되면 전원위에 상정해서 의결할 거라 예상했는데, 갑자기 소위원장인 김용원 상임위원이 ‘영상도 보지 않겠다’며 ‘위원 3인이 모두 인용에 찬성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기각된다’면서 의사봉 두드리고 나가버린 거죠. 직원들도 난리가 났고요.
제가 상임위원실 쫓아올라 가서 ‘소위에 재상정해서 의결하던가 전원위 보내야 한다’고 했는데 ‘인권위 행정심판위원회나 행정법원에 소송 내서 하면 된다’고 잘라 말했어요. 근데 올해 7월 행정법원에서 지고 나니까 지금은 말을 바꿔 ‘행정법원 판결을 왜 따라야 하느냐’고 하는 거죠. 그날 김용원 위원이 소위 의결방식에 대해 독단적으로 판단하고 기각한 것은 20년 인권위 역사를 흔드는 거예요. 지금도 그날을 곱씹어봐요. 왜 그걸 막지 못했나 자책을 많이 합니다. 그게 트리거가 돼서 1년간 계속 파행이 된 거죠. 저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어요.”
(지난해 8월1일 기각 이후 김용원 상임위원은 사무처 간부가 “기각 결정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해명자료 낸 것을 문제 삼아 4개월간 침해1소위를 열지 않았다. 그리고 12월7일, 넉 달 만에 열린 침해1소위에서 또 문제가 생긴다. 이번에는 진정인이 낸 안건을 두고 김수정 위원이 의견을 내면 김용원 위원이 반대 의견을 내는 일이 반복되면서 ‘무더기 자동기각’이 진행됐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 올해 침해1소위는 총 7번을 했던데요. 갈등이 지속됐나요?
“김용원 상임위원이 자동기각을 언제든 할 수 있기에 그걸 막기 위해 항상 긴장감을 갖고 임할 수밖에 없어 힘들었어요. 지난해 8월1일과 12월7일 이후에도 자동기각이 있었어요. 그중 기억나는 것은 경찰의 정보수집과 관련된 사안이었는데 인용과 기각으로 의견이 갈리자 김용원 소위원장께서 ‘자동기각’으로 처리하셨습니다. 과거 인권위에서 경찰의 광범위한 정보수집의 문제를 지적한 제도 개선 권고도 한 적이 있었는데 위 사건에 대한 기각은 그런 인권위 입장에도 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정인이 이에 불복하여 행정법원에 소송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네요. 불복 안 하시고 포기하셨을 수도 있겠죠. 저는 자동기각될 때마다 의결서에 서명하지 않아요. ‘의결되지 않아 서명할 수 없다’고 꼭 써넣어요. 나중에 진정인이 그걸 보고 불복할 수 있도록.”
― 침해1소위 외에도 아동소위에 참여하고 계세요. 아동소위는 현재 중고교 휴대폰 수거가 인권침해냐 아니냐 놓고 결정하지 못한 채 안건을 전원위에 올렸어요.
“(이충상 상임위원이 소위원장으로 있는) 아동소위에서는 자동기각은 한 적이 없어요. 시각 차이로 인한 갈등이야 있지만, 의결정족수 문제로 인한 다툼은 없이 잘 해왔습니다. 예전에는 중고교에서 휴대폰을 아예 수거하는 걸 ‘과잉제한’으로 판단하고 인용 결정해왔는데, 이충상 위원님은 그 결정을 바꾸고 싶으신 거죠. 그래서 전원위에 올려서 논의하겠다는 것이고요. 기존에 인용해오던 사례를 뒤집고자 한다면 전원위에서 충분히 심의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업 중 사용 금지 등의 제한은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예 학교 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수거하는 것은 학생 인권침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존 인용 입장이 옳다는 것입니다. 다만, 인용에 대한 의견일치가 없다는 이유로 ‘자동기각’하는 것이 아니라 전원위에 상정하여 충분한 논의절차를 거쳐 과거의 결정을 바꾸려고 하는 과정은 아쉽지만 타당합니다.”
― 6월24일 전원위에서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을 비롯한 6명의 위원은 송두환 위원장이 ‘소위원회에서 의견불일치 때의 처리’ 안건을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고 퇴장한 뒤 이후 전원위를 보이콧했어요.(강정혜 위원만 8월26일 전원위에 참석) 그분들로서도 다수가 주장했는데 표결을 왜 안 하느냐고 항의는 할 만하지 않나요.
“맞아요. 항의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안건을 진행하지 않을 권한이 위원장에게도 있어요. 7월26일 이 사안(정의연의 소송 제기)과 관련한 서울행정법원 1심 판결을 앞두고 있었고 판결 선고 후에 다시 논의하자는 위원장님의 의견은 충분히 명분이 있었습니다. 위원장은 국회 청문회 통해서 임명됐어요. 민주적 정당성을 갖고 인권위를 총괄 운영하는 대표기구라는 말이죠. 6명의 위원이 항의를 할 수는 있지만 보이콧 명분은 없었어요. 전원위 보이콧까지 하려면 시민들이 납득할 충분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진정사건 기각 확률을 세배나 높이는 방향으로 20년 동안의 인권위 진정사건 의결 정족수 해석을 바꾸자는 것인데 이것이 회의를 보이콧할 만큼 시급한 안건이었을까요. 더구나 법원 판결을 바로 앞두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시민들께 사과하고 하루빨리 업무에 복귀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인권위원 재임 기간에 가장 아쉬웠던 게 뭔가요.
“앞서 말씀드린 정의연 수요집회 건이죠. 그나마 행정법원 판결을 통해 그 판단이 잘못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임기를 마치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위에서 인용이든 기각이든 만장일치가 돼야 의결한다는 건 20여년 인권위 역사 속에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 법적 안정성을 획득한 의결정족수이고, 어떤 해석에 따르더라도 위법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결정족수 적용을 뒤집을 만한 특별한 사정도 없습니다. 현재 인권위원 중 다수가 새로운 해석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분들 의견만으로 20여년간의 적용을 통해 획득한 국민의 신뢰이익을 침해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해석은 저는 거의 입법이라고 봅니다. 만일 새로운 해석으로 진정사건 의결 정족수를 적용하려면 저는 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위원회는 입법기구가 아닙니다. 진정사건 의결정족수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싶다면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쉬운 건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관련해서 상임위에서 2 대 2 부결이 돼서 의견표명을 못 했잖아요. 그렇다면 전원위에서 다시 심의할 수 있거든요. 저는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이 문제가 있다고 봐서 당시 비상임위원이었던 윤석희·서미화·석원정 위원과 상의해서 안건 발의를 하기로 하고, 밤새워 안건을 만들어 올렸어요. 근데 안건으로 상정할지 말지를 의결해야 한다고 해서 결국 상정 자체가 좌절됐어요. 그런데 이후 다른 안건에는 위원들이 안건을 발의하면 무조건 안건으로 상정하여 심의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화물연대 건 안건 발의 때와는 다른 주장을 하시더라고요. 화물자동차 차주들의 단체행동권 보장과 관련한 매우 중요한 안건이었는데 전원위에 안건 상정조차 하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 보람은 없었나요?
“소위나 전원위에서 의결이 잘 되면 기뻤죠. 치열하게 토론해서 제가 원하는 내용대로 안 되더라도 어느 정도 조율해서 합의를 통해 결론이 나오면 기뻤어요.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었다는 게 아쉽습니다. 최근에는 무조건 표 대결하는 양상이었는데 다수결 통과가 만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수결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차선입니다. 다수결 통과만 내세우면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게 되고,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노력을 경시하게 됩니다. 소수의 의견을 경청하고 합의를 이루기 위한 진지한 토론의 과정이 인권위가 표명한 의견의 권위를 높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현직 위원장도, 차기 위원장 후보자도 다 법률가들이잖아요. 인권위 상임·비상임위원들도 대부분 법률가로 구성되어 있고요. 법률가들의 역할은 실무적 지원에 집중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위원은 다릅니다. 정제된 법 해석에만 집중하면 안 되지요. 법 조문 해석 가지고 서로 맞다고 논쟁하는 것이 주가 되는 인권위원회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시를 쓰듯이 인권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는 분들이 인권위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법조인이지만 인권위원이 법조인 위주로 구성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인권위원 선출 절차에 대한 제도 개선은 필수입니다.”
― 인권위에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김용원·이충상 위원과 직원들에게요.
“저한테 했던 나쁜 말 다 잊을 테니까(웃음) 앞으로 상임위원으로서 남은 임기 동안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개인적 감정은 없습니다. 저에게 위원장님과 사무총장님 호위무사라며 비난도 하셨는데 오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원장님과 인권에 대한 생각이 비슷한 부분이 있다 보니 생기는 오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누군가의 호위무사였다면, 저는 인권의, 혹은 인권위원회의 호위무사였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잘 수행하였는지는 별론으로 하고요.(웃음) 두 분 위원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인권과 인권위원회의 호위무사가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인권위 직원들한테도 당부하고 싶어요. 어떤 위원들이 오시든 본인 소신을 가지고 조사하고 의견을 내어 주십시오. 채택이 되지 않더라도 기록이 남아서 훗날 씨앗이 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용기 있게 임해달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직원분들 힘들어하실 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많이 부족했음에도 제가 책임을 다하도록 최선을 다해 조력해주신 거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밖에서도 항상 애정을 가지고 인권위원회를 지지하겠습니다.”
― 본인은 어떤 변호사가 되고 싶으세요?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의뢰인에게 신뢰받는 변호사, 끝까지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싶습니다. 변호사는 사건을 맡으면 의뢰인을 위해 영혼도 팔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요(웃음), 사건은 제가 선택할 수 있으니 최고의 변론을 위해 영혼까지는 팔지 않도록 혜안을 갖고 사건을 잘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공익전담 변호사는 아니지만 늘 숨 쉬듯 인권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는 법률가가 되고 싶습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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