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에게도 관직 판 고종…‘뇌물의 시대’ 되풀이될까

한겨레 2024. 8. 30. 05:0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을 읽어본다.

황현은 이근호 등 5명의 인사를 각도 관찰사로 삼았다고 쓴 뒤 당시의 매관매직 풍조에 대해 말한다.

갑오경장 이전보다 매관매직이 더욱 심해져, 종친이나 외척도 소용없고 왕(고종)과 개인적으로 아주 각별한 사이라 해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관직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얼마 뒤 전의 다시 그 말을 꺼내자 고종은 "내가 잠시 잊었구나!" 하고 서상욱을 광양 군수에 임명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생각]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을 읽어본다. 황현은 이근호 등 5명의 인사를 각도 관찰사로 삼았다고 쓴 뒤 당시의 매관매직 풍조에 대해 말한다. 갑오경장 이전보다 매관매직이 더욱 심해져, 종친이나 외척도 소용없고 왕(고종)과 개인적으로 아주 각별한 사이라 해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관직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관찰사 자리는 10만 냥에서 20만 냥 사이, 좋은 지방 수령 자리는 5만 냥 이상이었다고 한다.

빚을 내어 거액의 뇌물을 바치고 관찰사나 지방 수령이 되면 백성을 쥐어짜고 공금을 횡령했다.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관찰사와 수령이 그러니 아랫것들도 배워 똑같이 한다. 국고는 쪼그라들고 재정은 텅텅 빈다. 국고가 바닥이 나건, 재정이 비건 고종은 자기 개인이 쓸 돈이 아니니까 아무 관심이 없다. 오직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제 주머니에 담을 돈이다. 이러니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파는 데 골몰할 수밖에!

민영환은 민태호의 양자다. 같은 집안의 민비가 왕후가 되자 민태호와 민영환은 그 후광으로 출셋길을 달렸다. 그런데 민영환의 외숙 서상욱(徐相郁)은 벼슬 운이 없었다. 민영환이 고종에게 군수 자리 하나만 달라고 말하자, 고종은 “너의 외숙이 아직 고을살이 하나 못했단 말이냐?”라고 하였다. 얼마 뒤 전의 다시 그 말을 꺼내자 고종은 “내가 잠시 잊었구나!” 하고 서상욱을 광양 군수에 임명했다.

민영환이 돌아가 제 어미에게 서상욱이 광양 군수로 발령이 났다고 하면서 성은(聖恩)이 망극하다고 하자, 그 어미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도 멍청한 너를 어찌 척리(戚里, 임금의 외척)라고 하겠느냐? 임금이 언제 한 자리라도 그 사람이 좋아서 그냥 준 적이 있더냐? 내 벌써 5만 냥을 바쳤다.” 돈에 환장한 고종에게는 친척이고 뭣이고 없었다. 오직 돈이었고 그 돈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관직을 팔았을 뿐이었다.

고종만 그랬던가? 마누라 민비 역시 헤픈 씀씀이로 돈이 모자라자 지방 수령직의 판매에 나섰다. 자신의 참모(아니 부하!) 민규호에게 수령직의 정가를 정해 보고하라고 하였다. 민규호는 그래도 백성을 생각해 수령직의 정가를 수령 연봉의 배로 올렸다. 사려고 덤비는 사람이 없게 만들려 한 것이었다. 하지만 웬걸,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렸다. 비싼 돈으로 수령직을 산 자들은 백성을 비틀어 짰다. 백성들이 생활고에 허덕였지만, 민비의 주머니가 두둑해졌던 것은 물론이다.

왕과 왕비가 노골적으로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았으니, 아랫것들의 부패는 말할 것도 없었다. 1876년 개항 이래 갑신정변과 동학농민전쟁, 갑오개혁, 대한제국의 선포 등으로 세상은 급변했지만, 단 하나 지배계급의 뇌물과 부패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야말로 뇌물과 부패의 시대였다.

지난 8월21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이렇게 홍보했다. “직무와 관련 없는 공직자에게는 100만원까지 선물도 가능합니다.” “공직자인 친족(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에게는 금액 제한 없이 선물 가능.” 내 눈에는 고종과 민비의 시대, 뇌물과 부패의 시대를 다시 열려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