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곳곳 파고드는 혐오시설…마을주민 희생양 삼나
도시라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각종 혐오시설이 농촌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가장 깨끗해야 할 수돗물 정수장 인근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건립하려는 시도가 있는가 하면, 주거지·초등학교가 가까운 곳에 재활용센터 설치를 추진하는 사례도 있다. 이러한 시도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각종 폐기물을 농촌으로 가져오지 말고 발생한 지역에서 처리하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 정수장 인근에 의료폐기물 소각장 건립 시도=“바로 옆이 우리가 먹고 마시는 수돗물을 정수하는 곳이에요. 이런 곳에서 의료폐기물을 소각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요?”
최근 충북 제천시 송학면 일원에 한 민간업체가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립을 추진하면서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고 있다. 특히 사업 예정지가 강원 영월군 한반도면 주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정수시설 바로 옆에 있어 제천은 물론 영월지역 주민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반도면 쌍용·후탄·신천리 주민협의회와 송학면 자치회는 현재 송학면 장곡리에 조성을 추진 중인 의료폐기물 소각장 설치를 반대하는 내용의 건의서를 최근 강원 원주지방환경청에 제출했다. 이는 7월25일 민간업체 A사가 장곡리 일원 5713㎡(1728평) 부지에 하루 48t(1시간당 2t)의 의료폐기물을 소각하는 시설을 짓겠다며 원주지방환경청에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데 따른 것이다.
주민들은 해당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오면 주민 건강에 심각한 피해가 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영월군에 따르면 해당 사업 부지는 한반도면 주민 2000여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시설인 쌍용정수장과 불과 50m 거리로 인접해 있고, 쌍용취수장과 제천 장곡취수장과도 1.3㎞ 거리로 멀지 않다.
정희문 후탄리 주민협의회장은 “해당 지역 인근엔 시멘트 회사만 3곳이 있어 이미 산업폐기물을 소각하고 있다”며 “여기에 의료폐기물 소각장까지 들어오면 누적된 환경오염으로 더 큰 주민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발생지역에서 처리돼야 할 의료·산업 폐기물이 농촌으로 들어오면 주민 생존권이 심각하게 침해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제천·영월 지역 주민 700여명은 18일 송학면 송학사회인야구장에서 ‘의료폐기물 소각장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지역주민이 강력하게 반발함에 따라 제천시·영월군의회 역시 각각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주민들과 연대해 나가기로 했다.
현재 원주지방환경청은 제출된 사업계획서 내용을 바탕으로 기술적 검토를 진행 중이다. 만약 해당 절차에서 적합 판정이 나오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제천시가 주민 의견과 개별 인허가 기준 등을 고려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 주거지·초등학교 근처에 재활용센터를?=“현도면 재활용선별센터 건립 결사 반대한다” “주민 동의 없는 졸속 행정 즉시 중단하라!”
26일 충북 청주시청 임시청사에서는 30℃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에도 현도면 주민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현도면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안영예) 소속 주민 120여명은 재활용선별센터 건립을 백지화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는 7월29일부터 매일 아침 이곳에서 소규모 집회를 이어오다가 이날 대대적인 시위에 나선 것.
안영예 위원장은 “현도면 재활용선별센터 건립은 예정 부지에 대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추진하는 일방적인 졸속 행정”이라며 “청주·청원 상생발전방안 합의에 명시한 ‘혐오시설 설치 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준수한다’는 약속도 무시했다”고 성토했다.
문제는 청주시가 재활용선별센터를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시는 흥덕구 휴암동에 있는 기존 시설의 내구연한이 올해 12월로 다가오면서 대체 부지를 물색하던 중 현도산업단지를 낙점했다. 2026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기본 및 실시설계용역’에 착수했고 업체 선정도 마쳤다. 하루 처리량은 최대 110t 규모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은 해당 부지에서 직선거리로 100여m 내에 주민들이 사는 주택이 있고 초등학교도 불과 4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생존권·주거권·환경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데도 시가 제대로 된 주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주민 오신영씨(43·죽전리)는 “시가 3번 공청회를 거쳤다고 하지만, 1차와 2차는 전체 주민에 대한 공지도 없이 극히 일부 주민을 대상으로 열려 관련 내용을 알 수도 없었다”며 “세번째 공청회에서는 주민들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시는 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고 비판했다.
주민들은 시가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기자 회견과 모든 면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안 위원장은 “재활용선별센터라는 혐오시설 추진 때문에 평화롭게 살던 현도면 주민들은 불안한 마음을 안고 생활하고 있다”며 “시가 계획을 전면 백지화할 때까지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영월·제천=이현진, 청주=황송민 기자 abc @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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