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에 '패싱' 당한 한동훈…李가 던진 '제3자안' 받을 수 있나
李·韓 양자회담 필요성 커졌지만 의제 조율 놓고 시각차 '여전'
측근은 '의정갈등' 의제 아니랬는데…韓 "대화 자유롭게"
'동상이몽'도 계속…'與 이간질' 하려는 李 vs '체급' 키우려는 韓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여야 대표 회담 날짜를 오는 1일로 합의했다. 회담 날짜는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대표와의 영수회담을 거절한 직후 정해졌다. 이 대표는 당초 영수회담에서 여야 대표 양자회담으로 변경하면서, 한 대표가 제안한 '대법원장 제3자 추천안'에 대해 '국회의장의 동의·재추천 요구권'을 조건으로 달아 한 대표에게 다시 공을 던졌다.
윤 대통령이 이날 국정 기조에 변화를 주지 않겠다는 뜻을 시사하면서 이 대표와 한 대표 모두 양자 회담을 미룰 수 없게 됐고 동시에 결렬에 대한 부담감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 날짜를 확정한 것. 다만 흔들리는 당내 리더십을 회복해야 하는 한 대표 쪽이 회담 필요성을 더욱 체감하는 만큼, 의제 조율 협상에 있어 고지(高地)에 선 이 대표가 난제를 던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尹대통령, 韓과 더욱 '괴리감'…국회 탓만
우선 의정 갈등에 대해서는 "정치적 유·불리만 따진다면 하지 않는 것이 훨씬 편한 길이지만 저는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며 "여러 문제도 있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료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이지, 이것 때문에 멈출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가 제안한 의대 정원 유예안 등 중재안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한 대표가 지난 전당대회에서 '제3자 추천안'을 언급한 탓에 오는 여야 당 대표 양자회담의 핵심 이슈가 된 채 상병 사건에 대해서는 "지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가 잘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에서나 국민들이 수사 결과에 특별한 이의를 달기 어렵다고 본다"며 특검 도입 필요성을 묵살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난맥의 주요 원인인 채 상병 사건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 영수회담의 필요성도 거부했다. 오히려 국회를 향해 "인사청문회 등을 바라보고 있으면, 제가 이때까지 바라본 국회와 다르다"고 질타까지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회견을 통해 특검법과 의정갈등에 대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에 좁혀지기 어려울 만큼의 인식 차이만 더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면서 한 대표의 당내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尹에 '외면'당한 韓…회담 더욱 '절실'해져
이날 윤 대통령의 완고한 모습은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가 공언했던 '당정 관계의 수평적 재정립'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제3자 추천안'을 발의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당내 장악력을 상실한 한 대표로서는 양자회담을 유일한 '돌파구'로 삼을 수밖에 없게 됐다. 자신의 정치적 체급을 키워 다시 한 번 여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양자회담 협상에도 절실하게 임한다는 후문이다. 당초 '회담 전 과정 생중계'를 제안했다가 이 대표 측의 '모두발언 공개, 회담 후 결과 발표' 방식을 받아들인 것은 이 같은 한 대표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다만 한 대표의 이러한 처지는 대표로서 협상력에도 제한을 줄 수밖에 없다. 한 대표는 이미 지난 26일 "공수처 수사 상황을 보고 특검을 정해도 늦지 않다는 생각도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법원장 추천을 골자로 자신이 발언했던 원안(原案)과는 결이 다른 발언이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선(先) 수사, 후(後) 특검'이라는 기존의 당내 가이드라인을 스스로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제3자안'을 접으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대표가 대통령실에 제안했던 의대 증원 유예안 역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의정 갈등은 '제3자 추천안'에 가려 양자회담 의제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았다. 하지만 최근 당정 갈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자, 민주당에서는 의제에 꼭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나서려다 되려 당정 갈등만 촉발했고, 이로 인해 대통령실과 관계 재정립에 오히려 어려워하는 모습이 노출되자 이 사안을 회담에서 다루자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의 비서실장인 이해식 의원은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한 여러 의정 갈등은 주요 의제로 확실하게 다뤄질 것"이라고 말하며 한 대표 측을 압박했다. 반면 한 대표 측 비서실장 박정하 의원은 이날 "의정 갈등은 여야 간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서, 혹은 예산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저희 당은 의제로 다루지 않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양측 간 엇갈린 입장을 나오면서 막판 의제 조율까지는 아직도 험로가 예상된다. 한 대표는 이날 오후 연찬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얼마든지 서로 대화할 수 있다"며 "몇 가지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이지, 대화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정 갈등을 의제에 올리지 않겠다고 한 박 의원의 설명과 배치되는 답변으로, 한 대표가 회담에 의지를 더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한 대표는 또 당정 갈등에 대해서는 "'누가 옳으냐'보다 '무엇이 옳으냐'에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국민 불안감을 해소해줄 만한 중재와 타협점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재확인했다. 이는 "의료개혁은 한 치도 흔들림없이 진행이 돼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정부의 추진 방침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그리고 당도 함께 할 생각"이라고 한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 기류를 의식해 나름의 수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의정 갈등을 놓고 당내에서도 미묘한 엇박자가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한 대표로서는 양자회담에 앞서 약점을 하나 더 드러낸 꼴이다. 이를 놓고 "해결사를 자처했다가 벌집을 잘못 건드렸다"는 당내 반응도 나온다.
한동훈 '키워주기'만 할라…李도 '고심'
이 대표 측이 제안한 세 가지 의제는 채 상병 특검 제3자 추천안과 민생회복 지원금, 지구당 부활이다. 정쟁 중단·정치 개혁·민생회복이라는 큰 주제를 던진 한 대표에 비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엿보이는 지점으로, 한 대표 뿐 아니라 이 대표도 성과물에 대한 부담이 있는 셈이다.
회담을 둘러싼 이 대표의 노림수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여권 내 이견을 확대시켜 당내 분열을 노린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다. 한 대표가 의대 정원 유예안을 언급해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자, 이 대표가 한 대표의 의견에 찬성한다는 발언에 나선 것은 이 같은 전략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다음으로는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무력화다. 양자회담에서 제3자 추천 특검안이나 민생회복 지원금 등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쟁점에 대해 여야가 협의해 법안을 발의하기로 한다면 윤 대통령의 거부권 무력화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한 대표가 양자회담에서 합의해 온 사안에 대해 여당 원내지도부가 난색을 표하거나 의원총회에서 뒤집히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당내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대표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한 대표가 이 대표 측의 '제3자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대표로서는 양자회담을 제안한 것 자체가 손해가 될 수 있다. 이 의원이 전날 취재진에게 "한 대표가 기존 입장을 번복해 회담 성과가 회의적 일 것이라는 당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생 경제 위기와 의료 대란 등 국민 고통이 극심하고 정기국회를 앞둔 시점에서 정치 회복이 긴요하다는 면에서 이재명 대표가 대승적으로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고 말한 것 역시 이 같은 민주당 지도부 분위기가 반영된 발언이다. 이 대표 측은 "한 대표의 급수만 올려주는 회담이 될 거라는 회의론이 많이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의 의제(제3자안과 민생회복지원금) 중 하나는 받아야 회담이 최종적으로 성사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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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wonti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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