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식당에 ‘가난뱅이 세트’… 中 식당가 폭망 중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8. 30.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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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벌찬의 차이나 온 에어]
경기 침체에 소비 격감, 도산 줄이어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은 중국의 식당 신룽지가 선보인 398위안(약 7만원)짜리 할인 세트.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가난뱅이 세트’라고 한다. 보통 이 식당의 1인 권장 소비액은 1000위안(약 19만원) 정도로, 이 세트값은 이전에 팔린 음식 값의 절반가량밖에 안 된다. /바이두

29일 점심 중국에서 유일하게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 별 셋을 받은 중식당인 신룽지(新榮記)의 베이징 금융가(街) 지점. 호화로운 중국 조각품과 그림으로 채워진 이곳 홀에 놓인 테이블 중 절반가량은 공석이었다. 과거 만실이던 화장실·소파가 딸린 개별 다이닝 룸도 빈 곳이 보였다. 식당 매니저 장씨는 “베이징 고급 레스토랑들이 줄줄이 폐점하면서 우리 가게도 문 닫는다는 헛소문이 퍼졌다”면서 “가게는 계속 운영하고, 언제든 예약 가능하다”고 했다. 신룽지의 1인 권장 소비액은 1000위안(약 19만원) 정도지만, 최근 손님 감소로 398위안(약 7만원)짜리 할인 세트를 출시했다. 이 세트는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가난뱅이 세트(窮鬼套餐)’로 불린다.

중국 경제가 소비 침체 속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 식당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저가 경쟁’에 신음하고 있다. 중국 부동산 시장 침체와 월급 삭감·해고 광풍 속에 중장년층은 섣불리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지 못하고, 사상 최악의 청년 취업난으로 젊은 층은 쓸 돈이 없는 까닭이다. 중국 경제는 수요가 아닌 공급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소비가 장기 침체로 돌아서면 생산도 연쇄 타격을 입으며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 소비의 바로미터인 요식 업계 매출은 최악이다. 베이징 통계국에 따르면, 베이징 요식 업계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8.8% 감소했다. 순이익률은 0.37%에 불과하다. 일반 식당이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최소 5~10% 이윤을 보장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도산 위기에 놓인 것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중국에서 폐업한 식당은 105만6000곳으로, 2022년의 4배 수준이다.

‘저가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식당·마트들이 경쟁적으로 3000원 미만의 값싼 메뉴를 내놓거나 가격 정책을 파괴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우메이마트의 식당은 13위안(약 2500원)짜리 뷔페를 운영하고,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신선 식품 배달 서비스 허마셴성은 반찬을 200g당 3위안(약 560원)에 팔기 시작했다. 맥도널드·버거킹 등은 특정 요일에 2000원대 반값 세트를 판매한다.

지난 4월 문 닫은 베이징의 고급 식당 오페라 밤바나./트립어드바이저

한때 한 달 전 예약도 힘들었던 미슐랭 식당 중에도 문 닫는 곳들이 나왔다.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미슐랭 ‘별’을 받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페라 밤바나는 저녁마다 테이블 3분의 2가 비어 있는 상황이 계속되자 지난 4월 1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곳은 ‘베이징 중산층이 부자의 환각(幻覺)을 느끼는 곳’이라고 불렸던 식당이다. 2014년 마카오 자본이 설립한 티아고그룹 산하의 미슐랭 식당인 모덩타이 등 6곳도 같은 달 일제히 폐점했다. 상하이 관광 명소 와이탄의 미슐랭 식당 ‘라틀리에 18′은 이달 문을 닫았다. 값비싼 식재료를 써야 하고, 인테리어·식기·테이블·의자를 최고로 구비해야 하는 파인다이닝(고급 외식) 식당들이 고객 감소 여파에 즉각 무너진 것이다. 시장조사 업체 레드밀빅데이터는 7월 상하이에서 1인 객단가 500위안(약 9만5000원) 이상 고급 음식점은 전체의 0.59%인 1400개로, 작년 5월(2700개)의 절반이라고 했다.

대만 유명 딤섬 체인 딘타이펑도 최근 중국에서 지분 문제 등으로 14개 지점의 문을 닫겠다고 밝혔다. 대만 행정원장(총리 격) 줘룽타이는 27일 “딘타이펑의 철수를 통해 중국 본토 경제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을 알 수 있다”면서 “중국 본토는 코로나 이후 발전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안에서는 경제를 살리고자 하면서 외부에는 무력을 자랑하는데 이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된다”고 했다.

중국 경제가 내수와 소비 등 주요 지표에서 비상이 걸리며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은 4.7%로 예상치(5.1%)보다 낮았고, 중국의 소비 척도를 나타내는 소매 판매의 전년 대비 성장률은 지난해 11월 10.1%에서 6월(2.0%)과 7월(2.7%) 2%대로 추락했다. 학교에 재학 중이지 않은 16~24세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 실업률은 6월 13.2%에서 7월 17.1%로 튀어올랐다. 취업난과 해고 광풍으로 중국에서 청년층의 ‘소비 다운그레이드’가 특히 심각한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부동산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져 있고, 지방정부 부채라는 ‘시한폭탄’까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중국 경기의 장기 부진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은 소비 진작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16일 리창 총리는 국무원 전체회의에서 “정부는 소비 자극에 중점을 둘 것”이라면서 “도시와 농촌의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한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에 따라 국가 주도로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는 부동산 시장 촉진 대책, 신제품 구매 시 지원금을 지급하는 정책, 기존에 성장을 제한했던 사교육·게임 산업 등에 대한 지원책 등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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