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억대 전세 사기범 2심서 감형… 피해자들은 시위
29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검 앞에선 30~40대 20여 명이 모여 “인천지법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수백억대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된 건축업자 남모(62)씨로부터 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다. 1심 재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던 남씨가 최근 2심에서 7년으로 감형되자, 항의 집회를 연 것이다. 검찰도 이날 오후 ‘법원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앞서 인천지법 형사항소 1-2부(정우영 부장판사)는 지난 27일 열린 남씨의 전세사기 사건 항소심에서 “1심 판결에 법리 오해가 있다”며 감형 선고를 내렸다.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중개업자 등 9명도 1심에선 징역 4~13년 실형을 받았지만, 2심에선 무죄를 받거나 집행유예로 감형됐다. 남씨는 총 665명으로부터 536억원의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번 재판은 검찰이 사건 초기에 파악해 지난해 3월 먼저 기소한 피해액 148억원(피해자 191명)에 대한 판단만 이뤄졌다. 나머지 388억원(피해자 474명)에 대한 기소는 지난해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추가로 이뤄져 각각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2월 있었던 이번 사건 1심은 공소장에 적시된 대로 2021년 3월부터 2022년 7월까지 전세 계약을 맺은 피해자들의 전세금을 모두 편취 금액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남씨 일당에게 범행 ‘고의(故意)’가 생긴 시점을 달리 봤다. 남씨에 대해선 재정 악화로 본인 소유 빌라 8채에 대해 경매가 진행된 2022년 1월 이후 맺은 전세 계약(191건 중 180건)에만 사기성을 인정했고, 나머지 일당은 남씨와 자금난 관련 대책 회의를 연 2022년 5월 27일 이후부터만 고의가 있다고 판단했다.이로 인해 남씨 일당 중 2명은 이날 이후 전세 계약 체결에 관여한 바 없어 무죄가 나온 것이다. 나머지 7명은 각각 적게는 5건, 많게는 10건가량 범행 가담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또 기존에 맺고 있던 전세 계약을 새로 갱신했더라도 전세금을 올리지 않았다면 사기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새롭게 오고 간 돈이 없기 때문에 재물을 교부받은 것도 아니고, 전세금 반환의무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도 아니다”라는 이유에서다. 2심에서 인정된 남씨 일당의 범행액은 68억원(피해자 180명)으로, 1심보다 80억원가량 줄었다. 피해자 규모가 11명밖에 줄지 않았지만 피해액이 80억원가량 줄어든 것은 보증금을 올려 재계약한 사람(103명)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피해자로는 그대로 인정되지만 피해액이 1심에서는 보증금 전체였으나, 2심에서는 증액된 부분에 한해서만 인정됐다. 검찰 측은 “보증금을 돌려줄 자력 없이 계약을 갱신한 경우에도 사기죄는 성립한다고 판단한다”며 상고 이유를 밝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