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銀 박혜정 “어디 부러져도 좋다는 각오로 이 꽉 깨물었다”

고양/장민석 기자 2024. 8. 30. 00:4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라운지] 파리올림픽 은메달 ‘역도 요정’ 박혜정
지난 27일 경기도 고양시 장미란체육관에서 만난 박혜정은 “역도라는 종목이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라 훈련 과정이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연구하고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성과를 내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 /박상훈 기자

박혜정(21·고양시청)은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피날레를 아름답게 장식했다.

여자 역도 81kg이상급에서 인상 131kg, 용상 168kg, 합계 299kg로 은메달을 걸었다. 박혜정의 귀중한 메달로 한국 선수단은 메달 32개(금13·은9·동10)를 채우며 역대 원정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 기록도 세웠다. 그는 인상 3차 시기에서 자신 최고 기록이었던 130kg을 1kg 경신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연습 때도 안 들어본 무게였는데 어디 한 군데 부러져도 좋다는 각오로 이 꽉 깨물고 일어났다”며 “그 1kg가 참 무겁더라”고 했다.

지난 27일 경기도 고양시 장미란체육관에서 만난 박혜정은 “역도라는 종목이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라 훈련 과정이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부족한 부분을 연구하고 자세를 조금씩 바꿔가면서 성과를 내는 재미가 있다”고 했다./박상훈 기자

파리를 수놓은 많은 메달리스트 중 그는 유독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전현무 아나운서의 현지 중계로 화제를 모았던 박혜정의 경기는 순간 최고 시청률이 지상파 3사 합산 30%가 훌쩍 넘었다. 그가 오상욱 등과 출연한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은 20~49세 기준 시청률에서 올해 최고를 기록했다.

파리에서 돌아온 뒤 방송 출연과 인터뷰 등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박혜정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역도의 재미에 빠진 분들이 많더라”며 “웃는 인상이라 그런지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며 특유의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지난 27일 그를 만난 곳은 경기 고양시 장미란체육관.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영웅 장미란(41)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이름을 딴 훈련장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장미란 차관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유튜브 영상에 꽂혀 그 길로 안산시 체육회를 찾아가 역도에 입문한 박혜정은 선부중 3학년 때 합계 255kg을 들어올려 장미란이 고 2때 세운 기록(235kg)을 가볍게 넘어섰다.

하지만 박혜정의 파리 합계 기록 299kg은 장미란이 베이징 때 세운 합계 326kg엔 아직 크게 못 미친다. 박혜정은 “‘제2의 장미란’이란 수식어는 부담스러우면서도 늘 나를 채찍질하는 원동력이 됐다”며 “차관님의 기록에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

박혜정의 손바닥은 바벨을 들 때 묻히는 탄산마그네슘으로 인해 꺼칠꺼칠하다. 박혜정은 "직업병이라 생각한다"며 웃었다. / 박상훈 기자

또 하나 높은 산이 있다면 파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리원원(24·중국).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 기록(합계 335kg) 보유자다.

최근 팔꿈치 부상에 시달린 리원원은 파리에선 합계 309kg으로 우승했다. 리원원과 기록 차이가 워낙 커 금메달 후보로는 꼽히지 않았던 박혜정은 “아직은 넘기가 어렵다는 걸 인정하지만, (리원원이)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걸 파리에서 느꼈다”고 했다.

박혜정의 소속팀 고양시청 이세원 코치는 “박혜정은 기록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고, 리원원은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상황이라 4년 뒤 LA 올림픽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며 “한 국가가 5체급 중 3체급만 나오기 때문에 박혜정이 리원원에 근접한다면 중국이 여자 최중량급 대신 경쟁력이 있는 다른 체급에 선수를 내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혜정에게 파리 은메달은 어떤 의미일까. “준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뎌냈기에 값진 보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전 스스로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박혜정은 파리 올림픽을 준비하며 하루에 많게는 3만kg의 바벨을 들었다. 하체 보강을 위해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는 스텝밀을 300층 오른 날도 있었다.

박혜정은 "한국에 돌아와 먹은 음식 중 제주도 여행에서 맛본 갈치조림이 기억난다"고 했다. / 박상훈 기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자신을 늘 지지해줬던 어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는 것. 아침저녁으로 차가버섯 물을 끓여 먹이면서 “우리 딸이 최고”라고 힘을 불어넣어줬던 어머니 남현희씨는 8년 암 투병 끝에 지난 4월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 돌아와 엄마가 잠들어 있는 추모공원에 갔어요. 새벽이라 깜깜해서 좀 무서웠는데 엄마 앞에 서니 신기하게도 맘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긴 말은 못하고 ‘엄마, 은메달 따왔어. 메달 예쁘지?’라고 하고 돌아왔죠. 지금도 ‘거기서 밥은 잘 챙겨먹고 있어?’라며 혼잣말로 하늘에 안부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더는 슬퍼하지 말고 씩씩하게 바벨을 드는 모습을 엄마가 바랄 것 같아 힘내고 있어요.”

박혜정의 2024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달 3일부터 충남 서천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대회에 참가하고, 10월엔 전국체전, 12월에는 바레인 세계선수권에 출격한다. 파리에서 넘지 못한 합계 300kg을 얼른 넘고, 당면 목표로 세운 310kg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각오다.

초등학교 댄스 동아리 출신인 박혜정은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발랄한 춤 실력을 보여주며 ‘역도 요정’이란 별명도 얻었다. 그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요정’보다는 좀 더 멋지게 불렸으면 좋겠다. 좋은 별명 좀 지어달라”며 웃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