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당신의 ‘공동체 감각’은 건강하십니까?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한국미래학회 회장 2024. 8. 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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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자유 내세워 고성방가 일삼 듯
권리 강조하며 타인 배려 안 하는 시대
공동체 감각인 ‘센수스 코무니스’ 실종
안세영이 일깨운 ‘공동체 감각’ 확산시켜
정치인들 구습 타파하게 만들어야 한다
일러스트=이철원

오래전부터 금지된 행동으로 ‘고성방가(高聲放歌)’라는 것이 있다. 큰 소리를 내어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고 피해를 주는 경범죄로 처벌의 대상이 된다. 내 목소리를 한껏 높여 노래를 하는 게 무슨 문제라는 말인가. 그런데 그게 주변에 피해를 주면 죄가 된다.

비단 소음뿐이 아니다. 거리에 쓰레기를 투기하거나, 공용 화단의 꽃을 꺾는 것도 유사한 범죄 행위다. 함께 모여 사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상식과 규범이 있다. 소소하지만 자기 목소리의 데시벨을 조절하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속한 사회는 살 만한가? 그런 곳으로 가꾸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한 시점부터 던지기 시작한 이 물음을 탐구하기 위해 고대 철학자들은 ‘공동체 감각’이라는 ‘센수스 코무니스(sensus communis)’에 주목했다. ‘감각’이라는 말 그대로 인간은 미각이나 후각처럼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생존을 위해 인간은 ‘사회적 감각’ ‘연대성 감각’, 때론 ‘상식’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이 감각을 발동시킨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나 로마의 키케로 같은 철학자는 공동체 감각이야말로 사회적 미덕이며 설득의 기본이라고 보았다. 훗날 정치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공적 이성이나 사회 정의도 그 바탕에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공동체 감각이 있다. 바람직한 지도자란 그런 감각을 갖추고 사회적 규범에 따라 대중을 설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아니라도 공동체 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공동체를 해치는 행위는 자제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는 살맛이 날 것 같다.

고성방가에 귀를 막고 도심을 지나갈 때, 혹은 무너지는 공적 영역의 문제를 건드리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우리의 ‘공동체의 상식’은 건재한지 되물을 때가 많다. 물론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고 각종 권익이 신장된 것은 괄목할 일이지만, 요컨대 중요한 건 조화와 절제다. 집회의 자유가 고성방가에 우선하고, 신장된 권익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회라면, 여전히 불편한 공동체일 것이다.

서로 다른 상식이 부딪치며 늘 반목하고 분열하는 우리 사회에서, 수준 미달의 정치인에 가려 공적 마인드를 눈 씻고 찾으려 해도 잘 안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최근 ‘공동체 감각’을 하나 발견하고 길어 올렸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과 인물로부터. 배드민턴 종목에서 28년 만에 값진 금메달을 딴 후 협회를 비판하는 작심 발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선 안세영 선수 이야기다.

메달을 따자 협회의 운영과 관행에 대한 여러 비판을 쏟아낸 안세영은 “배드민턴이 더 발전할 수 있을 텐데 이번에 금메달이 한 개밖에 나오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기 바란다”라고 했다. 메달이 더 안 나온 이유를 생각해 보라니. 자신은 메달을 땄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배드민턴 공동체가 발전하는 것이라는 문제의식이 담겨 있는 발언이다. 안세영은 또 “협회는 선수들의 모든 것을 막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임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선배 빨래, 방 청소 등 악습을 포함해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고 싶다”고 했으며,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하지만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안세영의 메시지는 “나를 구해줘”가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를 구해줘”였다. 그의 ‘공동체 감각’에 비추어 협회는 바람직한 공동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안세영의 발언에 대해 여러 해석이 가능하고, 젊은 세대의 당당함이나 개인성으로 읽힐 수도 있으나, 나의 관점에서 주목한 것은 기성세대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의 ‘공동체 감각’이었다. 금메달도 땄으니 덮고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를 한 발짝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문제 삼은 건 다름 아닌 공적인 의무감이다. 공동체에 대한 그런 감각과 의무감을 지닌 젊은이가 많은 한 우리나라 미래는 밝다.

개인의 기량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선수가 오히려 체육 공동체를 염려하는 동안, 정작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해야 하는 임무를 지닌 각종 협회들은 불투명하고 방만한 운영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그들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공동체 감각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잊고 있던 감각을 안세영이 일깨워 악습과 관행을 개선하는 계기가 마련된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어떤 협회보다 더욱 공동체 감각으로 무장해야 하는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인들이야말로 존재 이유가 공공의 안녕이니까. 그런데 언제부터 잘못된 것인지, 요즘 정치라는 직업은 공동체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공동체를 파괴하는 비호감 인물들이 가득한 직업의 으뜸이 되어 버렸다. 공적 책임은 애초부터 없고 탐욕과 부도덕으로 고성방가보다 더한 스트레스만 안겨준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제대로 봉사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공직자에 화가 난다면, 그건 당신의 공동체 감각이 꿈틀거린다는 증거다. 자신의 이해보다 공공의 이해를 앞세우고, 정당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염려하며,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의 복원을 위해 협동하는 정치인을 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들의 ‘공동체 감각’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안세영의 ‘공동체 감각’이 배드민턴을 넘어 널리 확산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잠자던 우리의 공동체 감각을 흔들어 깨우고, 마침내 그 감각이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분야의 구습까지 타파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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