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원의 말글 탐험] [229] 나들목을 놓치면…
또 길을 잘못 들었다. 기름 넣으러 나섰다가 출근길로 차를 몬 것이다. 나이 든 탓인지, 다만 습관 때문인지. 아무튼 이 정도면 양반이다. 자동차 전용 도로 나들목도 수두룩이 지나치지 않았던가. 하릴없이 그다음 출구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란…. 시간에 쫓기기라도 한 날이면 진땀 흘리며 애면글면했다. 공연히 한참 돌아가는 일, 글에서도 겪는다.
‘지원자는 초등생 때부터 이공계를 목표로 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단히 맺을 수 있는 문장이 어수선해졌다. 나들목을 안 놓쳤으면 어떤 모습일까. ‘지원자는 대부분 초등생 때부터 이공계를 목표로 준비한다.’ 다섯 자나 줄었다. 애꿎게 먼 길을 다닌 셈이다. ‘이 증상은 인체가 과민 반응을 일으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는 그럼? ‘이 증상은 대부분 인체의 과민 반응으로 생긴다.’ 쓸데없이 ‘경우’를 쓰지 않으면 이렇게 지름길마저 보인다.
‘갖다’를 버려도 시간 낭비, 기름 낭비 막을 수 있다. ‘고객들은 장기 투자나 고급 투자 정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문장은 ‘~ 정보에 관심이 크다’고 써 보자. 좀 깔끔한가. ‘공개할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도 ‘공개할 정보가 없다’ 하면 그만이다.
버릇처럼 쓰지만 거추장스럽기는 ‘대하다’ 역시 닮은꼴. ‘에어컨 바람을 오래 쐬면 더위에 대한 내성(耐性)이 약해져’는 그냥 ‘~더위(에) 내성이 약해져’라 쓰면 될 터. ‘~더위를 견디기 힘들어져’라 해도 괜찮겠다. ‘목격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안 그래도 돌아가는 길에 ‘때문’까지 끼어들었다. ‘목격자는 보복이 두려워 증언을 거부했다’처럼 안 막히고 가까운 길이 있건만.
광화문 교보문고 간답시고 지하도로 들어선 어느 날. 문득 정신 차려 보니 지하철역 입구였다. 이래서 되겠나 끌탕하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천안 가려다 대전까지 간 것도 아니고, 덕분에 몇 걸음이라도 더 걷잖아. 돌아가는 길이 즐거울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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