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신종 아르바이트와 제안서 평가위원

하인규 기자 2024. 8. 29.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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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사의 마이스·관광 칼럼⑧
신창열 (사)한국웰빙문화관광협회장

최근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공개 모집하는 제안서 평가위원의 후보자 등록신청이 100명을 넘어서 200명이 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입찰 담당자는 후보 신청자의 적격 여부 확인과 선별작업을 하여 평가위원의 예비명부를 정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소연한다.


입찰참가자는 평가위원 공모에 따라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여 후보자 등록을 청탁하는 데 전념한다. 후보자 등록을 많이 할수록 최종 평가위원에 선정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기획력과 창의력 있는 제안서 발표로 승부를 보려는 게 아니라 자기 편의 평가위원 숫자로 승부를 보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입찰 담당자는 등록 후보자가 부족하여 평가위원 선정에 애를 먹었으나 올해는 이례적으로 너무나 많은 후보자 등록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통상 입찰에 따른 제안서 평가위원은 공모를 통하여 최종 7~10명으로 선정한다. 이를 위해 후보자 등록을 평가위원의 3배수인 21~30명을 모집하는데, 신청 기간 내 등록한 후보자를 정리하여 3배수에 맞게 예비명부를 작성한다. 이어서 입찰참가자가 제안서를 제출할 때 예비명부에 대한 무작위 추첨을 한 후, 다빈도 순서로 평가위원을 최종 선정한다.



평가위원 응모 자격은 대개 3년 이상 근무경력의 7급 이상 공무원, 정부투자기관·출연기관·지방공기업의 기술직렬 5급 이상 직원이나 경력자, 대학 전임교수, 1년 이상 근무경력의 기술사 또는 박사학위 소지자, 모집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공정한 심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자를 대상으로 한다.


평가위원 공모는 입찰참가자를 대상으로 제안서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평가하기 위하여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모집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집 분야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는 '관련 협회·단체·기업의 직원과 프리랜서'도 해당이 되기 때문에 입찰참가자와 이해관계자가 될 수 있다. 실제 제안서 평가위원으로 해당 업종의 기업 직원이나 프리랜서를 선정하는 사례도 있어 공정성의 시비가 붙기도 한다. 이는 입찰 담당자가 응모 자격에 따른 등록 후보자의 적격성 여부와 입찰참가자와 이해관계자 여부를 식별하는데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이처럼 응모 자격조건에 별 무리가 없으면 후보자로 등록할 수 있으므로 입찰참가자는 최대한 많은 우호적 후보자를 확보하는 데 몰두하게 된다. 게다가 인터넷 카페에서는 평가위원 모집 정보를 제공하며 합법적 투잡(two job), 부수입 창출이라는 신종 아르바이트로 후보자 등록을 부추기고 있다. 회원이 점차 많아지면서 올해부터 유료로 전환하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평가위원 공모의 엄청난 경쟁률은 입찰참가자가 우호적 후보자를 경쟁적으로 등록하고 부수입 창출이라는 신종 아르바이트로 호도되면서 후보자 등록을 부추기는 결과로 추정된다. 또한 대학의 입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시간강사, 겸임교수와 같은 비전임교수의 강의 과목이 축소되자 평가위원 공모에 관심과 응모가 늘어난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많은 전문가가 제안서 평가위원 후보자로 참여하는 것은 필요하고 장려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처럼 입찰참가자의 청탁으로 후보자로 등록하고, 형식적 자격조건을 충족한다고 아르바이트 차원으로 등록하는 것은 평가위원 공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흐리고 폐단을 유발한다.


먼저 입찰참가자의 청탁을 받고 제안서 평가위원회의 위원으로 참여한다면 제안서 발표 내용과 상관없이 청탁업체가 선정되도록 불공정한 평가를 할 것이다. 특히 항목별 할당 배점이 절대점수(간격점수)가 아닌 자율점수로 채점하는 경우는 점수 편차를 최대치로 벌릴 수 있다. 예를 들어 평가항목 배점이 15점인 경우, 절대점수(간격점수)는 '15점(매우 우수), 13(우수), 11점(양호), 9점(부족)'으로 배분될 수 있으며(최하점수를 배점의 60%로 정하는 경우), 청탁업체와 경쟁업체는 최대 6점 차이가 발생한다. 하지만 자율점수로 채점하면 '최고 15점, 최저 0점'이 가능하므로 최대 15점 차이가 발생한다. 입찰참가자가 청탁한 2~3명의 평가위원을 이용하여 1순위에 선정될 수 있으며, 실제 제안서 평가 현장에서 가끔 발생하고 있다. 이런 청탁을 받은 평가위원은 청탁업체로부터 보상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를 저해하고 있다.


한편 표면적인 자격조건은 갖추었으나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한 사람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이러한 전문성 문제는 입찰참가자의 제안서 발표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에 쉽게 드러난다. 질의응답은 제안서 발표에 대한 기획력과 창의성, 타당성과 실현 가능성, 합리적인 예산책정, 허위나 과대포장, 문제점 등을 확인하는 절차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를 하는 데 결정적이다. 일부 평가위원은 제안서의 오탈자만 지적하거나, 질문이 아닌 자기주장만 펼치거나, 잘못된 지식으로 옳다고 주장하거나, 발표 내용을 자문하기도 한다. 심지어 발표 내용이 잘못되거나 모른다고 야단을 치거나, 전혀 질문을 하지 않는 경우도 목격하게 된다. 과연 이들은 평가위원으로서 진정한 자격이 있는 것인가? 이들은 서류상으로 적격자일지 몰라도 실제로는 부적격자이다. 신종 아르바이트로 평가수당만을 노리고 참여하는 양심 불량자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사전에 검증된 평가위원의 전문가 풀제(expert pool system) 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모의 폐단인 입찰참가자의 평가위원 청탁과 비전문가의 참여에 대한 문제를 겪어보고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문가풀제가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투명성이 부족할 수 있다. Pool의 구성과 운영 방식이 공모와 비교해 투명성이 낮아 보일 수 있으며, 외부에서 Pool의 구성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전문가의 참여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기존 Pool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평가위원으로 선정하기 때문에 새로운 전문가의 평가위원 참여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공정성, 투명성과 전문성 차원에서 제안서 평가위원의 선정은 공개모집 방식을 지양하고 Pool제 방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다. Pool제는 사전에 검증된 전문가들로 구성되고 평가위원을 무작위로 선정함으로써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로비나 인맥의 영향을 대폭 줄일 수 있다. 또한 평가위원의 전문성을 기본적으로 보장할 수 있으며 일정 수준 이상의 객관적인 평가 품질을 유지할 수 있다. Pool제 방식의 투명성 보완을 위해 Pool의 구성 과정과 선정 기준을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Pool의 구성을 갱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투명성과 참여 기회를 보장하면서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신 창 열
(사)한국웰빙문화관광협회 회장 / 관광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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