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채록 5·18] 5·18 마지막 수배자 ‘합수(合水) 윤한봉’

류성호 2024. 8. 2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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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광주] [앵커]

내일(30일)은 5·18 기념재단 설립 30주년입니다.

이 재단 설립을 주도한 게 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선생입니다.

영상채록 5·18 오늘은 추모의 마음을 담아 고 윤한봉 선생을 기록합니다.

[리포트]

[윤한봉/생전 인터뷰 : "(5월) 21일 오후에 무장을 하는 것을 보고, 시민군들이죠. '아, 다시 (광주로) 들어가야겠다'해서 들어가려고 시도를 했는데 공수부대들에 의해서 외곽이 봉쇄돼 가지고 못 들어가서 지방에 있다가 27일에 서울로 올라가서 도피 생활을 시작했죠."]

[조진태/전 5·18기념재단 상임 이사 : "윤한봉은 호남 지역 특히 광주 전남 지역에서는 재야 민주화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기 때문에 윤한봉을 잡아서 폭동과 폭도 그림을 그렸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전두환 일당들은 윤한봉을 (5·18 주모자로) 지목을 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죠."]

[윤한봉/생전 인터뷰 : "가신 영령들과 동지들께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싸우다가 변함없는 촌놈 윤한봉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좀 많이 했죠."]

[신소하/고 윤한봉 부인 : "망명생활 수칙이라고 그래요. 그걸 정하셨어요. 그러면서 첫 번째, 미국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어도 쓰지 않고. 그 다음에 절대로 자기 물건 갖지 않는다. 내 것 갖지 않는다. 그 감옥에 있는 분들을 생각해서 침대에서 자지 않는다. 그리고 긴장을 놓지 않기 위해서 허리띠 풀고 자지 않는다."]

[윤한봉/생전 인터뷰 : "의식화된 청년들로 한청년이라는 것을 조직했어요.우리 동포 사회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급진적이었죠. 이를테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한다든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한다든가, 핵무기 철거를 요구한다든가…."]

["열심히 사는 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신소하/고 윤한봉 부인 : "처음에 귀국하셨을 때 막 이렇게 움직이실 때 정치하려고 한다는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본인은 절대로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아무것도 안 맡고 그냥 재단 만들 때 탄생할 수 있도록 도운 거죠."]

[조진태/전 5·18기념재단 상임 이사 : "그 (5·18재단)창립 선언문에도 나와 있지만 '5·18은 5월은 명예가 아니라 멍에이다. 그리고 채권도 이권도 아니고 희생이자 봉사다' 5·18 기념재단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라고 하는 그런 기본 자세, 태도를 규정한 부분이거든요."]

[윤한봉/생전 인터뷰 : "광주 스스로 5·18정신을 생활화하지 않고는, 5·18 자세를 생활화하지 않고는 다른 데다가 전국화를 이야기해도 호소력이 없다. 5·18 이전부터 가졌던 광주의 진보성을 되살려야 한다."]

기획·취재:류성호/촬영:이성현/구성:박은영/편집:심혜영/그래픽:박누리/영상제공:5·18기념재단·합수윤한봉기념사업회

류성호 기자 (menba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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