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138) 광화문과 정부서울청사

기자 2024. 8. 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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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때 ‘콘크리트 복원’ 광화문…조선시대 예조 자리 ‘종합청사’
정부종합청사 1971년. 셀수스협동조합 제공
정부서울청사 2024년.셀수스협동조합 제공

1971년과 2024년의 두 사진은 모두 경복궁 안쪽에서 정부서울청사와 광화문을 바라본 것이다. 50여년 사이에 광화문 주위의 공터에 새로운 건물과 담장이 만들어졌고, 정부서울청사 주변에도 외교부 청사(정부서울청사 별관), 서울지방경찰청 등 높은 건물들이 들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두 건물은 별로 변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반만 맞는 사실이다. 정부서울청사는 변화가 없으나, 광화문은 거의 새로 지었다.

1395년 경복궁의 정문으로 건립된 광화문은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865년에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도 다시 지었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경복궁 일부를 헐고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광화문은 경복궁의 동문인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졌다. 6·25전쟁 때에는 폭격으로 문루가 모두 불타고 말았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으나, 해방 후 조선총독부 청사는 중앙청이 되었다. 그리고 1968년에는 불타고 남은 석축을 중앙청 앞으로 옮겨 광화문을 복원하였다. 1971년 사진에는 광화문이 온전하게 복원된 것처럼 보이지만, 중앙청에 맞추다 보니 위치가 원래의 자리에서 뒤쪽으로 밀렸고 각도도 틀어져서 세워졌으며, 비용이나 시간 탓이었는지 문루를 목조가 아닌 콘크리트로 만들었다. 1996년 김영삼 정부는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으로 중앙청을 철거하고 경복궁의 전각들을 복원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 광화문도 2006년 철거하고, 1865년 중건 당시의 모습으로 2010년 원래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2024년 사진에 보이는 새로운 담장과 건물은 경복궁 복원 사업의 결과다.

조선시대 예조(禮曹)가 있던 자리를 차지한 정부서울청사는 중앙청의 공간 부족을 해결하려 1970년에 지었다. ‘정부종합청사’로 불린 19층의 이 건물은 개관 당시 서울에서 가장 높고 큰 빌딩이었다. 오랫동안 행정부의 중심 역할을 했으며, 중앙부처 대부분이 세종시로 옮겨가자 2013년 정부서울청사로 이름을 바꿨다. 현대건설이 지은 이 건물은 내부가 탁 트인 요즘 사무용 빌딩과 달리 내부 구획이 좁아 불편한 점이 많으나, 당시의 안보 상황이 반영돼 기둥이 매우 굵고 튼튼하단다.

* 이 칼럼에 게재된 사진은 셀수스 협동조합 사이트(celsus.org)에서 다운로드해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정치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지리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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