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파티의 파스텔화에 녹아든 리움의 고미술품(종합)
대형 벽화 등 작품세계 전반 소개…리움 고미술품 재해석한 작품도
(용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은 그동안 고미술품 전시를 주로 해왔다. 작년 김환기 회고전으로 재개관하면서 고미술과 국내외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기획전을 하겠다고 밝힌 호암미술관이 스위스 작가 니콜라스 파티(44)의 대규모 개인전으로 동시대 미술 전시를 시작한다.
31일 개막하는 '더스트'전은 파스텔로 그린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파티의 한국 첫 전시로,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소개한다. 미술시장에서 수십억원에 작품이 거래되는 인기 작가이기도 한 그는 기존 회화와 조각, 신작 회화, 이번 전시를 위해 장소 특정적 작품으로 제작된 파스텔 벽화까지 70여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미술사에서 다양한 모티브, 양식, 재료 등을 빌려와 자신만의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 나온 '버섯이 있는 초상'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의 정물화에서 나비와 버섯 모티프를 따왔고 독일 배우 마를렌 디트리히를 모델로 한 '부엉이가 있는 초상'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16세기 그림과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부엉이를 샘플링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리움의 고미술 소장품을 참조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신작 초상 8점은 조선시대 '십장생도 10곡병'과 김홍도의 '군선도'에 등장하는 다양한 상징을 따와 상상 속 여덟 신선(팔선)을 형상화했다. 금박 아치형 틀에 담긴 초상에서는 군선도 속 개가 머리카락을 대신하기도 하고 몸체가 십장생도의 사슴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29일 전시장에서 만난 파티는 "한국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전시 기획 초기 단계부터 리움의 현대미술 소장품이 아닌 고미술 소장품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 왔을 때 (상설) 전시작품뿐 아니라 수장고에 있는 작품도 일부 볼 수 있었다"면서 "이번 전시에서 참조한 소장품들은 이후 미술관 측과 대화를 나누며 선택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파티가 그림에서 쓰는 재료는 파스텔이 유일하다. 파스텔은 18세기 유럽에서 유행했지만, 지금은 유화물감이나 아크릴물감 등에 비해 회화 작가들이 즐겨 쓰는 재료는 아니다.
그는 "11년 전 파블로 피카소가 파스텔로 그린 초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흥미를 느꼈다"며 "그다음 날 바로 파스텔을 구입해 그리기 시작했고 지금은 내가 쓰는 유일한 재료"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파스텔이 오늘날 잘 쓰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스틱 형태로 작업실을 벗어나 집으로 가져와서 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파스텔은 18세기 여성들이 많이 사용했고 그 때문에 취미로 그리는 매체 정도로 평가받았다"고 짚으면서 "파스텔은 멋진 매체고 더 많은 이들이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루가 날리며 공기 중으로 흩어지기 쉬운 파스텔은 생성과 소멸, 영원성과 일시성 같은 이번 전시 속 작품 주제와도 연계되는 매체이기도 하다.
대형 벽화 작업으로도 잘 알려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용인에 6주간 머물며 그린 벽화 5점을 선보인다. 미술관에 들어오면 처음 마주하는 로비의 중앙계단에서는 붉은색 돌산 사이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그린 '폭포'가 관객을 맞는다. 전시장 곳곳에도 '동굴'과 '나무 기둥', '산', '구름' 벽화가 그려졌고 이들 벽화는 전시 후 흩날리는 파스텔 가루처럼 '공기 속 먼지'로 사라진다.
작가는 "(전시가 끝나면 지워야 하는) 벽화의 일시성이 마음에 든다"면서 "벽화의 일시성은 '무(無)에서 무(無)로'(From Dust to Dust)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전시장 구성과 작품 배치 방식도 색다르다.
생명 탄생의 장을 상징하기도 하고 예술의 기원이 된 장소이기도 한 동굴을 그린 그림 앞에는 탯줄을 보관했던 조선시대 백자 태항아리(胎壺)가 놓였고, 신비로운 '산' 그림 앞에는 국보인 고려(10∼11세기) 시대 금동 용두 보당(寶幢)이 놓여 신비함을 더한다. 사계절 풍경을 그린 그림이 있는 전시실에는 도교적 이상향을 표현한 십장생도가, '주름'과 '곤충' 연작이 있는 공간에는 목숨을 뜻하는 한자 '수'(壽)를 굴곡진 송백(소나무와 잣나무) 형상으로 표현한 겸재 정선의 '노백도'가 함께 전시된다.
유년 시절부터 그라피티를 체험하고 대학에서는 영화, 그래픽디자인, 3차원(3D) 애니메이션을 공부했으며 미술과 음악, 퍼포먼스가 융합된 전시와 공연을 만들기도 했던 작가는 이번 전시의 공간 구성에도 직접 참여했다. 전시장은 좁은 회랑을 지나 아치(arch) 형태의 문을 지나면 각각 다른 색이 칠해진 넓은 방이 나오는 식으로, 미로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전시는 내년 1월19일까지. 유료 관람.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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