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서울이어도, 끝은 우리 동네이길 [무너지는 지역 연극 完]

이연우 기자 2024. 8. 2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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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33년 만에 폐관 “지역 소극장 소멸, 지역문화 사라지는 것”
제주도·통영 등서 지역 정체성 담은 이야기 다루며 지역민과 소통 ‘온힘’
내달 1일 용인서 ‘시민연극제’ 팡파르... 전국 연극단체 다양한 목소리 더해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옆,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곽민규PD

 

#6장: 기라성 같은 연극인들이 울었다. 한국 공연예술의 산실이라 여겨지던 ‘(옛)학전’이 재정난 등으로 운영 33년 만에 폐관(3월)한 데다가, 학전의 대표였던 가수 김민기가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7월)이다. 연극인들은 과거의 일부분이 지워지는 심정이라고 했다.

표면적으론 극단 하나가 문 닫은 거지만, 실질적으론 그 극단을 통해 새롭게 생겨날 수 있었던 연극인과 연극문화가 실종된 셈이다. 그만큼 연극은 어제·오늘·내일의 수많은 문화 요소를 담고 있다.

지역 연극계는 진작 ‘학전 신세’였다. 하지만 큰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연극이 끝나고 홀로 객석에 앉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지키는 지역 연극인들을 비추는 이유는, 그들 안에 지역 정체성이 살아있어서다.

■ part1. 서울에서 대구·부산으로 전파…1980년대 부흥

29일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현재 연극 문화는 1902년 첫 발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뒤이어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기악, 신라의 처용무 등이 '고대 연극' 기원이라 볼 수 있지만, 지금 흔하게 떠올릴 수 있는 연극 틀은 일제강점기에 신문화가 도입되면서 잡히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일본에서 들여온 부분이 있다 보니 비교적 도심이던 ‘서울’ 중심으로 연극 문화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국내 연극의 르네상스라 여겨진 1950년, 서울 국립극장 개관공연(4월29일) <원술랑>에만 6만여 명의 관객이 모였을 정도다.

하지만 얼마 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립극장은 대구로 이전했고, 전속극단은 부산으로 흩어졌다. 어쩔 수 없던 일이었지만 ‘지역 극단’ 입장에선 초석을 쌓게 된 계기다.

이후 1960년 ‘실험극장’ 창설, 1973년 ‘연극인회관’ 신설 등 알음알음 우리나라만의 연극이 꽃을 피워나갔다.

그리고 1981년 공연법이 개정되면서 비로소 소극장 개설 및 극단 조직이 활성화·자유화 됐다. 이때 메인이 된 지역이 서울의 동숭동과 신촌 일대, 지금의 ‘대학로’다.

여기에서 뻗어나온 가지는 1983년 전국지방연극제로 연결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지방 연극 성장 시대’가 열렸다.

더불어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연극의 국제 교류가 이뤄지면서부터는 괄목할 만한 연극계 성장이 이뤄졌다.

김태섭 극단 성 대표 겸 ㈔경기도생활문화예술총연합회 대표이사가 지역 연극 관련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박채령기자

■ part2. "지역 연극 소멸은 곧 지역 문화의 말살"

㈔경기도생활문화예술총연합회 대표이사이자 극단 ‘성’의 대표인 김태섭(61)은 지역 연극계의 역사를 몸소 겪어왔다. 1983년 4월 수원에서 창단하고 올해로 만 41년째 운영 중인 ‘성’을 통해서다.

그는 “지역 소극장이 없어진다는 건 지역 문화 자체가 말살 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화면이 아닌 현장에서 관객과의 호흡을 생생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대상이 지역민이라는 점에서 지역 연극이 가치 있다는 설명이다.

인상 깊은 에피소드로는 1998년 팔달구 방화수류정 인근에서 진행한 공연을 꼽았다.

김 대표는 “방화수류정 수변 위에 무대와 객석을 설치했어요. 저희는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관객들은 연못에 발을 담근 채 옹기종기 공연을 봤죠. 지역 연극만이 할 수 있는 형태의 공연 아니겠어요?”라며 “저는 연극이 삶을 투영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극단의 경우 나혜석·정조대왕·홍사영 등 지역의 인물과 역사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데, 지역 연극 안에 지역 삶이 투영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성'이 지역 안에서 100년을 가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의 지역 극단 미래는 캄캄하다고도 본다. 나날이 관객들 눈높이는 높아지는데 지역 예술단체들은 '고가의 작품 시장'을 쫓아갈 여력이 안 돼서다.

김 대표는 “문학이나 미술처럼 개인적인 예술 작업은 ‘나의 노력’에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지만 연극은 ‘공동 작업’이라 좀 달라요. 예전엔 연극인들이 본인의 욕심과 사명감으로 지하에서 라면만 끓여 먹고 생활하면서 소극장을 지켜왔는데 이젠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이 적죠. 협업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야 작품이 나오는데 이제 그런 환경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지역 연극인들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게 지금의 제가 갖고 있는 책임감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해요. 지방정부가 나서서 환경을 조성해주지 않는 한 앞으로는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 part3.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연극인들은

무너지는 지역 연극, 벼랑 끝에서 힘겹게 버티는 연극인. 지역 문화를 계승하고 지역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지역 연극의 건재를 응원한다. 경기도 외 다른 지역 극단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풀어낸 지역 문화 작품을 소개한다.

예술공간 오이의 연극 <프로젝트 이어도-두 개의 섬> 일부 장면.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측 제공

최근 폐막한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의 본선 경연 진출작 중 하나인 <프로젝트 이어도-두 개의 섬>은 제주도만의 역사와 색깔이 짙게 담긴 이야기를 다뤘다.

그동안 제주도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온 예술공간 오이가 제주도의 과거와 미래를 소재로 이야기를 전했다. 이 안에는 독립군 출신 도하와 미래를 보는 어도가 만나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특히 제주의 구전민요 ‘이어도사나’를 통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연결짓는 점에서 지역 문화를 엿보였다.

극단 벅수골의 연극 <하얀 파도> 일부 장면. 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측 제공

또 경남 통영의 극단 벅수골이 연극제에 출품한 <하얀 파도>는 통영 바다 냄새를 물씬 풍겼다.

해안가에 있는 가상 공간인 ‘담류마을’이 배경이다. 오염으로 인해 조업이 금지된 담류마을에서 주민들은 재활용이 가능한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바다에서 쓰레기를 건지던 사람들은 그물에 걸리는 물고기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 당황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통영의 색으로 풀어냈다.

연출을 맡은 장창석 대표는 “우리는 <하얀 파도>를 통해 해양오염의 실태와 삶의 갈등 속에서 바다를 살리고자 하는 은근과 끈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서울 연극의 관점에서 지역 연극은 비주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소수의 구석진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역 연극인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스스로 특정 시대의 중요한 기록을 남기면서 세대 비전을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9월1일부터 8일까지 용인에서 열리는 ‘제3회 대한민국 시민연극제 용인’에서도 전국 시·도 시민연극단체의 목소리가 더해질 예정이다.

김태섭 극단 성 대표의 인터뷰 내용 일부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이 기사는 연극에만 포커스를 맞춘 기획물 같지만 사실 무용에도, 음악에도 해당되는 전체 예술의 이야기입니다.”

<무너지는 지역 연극> 인터랙티브 기사보기 / http://kyeonggimedia.netlify.app


※ 지금까지 보도된 ‘무너지는 지역 연극’ 기사들은 경기일보 홈페이지에서 영상 및 인터랙티브 기사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곽민규 PD rockmanias@kyeonggi.com
민경찬 PD kyungchan63@kyeonggi.com
김종연 PD whddusdod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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