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미래 세대에 부담 과중”…탄소 감축 목표치 재검토 불가피

박기용 기자 2024. 8. 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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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 결정, “2050년까지 감축 목표 있어야”
독일에선 비슷한 결정 뒤 목표치 대대적 수정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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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1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본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그것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이어서 “기후위기라는 위험 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정부로선 장기적인 차원에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다시 검토하는 일이 불가피해졌다.

헌재가 2026년 2월28일까지 개정하라고 한 법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다.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2050년까지 ‘탄소중립’(순배출량 0)을 달성하는 것을 국가 비전·목표로 삼은 법이다. 다만 목표 달성을 위한 중간 단계의 목표를 2030년 시점에만 정했다. 2030년 달성해야 할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로 규정하고, 시행령에선 “40%”로 정한 것이다.

그 뒤 2031~2049년에 이르는 19년 동안 목표가 없다는 것이 헌재의 지적이다. 변론 과정에서 정부는 “파리협정의 ‘진전의 원칙’(역진 방지)에 따라 5년마다 강화된 목표를 설정하게 돼 있”는 만큼, 2030년 이후 연도별 목표치를 굳이 일일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이날 선고 결정요지에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시점에 이르기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고 지적했다. 감축목표를 정할 때마다 단시안적일 수 있는 정부의 상황 인식에만 의존해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적극성과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한국의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치는 2010년 처음 정해진 뒤 2016년, 2021년 두 차례 새로 설정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서 정한 목표치는 ‘2020년 5억4300만톤’(전망치 대비 30% 감축)이었으나, 목표 설정 이후에도 배출량은 증가세를 보였다.
지난해 3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발표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목표. 탄녹위는 윤석열 정부 임기 중인 2023~2027년 연평균 1.99%씩 차츰 줄여나가다가, 2027년 이후 3년 동안 연평균 9.29%로 감축량을 급속도로 늘려가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사실상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할 총량의 75%를 다음 정부로 미룬 셈이다.

헌재의 이런 결정은 앞서 2021년 이뤄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과 거의 비슷하다. 독일 헌재는 당시 “독일의 연방기후보호법이 높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부담을 2030년 이후로 연기하고 있다”며 그 때문에 “(파리협정의 목표를) 2030년 이후엔 더 짧은 시간 안에 급격하게 달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인간의 생활 영역 전체가 위협받는” 일이기에 입법자가 “충분한 예방 조치” 차원에서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목표를 좀 더 자세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판결 5개월 뒤 의회와 함께 감축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연방기후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탄소중립 시기를 2050년에서 2045년으로 앞당겼을 뿐 아니라, 이미 정해둔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도 1990년과 비교해 55%에서 65%로 상향 조정하기까지 했다. 헌재가 주문한 것보다 정부가 한 발 더 앞서 나간 것이다.

청구 당사자들과 대리인단은 일단 헌재 결정을 반기는 분위기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정부의 장기적인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치 선정이 불충분하다는 헌재 판단이 나온 만큼, 현재 정부가 준비 중인 2035년까지 감축목표량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석탄발전소의 폐쇄 속도 조정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내연기관차 온실가스 배출 기준 등 규제들이 새롭게 정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주 변호사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독일처럼 후속 법 개정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국회 차원의 법 개정 논의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 대표인 이소영 의원은 “헌재 결정으로 2035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치 상향 같은 과감한 기후 입법을 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박지혜 민주당 의원도 “빠른 시일 내에 위헌 판단을 받은 탄소중립기본법 조항 개정과 구체적인 탄소 감축 계획을 담은 행정계획을 정부가 수정하도록 입법부가 감독하겠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에 대해 환경부는 이날 “정부는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만 밝혔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탄소중립이 우리 경제가 해결해 나가야 할 쉽지 않은 과제라는 점에서 경제주체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며 “대한상의는 산업계의 탄소 감축 노력을 지속하면서 정부와 협력해 저탄소 산업으로의 전환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옥기원 윤연정 박종오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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