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에서든 착한 건 착한 걸까 [웹소설 비평]

조형래 조교수 2024. 8. 2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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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미디어 리터러시+
광주대 웹소설 창작연구팀 웹소설 비평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 1편
주인공이 승리한다는 웹소설 공식
무한히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
주인공의 선한 선택은 현실적일까

착한 마음은 정말 착한 결과를 이끌어낼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이는 정말 착한 사람일까. 웹소설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의 주인공은 선의善意로 무장한 사람이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에게든,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람에게든 선의를 잃지 않는다. 도대체 이 웹소설이 말하고 싶은 선의는 무엇일까. 두편으로 나눠 답을 찾아봤다.

해저 기지 속 박무현은 선함의 상징이다.[사진=펙셀]

"책을 읽읍시다, 문학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종이책을 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종이책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공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도 확연히 줄었다. 그런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을 굳이 꼽자면 아마 온라인 댓글창 정도일 것이다. 각자의 의견을 피력하는 소통의 장은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이렇게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면서 이야기 자체도 변화했다. 더이상 사람들은 무거운 현실 고찰이나, 교훈을 통한 성장, 혹은 정치적 함의가 담긴 글을 즐기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그런 문학을 즐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과거에 비해 그 수가 확실히 줄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을까. 이제 사람들은 종이가 아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소설을 읽는다. 출퇴근 시간, 수업 사이 쉬는 시간, 일하지 않는 휴식 시간 등 자투리 시간에 말이다. 종이 위에 쓰인 글씨는 어느샌가 화면 속으로 들어갔고, 자연스레 이야기는 짧고 간결해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SNS에서 공유되는 짧은 시나 유행처럼 번지는 에세이를 거쳐 이제는 웹소설에 도달했다. 웹소설은 무거워진 현실을 빠르게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현실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사이다' 같은 존재감을 뽐내기도 한다. 가령, 웹소설 속 주인공은 실패한 인생을 되돌려 성공의 길을 걷기도 하고, 운명적인 만남으로 사랑에 빠지며 일과 사랑 모두를 쟁취한다. 실패는 아주 잠깐일 뿐이며, 결국 승리하는 결말을 향해 달린다. 깊은 생각 없이도 이야기를 빠르게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연산호의 「어두운 바다의 등불이 되어(이하 「어바등」)는 보통의 웹소설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단순한 승리의 이야기보단 선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달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선의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웹소설은 무거운 현실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어바등」은 해저 기지에 새로 부임한 치과의사 박무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부임한 지 닷새 만에 해저 기지에 물이 새기 시작하고, 박무현은 기지를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단순히 박무현의 해저 기지 탈출기로 볼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이를 단순한 탈출기로만 정리하기 어렵게 만든다. 60화까지 봐야 전체 그림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은 반전을 거듭한다.

소설 속에서 박무현은 여러 차례 죽음과 삶을 오가며 경험을 쌓는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관계있든 없든, 모든 인간이 함께 살아남기를 바란다. 심지어 자신을 공격하고, 죽이려 하고, 제물로 바치려 했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나를 해하려는 이에게도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가." 인간의 선의는 순환한다고 믿는 박무현의 말은 이론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옳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는 과연 박무현처럼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의문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어바등」의 주인공 박무현은 30대 남성 치과의사다. 의사라는 직업은 '능력'처럼 보이지만 해저 기지에서 치과의사의 전문성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박무현은 부임한 지 겨우 닷새밖에 되지 않아 기지의 특성도 모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잘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박무현이 주인공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웹소설 독자들은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할 때 통쾌한 결과를 기대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주인공은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특별한 '버프(특정 능력을 강화하는 특별한 효과)'를 받는다. 실제로 박무현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지만, 사건을 해결하기는커녕 몇번이고 좌절을 겪는다. 시간 순환을 반복할수록 독자들이 기대하는 통쾌함보다는 답답함이 커진다. 박무현도 그를 지켜보는 독자들도 점점 지쳐간다.

그럼에도 박무현은 끝까지 선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선의가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행동하고 설득한다. 이런 점에서 박무현이 주인공으로 선택된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특별한 능력이 없고 다소 부족해 보이더라도, 선의를 베풀다 보면 그 선의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게 작가의 생각 아닐까.

하지만 소설을 읽을수록 그의 선의는 기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의 고집스러운 선의를 누군가는 '선민의식' 쯤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는 유일하게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기에 결국 선택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웹소설은 '모든 사람들이 선의를 가질 수 있을까' '선의를 유지하는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일까'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 질문의 답은 2편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김고운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조형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mc26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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