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매체 사이…우리는 '지역 극'에 남는다" [무너지는 지역 연극⑤]

이연우 기자 2024. 8. 29.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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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삶과 인생이 도대체 뭔데"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몰라? 몰라도 돼, 그게 연극이야"란다.

"지역에서 연극 활동이 지속되려면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이 창작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주고 주제 폭을 정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시민들도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죠. 또 무용이건 음악이건 연기건, 연극인을 트레이닝하고 인재 풀을 갖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동반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극인이 분명히 지역에 모이게 될 거에요. 별다른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라면 차차 연극 관객은 도망가서 없어질 겁니다. 저희는 여기 남아 '꿈의 무대'를 지켜야죠. 연극 예술에 예의를 갖추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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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서 첫발… 대학로 거쳐 경기도로 와
지역 연극계 출세 힘들어… 동료들 서울로
무대와 매체 사이 지역 극 선택은 자부심
깊이있는 연극으로 메시지·고고함 전할 것
파주시 와동동에 있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파주지회(파주예총)에서 만난 박재운 극단예성 대표. 박채령기자

 

인터뷰 줌-in 연출가 겸 극단 예성 대표 박재운

“한평생 무대 짓고 연극… 꿈이자 현실”

#5장: 깔끔하고 세련된 호텔에도, 바퀴벌레와 곰팡이가 덮인 초가삼간에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잘난 척 우쭐대며 뽐내는 이에게도, 손가락질 당하며 폄하 당하는 이에게도 저마다의 인생이 있다.

“그래서 그 삶과 인생이 도대체 뭔데”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몰라? 몰라도 돼, 그게 연극이야”란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수염으로 호탕하게 웃던 극단 예성의 연출가 겸 대표인 박재운(61·한국연극협회 파주지부장)이 선배에게 건네들은 연극 지론이다.

1982년 서울 신촌에서 연극에 첫발을 디딘 그는 대학로를 거쳐 2006년 무렵 경기도에 왔다. 세트를 짓고, 각본을 쓰고, 배우를 가르치고, 극장을 운영하는 등의 모든 연극 행위를 경험했다.

극단 예성이 지난 2012년 마당극 <심봉사의 딸>을 공연하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극단 예성 제공

지난 세월을 돌아보던 그는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건 작가·연출가·배우의 합이 잘 맞는다는 말”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역 연극계에서 그게 쉬운가. 출세하러 한양길에 오르는 선비처럼, 경기도 연극인들도 서울을 향하는 마당에.

“히딩크 감독 덕에 대한민국 축구가 달라진 것처럼 리더가 누구인지에 따라 업계는 달라집니다. 10년, 20년에 한 번씩 어디선가 그런 리더들이 툭툭 튀어나와요. 그런데 세상을 깜짝 놀래키는 리더가 탄생해도 우리나라 구조상 서울로 향할 수밖에 없어요. 역사적으로도 그래왔고요. 성공하러 간다는데 ‘가지 마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래, 가서 한판 잘 놀아봐라’ 하죠. 지역 연극계도 같은 사정인 겁니다. 좋은 리더가 나와도 서울로 가니까 다른 연극인들도 함께 서울을 바라보게 되는 거죠.”

멈칫, 펜을 쥐어 든 그는 종이에 서울과 경기도를 그렸다.

“어쩌면 대학로의 치열한 경쟁을 피해 지역에 안주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맞수가 있어야 상생할 수 있는데 라이벌을 피하니까 자극도, 동기부여도 못 받고요. 지역 연극이 침체하는 원인에는 이 이유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단 예성이 지난해 선보인 연극 <이장(移葬)>의 일부분. 극단 예상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을 지키는 연극인들. 재운은 “전부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세트도 짓고, 옷도 꾸미고, 벌이에 비해 드는 돈이 많은 ‘값비싼 예술’인데 그저 연극을 사랑한다는 마음만으로 계속 활동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세상을 읽은 마음을 글로 적고, 무대로 형상화해, 인물이 마음껏 소리치는 것이 곧 연극. 그리고 그 연극만의 생동감을 ‘생계’ 뒤로 미루긴 싫은 재운. 무대와 매체 사이에서 그가 지역 극(劇)을 선택한 자존심이자 자부심이다.

“한평생 변하지 말리라 다짐하는 게 있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한평생 망치 들고 장갑 끼고 일하겠다는 겁니다. 저는 무대 짓고 조명 달면서 계속 연극을 할 거에요. 이 연극이 제겐 꿈이자 현실이거든요. 다만 ‘생활’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생활이면 비겁해지니까.”

살짝 웃던 재운은 “말초신경을 건드리는 재미 있는 상업극, 주제 의식은 부족하지만 화려한 인기극, 무료 공연 없는 전 회차 유료 공연, 그런 거 하면 돈 벌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깊이 있는 연극을 토대로 메시지도 있고, 고고함도 있는 것 하고 싶어요”라며 “그게 바로 지역 연극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극단 예성 배우들이 판놀음 <방촌전>을 공연하고 있다. 극단 예성 제공

마지막으로 그는, 지역에 남은 연극인으로서 지역 연극이라는 예술에 예의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연극 활동이 지속되려면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이 창작의 자유로움을 인정해주고 주제 폭을 정하지 말아야 해요. 그래야 시민들도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죠. 또 무용이건 음악이건 연기건, 연극인을 트레이닝하고 인재 풀을 갖출 수 있는 교육 시스템도 동반되면 좋겠어요. 그러면 연극인이 분명히 지역에 모이게 될 거에요. 별다른 변화 없이 지금 이대로라면 차차 연극 관객은 도망가서 없어질 겁니다. 저희는 여기 남아 ‘꿈의 무대’를 지켜야죠. 연극 예술에 예의를 갖추면서.”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박채령 기자 cha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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