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조선 사람들은 망하는 것을 스스로 즐겼으니”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24. 8. 29. 19: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8월은 한반도 근현대사에서 격동의 달이다. 114년 전 8월 29일에는 조선이 일본에 강점당해 망했고, 1945년 8월 15일에는 광복이 되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 육군 대신 출신의 데라우치 조선 통감은 일본군을 한양에 집중시킨 뒤 한일병합서 체결을 강제했다. 순종 즉위 4주년은 넘기고 발표하자는 조선의 요청에 따라 1주일 뒤인 29일에 체결이 공표되었다.

당시 일본 망명 중이던 청나라 지식인 양계초에 따르면 즉위 4주년 연회에 참석한 군신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먹고 마시고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양계초는 이렇게 썼다. “무릇 조선 사람들은 망하는 것을 스스로 즐겼으니, 또한 무엇을 가엾게 여기겠는가”.

그 시절 고종은 누가 봐도 호구였지만, 자신은 웅재대략(雄才大略-뛰어난 재능과 원대한 지략)의 명군이라고 굳게 믿었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성현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요. 그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겄으면 니가 바로 그 호구다”.

나라가 망한 뒤에도 고종과 왕실은 잘 먹고 잘 살았다. 식민지 총지출의 2%가 이들에게 지급되었다. 고종은 나라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다. 널리 인재를 구하기보다는 친인척만 찾았고, 기득권층과 노론 당파만 챙겼다. 매관매직을 일삼았고 승진을 위한 ‘게임의 룰’은 뇌물이었다. 고종은 나라가 망하기 전에 이미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이번 파리올림픽 때 한국 스포츠 종목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 양궁은 베테랑이나 이름값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가장 잘하는 선수’를 뽑는다.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6개월에 걸쳐 5차례의 선발전을 거쳐야 한다. 선발전 결과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경력 나이 학연 지연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2023년 10월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 양궁팀은 파리올림픽에서처럼 남녀 모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파리올림픽 선수단은 그때와는 많이 바뀌었다. 아시안게임 성적과 관계없이 제로베이스에서 치러진 선발 결과 남자팀은 1명이, 여자팀은 2명의 선수가 교체되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 3관왕이자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땄던 안산도 선발전에서 탈락하고 국제대회 출전 경험이 없는 2명이 선발되었다. 그래도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양궁과 대비되는 종목이 40년 만에 처음으로 올림픽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한 축구이다. 인기 종목인 축구는 아직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박정희시대 최고 권력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는 한때 축구팀까지 운영했었다. 이세연 이회택 김호 등 당대의 스타 선수를 모아 병역 면제 특혜를 주고 이들을 합숙훈련 시키면서 정신 무장을 강조했다. 그랬음에도 당시 한국 축구는 동남아 팀들에게도 번번이 덜미를 잡히고 월드컵 본선 출전은 꿈도 꾸지 못했다.

2012년 월드컵 감독이었던 홍명보는 당시 누가 봐도 폼이 떨어져 있었던 박주영을 고집을 부리며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최전방 공격수였던 박주영은 경기에서 슛 한 번 날리지 못하고 최하 평점을 받았지만, 감독은 수비가 훌륭했다고 칭찬을 했다. 그는 홍 감독의 대학 후배였다. 축구협회장의 대학 후배로 다시 축구 대표팀 감독이 된 홍명보는 “10년 전 ‘인맥 축구’라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말로 퉁 치고 넘어갔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등 한국 축구 황금 세대의 재능을 헛되이 흘려보내고 있는 축구협회 회장은 “국가 대표팀 성적이 부진하다고 단체장을 퇴진하라는 종목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광복 79주년인 2024년 8월, 한국 사회 시스템을 움직이는 ‘게임의 룰’은 무엇일까? 나는 ‘학연 인연 지연으로 뭉친 기득권 카르텔’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는 성경 구절에서 유래한 ‘마태효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7월 말 브라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는 ‘초부자에 대한 부유세’ 부과를 합의했다. 한국 기재부 장관도 참석한 회의였다. 글로벌 합의와는 별개로 윤석열 정부의 기조는 상속세 개편에서 보듯 일관된 부자 감세이다. 배우자와 자녀 둘까지는 1인당 5억씩, 15억 원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면제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빚을 제외하고 순자산이 10억 이상이면 상위 10%이다. 그들이 재산을 더 쉽게 물려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누구는 더운 여름에 운동화만 신고 뛰어가고 누구는 에어컨 빵빵한 차를 이용할 수 있는 마라톤 경기를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고도 ‘노오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G20 개최국 브라질 룰라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 하는가”.


“일제시대에는 나라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가 일본 국민이었다”는 이가 독립기념관장이 되고, 국가안보실 차장은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이라고 과거사에 대해 반성과 사과가 없는 일본을 옹호한다.

8월은 정말 격동의 달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