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면책특권의 함수 풀기

이동현 평택대학교 총장 2024. 8. 29.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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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자 대리인’ 권한, 막말 등엔 적용 안돼
특권의 사유화 경계…남용 막을 규제 필요
이동현 평택대학교 총장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에 대해 부여하는 면책특권을 두고 한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중 행위에 대해 면책을 폭 넓게 인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대통령의 공적 행위에 대해서는 광범위한 면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나라는 왕이 없다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며 “이번 결정으로 대통령은 법 위에 군림하는 왕이 됐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다뤘던 국민권익위원회 간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의 발언으로 면책특권 논란이 뜨겁다. 전 의원이 청문회장에서 “대통령 부부가 사람을 죽였다”고 하자 대통령실은 “면책특권 뒤에 숨은 패륜적 망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국회의원 등의 언행을 두고 면책특권의 적절성 여부가 소환되곤 한다. 쟁점은 명예훼손 협박 인격모독 등에 대해서도 면죄부를 주는 것이 적절하냐는 비판에서 비롯된다. 직무 연관성이 없고, 허위사실 등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발언하더라도 면책특권을 받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공학까지 곁들여지면 논란은 더욱 복잡해진다. 전 의원의 발언을 ‘팬덤 정치’의 일환으로 해석하면서 정치 공방이 더욱 거칠어진다. 면책특권에 기인한 국회의원의 ‘막말’이 정치적 권위의 실종과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올 것이고, 이는 최종적으로는 북한의 대남 전략에 이용당할 것이라는 주장으로까지 비약된다. 이들 문제의 주범이 바로 면책특권이라는 것이다.

1976년 하버드대의 마이클 젠슨과 로체스터의 윌리엄 메클링을 통해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개인 또는 집단이 의사결정과정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면서 대리인은 그 노력으로 인한 결과를 평가받고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 하지만 주인은 대리인을 완벽하게 감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정보비대칭 문제’가 발생한다. 더구나 대리인은 나름대로 이해 관계를 갖고 있으니 만큼 주인의 이해와 반하는 행동도 가능하다. 여기에서 역선택의 문제 혹은 도덕적 해이, 무임승차자 문제 등이 발생한다.

바로 이 문제는 현재 인류가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대표자를 통한 대의(代議) 민주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대신할 대(代)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 주권을 가진 국민이 투표를 통해 대리인을 선정함으로써 기능하는 정치체제다. 문제는 선출된 정치인이 국민의 대리인,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고 스스로 특권을 가진 권력자로서 행동하는 데서 기인한다.

왕정국가와 독재정권의 경험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이 그저 국민의 대리인일 뿐임을 종종 잊곤 한다. 대통령만이 유일한 주권자인 것처럼 대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인데 심지어 대통령 본인마저 그리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바로 유일한 권력자였던 왕으로부터 국민의 대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영국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이것을 보장함은 유일한 권력자인 양 변질될 수 있는 대통령으로부터 입법부를 보호하기 위함이고, 근본적으로는 본디 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보장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따라서 면책특권 그 자체는 죄가 없다. 그보다는 권력자의 특권화야말로 진정한 죄다. 국민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 면책특권은 인정되어야 한다. 언행은 품격 있게 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적에 충실하다면 다소 거칠다 하더라도 양해가 가능하다. 나아가 교육을 포함한 면책특권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신중한 논의를 거쳐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면책특권의 사용법을 명확히 해야 하고, 이것에 대해서는 자율적 또는 강제적 방식을 통해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돼서는 안 되고 국민을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정보통신기술 혁명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가 폭 넓게 인정되고 있는 만큼 이에 비례적으로 면책특권도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올해 새로 임기를 시작한 국회의원들은 ‘주인’인 국민의 이익을 대신하는 ‘대리인’임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면책특권은 어디까지나 주권자이자 정치인들의 주인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임을 잊지 말라. 더 큰 권력이 함부로 하지 못하게 특정한 책임만 면하는 것일 뿐, 주인인 국민을 향한 ‘책임’마저 면하려고 만들어놓은 제도가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참된 면책특권의 활용법이자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새로운 면책특권의 함수이다. 나아가 전관예우 특권, 혈연·학연·지연 등 모든 종류의 특권을 없애는 노력도 함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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