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2031년 이후 감축 목표 입법 보완 필요”
헌법재판소가 29일 ‘기후위기 소송’에서 내린 결정의 핵심은 정부가 ‘2050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세우면서 이를 법률에 제대로 규정하지 않아 ‘기본권 보호 의무’ 위반으로 국민의 ‘환경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사회에서 정부의 대응이 명확하지 않으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국가의 더 큰 책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미래세대 부담 덜고, 제조업 산업구조 반영해야
이번 기후소송의 주요 쟁점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 기준을 명시한 법 조항과 시행령, 그리고 해당 감축 목표 기준과 이행 계획 등이 적절한지 여부였다.
헌재는 먼저 탄소중립기본법 8조1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하면서 “과소보호금지 원칙과 법률유보 원칙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전자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행정권 발동은 법률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감축목표 비율’을 정하고 있는데, 헌재는 같은 법 7조1항 등이 정한 ‘2050 탄소중립’ 비전·목표에 비춰보면 2031~2050년의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2031년 이후의 감축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다하지 않으면 감축부담은 더욱 증가해 과학·정책적으로 충분한 감축목표 설정과 이행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궁극적으로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국가가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그 부담이 미래세대에 떠넘겨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이 이전되지 않도록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시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점진적인 감축이 이뤄질 수 있는 방식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했다.
헌재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입법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한 배경에는 제조업 비중이 큰 국내 산업환경이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공개변론에서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아 온실가스를 즉각적으로 감축하기 어렵다”면서 ‘현실론’을 폈다. 헌재는 온실가스 배출 업종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중장기 감축안을 미리 세워야 감축부담 악순환을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다만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하도록 한 같은 법 시행령 3조 1항에 대해선 “여러 부문별 감축대책과 목표량을 함께 고려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절차에 따라 결정된 비율”이라며 헌법소원 청구를 기각했다.
정부 배출량 목표치 산정방식 ‘위헌’ 의견 다수
헌재 재판관 절반 이상이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 이행안에 대해 위헌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해당 계획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 달성을 위한 산업·수송 등 부문·연도별 감축목표 이행대책안이 담겼다.
김기영·문형배·이미선·정정미·정형식 재판관은 “정부의 배출량 목표치 산정방식은 입법자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량화한 체계를 자의적으로 변경해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보호조치 수준을 낮추는 것이어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배출량 목표치 산정방식이 자의적으로 이뤄져 법에도 맞지 않고 제도적 실효성도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 이종석·이은애·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탄소중립법 법령에 위반되지 않으며, 부문·연도별 감축목표가 기후위기 해소를 지향하면서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구체적 목표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상 과소보호금지 원칙에도 반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 결정이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나온 만큼 다른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지난 1월 대만에선 기후단체 환경권리재단이 처음으로 기후 헌법소원을 냈고, 일본에서도 지난 6일 도쿄전력 유관 기업 등 전력회사들을 상대로 기후소송이 제기됐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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