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리더의 오판] 준비되지 않은 리더, 떠나는 인재

파이낸셜뉴스 2024. 8. 29. 18:2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사에게 잘 보이면 그만'
유능한 인재들은 떠나고
무능한 리더·직원만 남아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어떻게 저렇게 무능한 사람이 임원 자리에 앉아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대와 동서양 문화권을 막론하고 꽤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는 왜 기업, 정부 등 모든 조직에서 무능한 관리자들이 넘쳐날까에 대한 연구를 했다. 조직에서는 무엇보다 실무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우선적으로 승진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성과가 좋은 사람이 승진하는 것이 공정하고, 당연히 부하직원의 교육과 관리 등 리더의 역할도 잘 해낼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더가 되면 과거 업무능력보다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중요한데, 대부분 아무런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좌충우돌하다 성과도 떨어지고 팀워크도 망가뜨리며 무능하다고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피터는 이렇게 과거 성과만을 승진의 기준으로 삼으면, 결국 무능한 리더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했다. 이를 '피터의 법칙(Peter Principle)'으로 명명했다.

예일대 MBA 켈리 슈 교수는 높은 성과를 인정받아 승진한 관리자들이 리더 업무도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연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실무 성과가 탁월했던 직원일수록 오히려 평가가 최하위에 머물렀다. 피터의 법칙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결과에 대해 켈리 슈는 '최고의 엔지니어가 창업한다고 해서 반드시 최고의 경영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최고의 엔지니어가 되는 것과 엔지니어를 잘 관리하는 리더의 역량은 매우 다르다'고 설명했다. 즉 리더에게는 실무능력도 중요하지만 팀원을 독려하고, 시너지를 유도하는 리더십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만화 '딜버트(Dilbert)'는 65개국 2000여개 신문에 연재된 세계적인 콘텐츠다. 엔지니어 딜버트의 직장생활을 그린 3~4컷의 만화는 경영진의 무능과 상사의 횡포, 권위주의적 계층구조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내용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열광한 독자들은 작가 스콧 애덤스에게 자신들의 직장생활 경험담을 보냈는데, 이는 고스란히 만화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애덤스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경영관행이 직원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가'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경영진으로 승진한 멍청이'였다. 애덤스는 이 내용을 '딜버트의 법칙'이라는 만화로 출간했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여기서 '무능력하고 비효율적인 직원일수록 쉽게 승진하는 현상'을 뜻하는 '딜버트의 법칙(Dilbert's Principle)'이 탄생했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한 조직에서는 입으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시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자리만 지키려고 윗사람 눈치만 살피는 사람들이 다수다. 동료나 부하직원이 열심히 일하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낀다. 만화에서는 무능하지만 승진하고 싶다면 '상사에게 잘 보이면 그만'이고, '너무 열심히 일하면 오히려 곤란하다'고 냉소적이지만 현실적 조언을 한다.

피터의 법칙과 딜버트의 법칙이 경고하는 진짜 위험은 '유능한 직원들은 떠나고 무능한 리더들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엄격한 기준으로 리더를 선발하지 않으면 조직의 높은 자리에는 실무능력은 뛰어나지만 리더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거나, 실력은 전혀 없지만 아부가 뛰어난 사람들이 앉게 된다. 이들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지상 최대의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래서 결점을 보완하고 리더로서 필요한 자질과 지식을 습득하기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우수한 부하직원을 경계하게 된다. 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직원이 오히려 껄끄럽고,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유능한 인재들을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여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의도적으로 무능한 직원을 승진시켜서 옆에 두려고 한다. 무능한 사람이 고위직으로 승진하는 꽤 흔한 이유다. 결국 승진에서 제외된 우수한 인재는 떠나게 된다.

결국 인재들은 떠나고, 무능한 사람들만 남아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근근이 조직을 꾸려간다. 만년 저성과 조직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준비된 리더가 필요한 이유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Copyright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