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밥캣·로보틱스 합병 철회

"에너빌리티·로보틱스 분할합병 추진 지속"
주주들 "사건의 본질 변하지 않는다" 분통

박정원(가운데) 두산그룹 회장과 박지원(왼쪽) 그룹 부회장이 올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두산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두산그룹 제공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가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의 합병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다만 두산그룹은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분할합병은 지속 추진한다고 밝혀 일부 주주들의 반발을 샀다.

29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는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고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 추진하던 양사 간 포괄적주식교환 계약을 해제하기로 결의했다.

양사는 각각 대표이사 명의의 주주서한을 내고 "사업구조 개편 방향이 긍정적일 것으로 예상되더라도 주주 분들과 시장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면 추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추후 시장과의 소통 및 제도개선 내용에 따라 사업구조 개편을 다시 검토하는 것을 포함해 양사 간 시너지를 위한 방안을 계속 찾고자 한다"고 말했다.

다만 두산그룹은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두산에너빌리티 신설법인과 두산로보틱스간 합병은 그대로 추진한다. 이 경우 밥캣은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남게 된다. 금융감독원이 잇달아 제동에 나서며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을 골자로 하는 그룹의 당초 안은 무산됐지만 사업 재편의 실마리를 풀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두산그룹은 그동안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밥캣을 인적분할한 뒤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구조의 사업 재편을 추진해왔다.

이 과정에서 연매출 10조원에 이르는 밥캣이 매출 530억원 로보틱스로 흡수되면서 소액주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이복현 금감원장은 2차례에 걸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면서 "미비한 점이 있다면 신고서 정정을 무제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 관계자는 "이달 초 주주서한에서 설명한 것처럼 원전 분야의 세계적 호황으로 전례 없는 사업기회를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 생산설비를 적시 증설하기 위해선 이번 사업재편을 통해 투자여력을 확보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간 두산그룹 측은 두산에너빌리티를 인적분할해 로보틱스와 합치는 작업은 두산에너빌리티가 에너지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란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룹에 따르면 두산에너빌리티가 이번 분할합병을 마치게 되면 차입금 7000억원 감소 등을 통해 1조원 수준의 신규 투자여력을 확보하게 된다. 이는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전(SMR) 제작 시설 확충 등 미래 신사업에 활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금융당국의 정정요구 사항을 충실히 반영해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시장 의견 등을 수렴해 주주총회 등 추진 일정을 재수립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두산그룹의 이 같은 결정에도 일부 주주들은 지배구조 개편안 중 일부를 철회한 것에 지나지 않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소수주주 의결권 플랫폼 액트팀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포괄적 주식 교환을 철회했다고 해서 이 사건의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며 "두산에너빌리티 입장에서는 기존과 달라지는 게 없다"며 "에너빌리티의 부채비율은 분할 전 131%에서 분할 뒤 160%로 치솟게 되고, 에너빌리티는 더 이상 밥캣의 배당수익을 향유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밥캣만 일부러 살려주면서 에너빌리티 주주들을 궁지에 빠뜨리려는 계책으로 보인다"며 "지배구조 개편안 중 일부가 뒤늦게 변경된데다 주주들과의 소통도 부족했기 때문에 다음 달 25일 주주총회 개최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고 덧붙였다.양호연기자 hyy@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