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멀라노믹스, 중산층 세금 깎고...물가 잡으려 기업 때린다

류재민 기자 2024. 8. 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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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지금까지 공개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경제 구상 분석
그래픽=김의균

미국을 넘어 세계인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미국 대통령 선거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지난달 말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물려받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한 달간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초접전을 벌이는 중이다. 지난 19일부터 나흘간 열린 전당대회 덕분인지 일부 여론조사에선 트럼프를 의미 있게 앞지르고 있다. 그러나 해리스가 취임 후 어떤 경제 구상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뚜렷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대선 후보를 공식 수락한 22일을 전후해서야 일부 정책의 윤곽이 나오기 시작한 정도다. 아직 세부 사안이 공개되기 전인데도 ‘카멀라노믹스(Kamala+Economics·카멀라의 경제 정책)’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해리스의 경제 구상을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되거나 내부 인사들을 통해 드러난 내용을 바탕으로 WEEKLY BIZ가 심층 분석했다.

◇중산층 세금은 깎고 법인세는 올린다

카멀라노믹스의 ‘프로토타입(디자인 원형)’은 지난 16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처음 공개됐다. 해리스는 ‘기회의 경제(Opportunity Economy)’라고 이름 붙인 자신의 경제 정책 방향을 설명하며 “중산층의 경제와 안정, 존엄을 향상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임기 4년간 신규 주택 300만채를 공급한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이를 포함해 대체로 중산층·서민을 위한 감세 혜택과 지원을 늘리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중산층 가정에 자녀 한 명당 36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고, 출산한 가정엔 한 해 최대 6000달러까지 아동 세액공제를 하겠다고 했다.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겐 계약금 용도로 최대 2만5000달러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처방약 자기 부담 한도를 ‘최대 2000달러’까지 낮추고, 의료 채무로 고통받는 수백만 국민의 빚을 탕감해 주겠다고도 밝혔다.

그래픽=김의균

이날 발표된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바이드노믹스(바이든의 경제 정책)의 복지 지향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 규모만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늘 그렇듯 재원 마련책이 문제이긴 하다. 미국 비영리단체 ‘책임 있는 연방 예산 위원회’는 이 정책들이 시행될 경우 연방 정부 부채가 1조7000억달러(약 2300조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정부 부채는 이미 전체 규모가 34조5000억달러(약 4경6000조원·지난 5월 기준)를 넘어가며 ‘경제의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감세로 재정 적자가 심해져 미 정부가 국채를 더 찍어 이를 충당할 경우 시중에 국채가 더 풀리면서 전 세계 시장 금리의 기준이 되는 국채 금리가 상승(국채 가격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간신히 고금리 환경에서 벗어나려 하는 증시 등엔 부담이 되는 요인이다.

이에 대한 해리스의 대응책도 있다. ‘법인세 인상’이다. 현재 21%인 법인세율을 28%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10년간 약 1조3000억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미국이 법인세율을 28%로 올리면 일본(30.6%), 호주(30%), 독일(30%) 등에 이어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법인세율을 적용하는 국가가 된다. 미국 법인세는 과세표준 금액과 관계없이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외국 법인에도 동일하게 부과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사업을 많이 하는 한국 기업들엔 악재가 될 수 있다.

◇‘물가 잡기’ 명목으로 기업 때리기 나섰다

‘해리스표’ 물가 안정 대책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중산층·서민의 경제 안정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생계 물가 폭등’을 지목하면서 인플레이션 국면을 활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식료품 기업에 그 책임이 있다고 비난해 왔다. 그러면서 기업이 식료품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못하도록 연방 차원에서 규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소비자 부당 착취와 폭리 취득’을 방지하는 지침을 만들고,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격인 연방거래위원회와 주 법무 장관에게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을 조사·처벌할 권한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기업형 임대업자들이 집세를 과도하게 올리지 못하도록, 사모 펀드·투자사 등이 임대주택을 사재기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해리스가 이 같은 공약을 발표하자 일부 유권자 사이에선 “정부가 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해 ‘가격 지침’을 내리는 정책”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이코노미스트 등 해리스를 지지해 온 주요 언론들까지 “가격 상한을 정부가 경직적으로 정해 기업이 생산비를 충당하지 못하고 손해를 보게 되면, 공급 자체가 줄어 물가가 더 올라간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실제로 1970년대에 휘발유 가격이 오른다고 정부가 가격 상한제를 시행했다가 휘발유 판매를 중단한 곳이 많아져 큰 혼란을 겪은 적이 있어 가격 통제에 매우 조심스럽다. 트럼프 캠프는 해리스의 가격 통제 계획을 ‘카뮤니즘(Kamala+Communism·카멀라의 공산주의)’이라 조롱하면서 “베네수엘라나 쿠바에서나 내놓을 법한 정책”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해리스가 이러한 ‘무리수’를 둔 이유는 임기 4년간 ‘밥상 물가’가 25%가량 오르며 고물가 책임론에 시달린 바이든 정부보다 강력하게 물가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라고 풀이된다. 바이드노믹스는 중산층을 부흥시키기 위한 핵심으로 ‘제조업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았지만 결국 치솟은 물가에 대처하지 못해 ‘낙제점’을 받는 상황이다. 해리스는 이에 물가 문제만큼은 바이든 정부와 선을 긋고 정부의 시장 개입도 불사하겠다며, 반(反)기업 정서가 짙은 민주당 핵심 지지층에 호소하려 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식품 회사들과 일부 경제학자는 반대할지 모르지만 해리스의 가격 폭리 반대 캠페인은 선거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해리스가 아직 구체적인 실행안은 공개하지 않고 있어 “단순한 정치적 수사(修辭)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래도 트럼프보다는 낫다?

법인세 인상과 식료품 가격 통제를 예고하는 등 반시장·반기업 공약을 잇달아 발표하는 해리스에 대해선 산업계를 중심으로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그래도 해리스가 트럼프보다는 덜 재앙적”이란 평가가 많다. ‘무역 쇄국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는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보편적 기본 관세’를, 중국산 수입품엔 60%의 일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하고 있다. 법인세·소득세를 낮춰 국내 생산을 촉진하고, 부족해진 세수를 관세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는 아예 소득세를 관세로 대체해 폐지하는 과격한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엔 부담이 되는 요인이다. 자유 무역이라는 세계 경제의 동력을 흔드는 이 정책이 전 세계 모든 국가를 상대로 한 무역 전쟁을 유발하고, 미국 내 물가를 폭등시킬 것이라는 경고가 경제학자들 사이에선 나오고 있다. 관세가 오르면 결과적으로 수입품 물가가 올라가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다. 이는 결국 미국 내 상품(수입품) 공급의 감소와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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