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한다더니 …'막장극' 된 한미오너家 갈등
한미약품 독자경영 선언
임시주총 통해 이사회 재편
임종윤·종훈 형제
독자경영은 지주사 취지 위배
박재현 대표 전무로 강등 조치
한미약품그룹의 오너 간 갈등이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와 사업회사인 한미약품 간 대결로 비화하고 있다.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임종훈·종윤 형제 측이 장악하고 있어 이를 우회하기 위해 송영숙 회장 모녀와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측이 한미약품 독자경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해 임종훈 대표는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를 전무로 강등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한미약품은 지주사 대표의 인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이날 박재현 대표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본사로 출근해 기존 일정들을 예정대로 소화했다. 전날 임 대표가 박 대표의 직위를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시키고 본사가 아닌 지방 영업장으로 발령을 냈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었던 셈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임 대표는 계열사 임직원에 대한 인사 발령 권한이 없기 때문에 이번 조치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데다 원칙과 절차 없이 강행한 직권 남용의 사례"라며 "박 대표의 권한과 직책에는 변함이 없고, 한미약품은 박 대표를 중심으로 독자경영을 구축해 임성기 선대회장의 '신약 개발 철학'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임 대표가 박 대표에 대해 경질성 인사 조치를 내린 데에는 한미약품의 독자경영 노선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전날 한미약품은 사내 공지를 통해 대표 직속의 경영관리본부를 신설하고 그 안에 인사팀과 법무팀을 꾸리겠다고 밝혔다. 이전까진 지주사에 수수료를 내고 경영관리 업무를 맡겨왔는데 이 같은 종속관계가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인사·법무팀 외에 추가 부서 신설 계획도 밝혔다. 한미약품의 이 같은 행보를 지주사에 대한 도전으로 여긴 임 대표는 이사회 소집 없이도 가능한 선에서 박 대표를 곧장 문책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박 대표가 한미약품 신설 조직을 기습적으로 발표한 게 아니라 사내 공지 전 해당 내용에 대해 임 대표와 한 차례 직접 협의했다"며 "전문경영인 체제의 독립성 강화가 왜 대표의 강등 사유가 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종윤·종훈 형제 측이 박 대표를 오랜 기간 탐탁지 않게 여긴 것도 이번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대표는 임종윤 이사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홍콩 코리그룹과 북경한미 간 부당거래 의혹에 대해 내부감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과정에서 임 이사가 박 대표의 결정에 불만을 가졌을 것이란 분석이다. 또 박 대표가 북경한미 대표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임명한 점도 형제 측이 문제 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초 한미그룹이 OCI그룹과 합병을 논의할 때 박 대표가 찬성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부터 형제에겐 눈엣가시였을 것"이라며 "박 대표가 법무팀장으로 세운 권순기 전무가 라데팡스 출신으로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인물이란 점도 문제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박 대표의 강등조치와 관련해선 형제간에 합의가 이뤄지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선 이번 조직개편을 시작으로 3자 연합이 그룹 지배력을 되찾는 데 속도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한미약품 이사회(정원 10인) 구성은 7대3으로 3자 연합 측 인사가 형제 측보다 많다. 하지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정원 10인)의 경우 형제 측 인사가 5명, 3자 연합 측 인사가 4명으로 뒤져 있다. 이에 3자 연합은 늦어도 10월 내로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현재 공석인 이사 1명을 추가 선임해 형제 측과 동수를 맞출 계획이다. 이사 선임은 과반의 지지만 있으면 되는데, 이미 3자 연합의 지주사 지분율은 48.19%로 우호 지분까지 더하면 절반 이상 확보한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3자 연합은 형제 중 누가 됐든 전문경영인 체제 안으로 들어와서 힘을 보태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그들이 뜻이 없다는 게 드러났다"며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한미약품의 독자경영을 강화함과 동시에 지주사 이사회를 재편하는 데 힘쓸 확률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5월 지주사 공동대표였던 송 회장을 돌연 해임한 데 이어 이번 인사도 갑작스럽게 나온 조치"라며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사회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도 패를 유리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임 대표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말했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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