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위정자들이 남원 망쳤다”…‘민자 관광사업’ 뒤엎은 남원시 ‘400억 빚폭탄’
‘400억 소송 완패’ 남원시 빚더미…파국으로 끝난 장밋빛 민자사업 현주소
‘뒤숭숭한’ 남원…“전임시장 흔적 지우기” vs “문제 사업 끌고 가선 안 돼”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전현직 단체장과 시의회 등 위정자들의 무능이 남원을 망쳤다."
27일 오후 3시쯤 전북 남원 함파우 관광지 내 테마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 카페에서 만난 시민 최 아무개(36)씨의 말이다. 최씨는 민자 개발사업 테마파크의 파국이 누구 잘못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해 "전현직 남원시장과 시의회의 무능이 빚어낸 합작품"이라고 거침없이 답했다.
민선 7기 이환주 전 시장은 면밀한 사업성 검토 없이 업체가 빌린 405억원에 대한 채무 보증을 섰고, 이를 꼼꼼히 따져야 할 시의회는 채무 부담행위(실시협약)를 덜컥 승인해준 책임을 각각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사저널 1월17일자 보도 기사 참조]
"전·현직 시장-시의회, 무능 합작품"
최씨는 "이웃 곡성 기차마을처럼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풍광이 좋은 강과 바다를 낀 것도 아닌 남원 시내 한복판에 설치된 모노레일을 누가 타러 오겠느냐"며 "민간사업 시작 전 시민단체가 이것은 급조한 사업이므로 추진하지 말라고 반대를 했음에도 오히려 시의회는 왜 이렇게 좋은 사업을 하지 않고 있느냐며 5분 발언까지 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며 제동을 걸어 사업을 사지(死地)로 내몬 최경식 현 시장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시장의 소신 발표 이후 개통식은 미뤄지고 사용 승인 허가와 기부채납 등 행정 절차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핫플은 커녕 흉물로 전락한 '남원 테마파크'
이날 찾은 남원 함파우 관광단지 내 테마파크 모노레일 춘향역. 한창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시간에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주인을 잃은 우편물이 문고리에 수북이 꽂혀 있는 가운데 현관문 유리창에는 '2024년 2월 1일부로 운영을 중단합니다'라는 알림문이 출입을 막았다. 모노레일 운행 중단과 동시에 영업이 중단된 듯 1층 카페와 편의점마저 불이 꺼져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2층 역사 승강장에는 운행을 중단한 모노레일 3대가 꼼짝없이 서 있었다. 가끔씩 행인들이 힐끔힐끔 쳐다보고 지나가기도 해 '사고 영업장'임을 실감케 했다. 이곳으로부터 3㎞정도 떨어진 종점 천문대역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남원항공우주천문대 인근 높이 78m짜리 어사와이어(집라인) 탑승장 춘향타워도 인적이 뚝 끊겼다. 남원 관광단지 춘향테마파크~함파우소리체험관~시립김병종미술관을 연결하는 총연장 2.44㎞의 긴 뱀 꼬리 모양의 녹색 레일은 빛바랜 채 생기를 잃고 있었다.
민간 투자사업의 '불편한 진실'…무슨 일이?
춘향골 남원시가 뒤숭숭하다. 전임 시장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며 첫 민간자본 유치사업으로 수백억원을 끌어들여 만든 테마파크가 문을 연 지 2년도 안 돼 문을 닫고 흉물로 방치되면서다. 이 시설은 한때 기존의 관광시설과 연계한 남원 도심 관광벨트 구축은 물론 전북여행의 필수 코스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대주단(돈을 빌려준 금융 기관 등이 모인 단체)과 남원시가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수백억 원대 소송전으로 번졌고 최근 남원시가 1심에서 패소했다.
이번 법원 판결에 따라 남원시는 400억원대 '빚 폭탄'을 떠안게 됐다. 전임 시장이 추진한 사업에 대해 후임 시장이 제동을 걸면서 자치단체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꼴이다. 남원시가 6년 전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로 하고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추진한 대형 관광개발사업의 현주소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17년 남원시가 광한루원 등을 중심으로 남원 관광지 민간사업을 추진하면서 길이 2.44㎞ 규모의 모노레일과 루지, 집와이어 등 레저시설을 지을 민간개발 사업자를 선정한데서 비롯됐다. 민선 7기 이환주 시장 당시인 2020년 6월 테마파크를 완공하고, 민간사업자와 시설물을 시에 기부 채납하는 대신 20년간 민간사업자가 운영권을 갖는 조건의 실시 협약을 체결했다. 민간 개발사업자 남원테마파크(주)는 자기자본 20억 원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405억 원을 대출받고 2022년 6월 남원 어현동에 모노레일과 집와이어 등을 갖춘 놀이시설을 완공했다.
그러나 2022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최경식 시장이 취임하면서 전임 시장이 추진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며 뒤엎으면서 제동이 걸렸다. 최 시장이 사업 재검토에 나서면서 개통식이 미뤄지고 사용승인 허가와 기부채납 등 행정 절차도 중단했다. 이 때문에 테마파크는 두 달 뒤인 2022년 8월 31일에야 임시로 겨우 개장했지만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올해 2월 시설 운영을 중단했다. 직원 19명은 권고사직 당했다.
1심 법원 "남원시가 400억 물어내야"
민간사업자는 행정절차 중단이 경영난을 초래했다며 남원시에 실시협약 해지를 통보했고, 민간사업자에 자금을 투자한 금융대주단은 남원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손해가 청구된 약 408억 가운데 거의 전액을 남원시가 물어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100% 빚보증을 서겠다고 서약한 협약을 남원시가 스스로 검토해 승인했고, 그에 앞서 시의회의 심사와 동의까지 구하지 않았냐며 약속한 대로 돈을 갚으라는 취지다.
전주지법 남원지원 민사부(부장 김유정)는 지난 21일 '남원 관광지 민간 개발사업(모노레일 및 어드벤처 시설 설치사업)'에 408억 원을 빌려준 대주단이 지난해 12월 남원시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남원시가 408억 원과 지연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애초 민간 사업자인 남원테마파크㈜ 대출 원금·이자를 남원시가 전액 보증한다는 취지의 실시협약(MOA)을 근거로 "남원시와 남원시의회 심사와 동의(승인)를 거쳐 대출 약정이 체결됐다"고 판단했다.
또 재판부는 "남원시가 정당한 사유 없이 사용 및 수익허가를 내주지 않아 개장이 지연되고 임시 개장의 형태로 운영되던 중 결국 업체는 실시협약을 해지했다"며 "이후에도 대체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는 등 분쟁의 원인을 제공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남원시는 소송에서 '주무 관청은 협약 해지 후 1년 안에 대체 시행자를 선정해야 하고, 대체 시행자가 대출 원리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남은 재산 처분 등을 통해 대출 원리금을 대주단에 배상해야 한다'는 협약 19조를 독소 조항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시는 "남원테마파크㈜ 측이 처음부터 사업 성공엔 관심이 없고, 공사비 등으로 이익을 얻은 후 지자체 자금에 기대 대출금 상환 의무를 해결할 의도로 실시협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손해배상액을 남원시에 전액 전가하는 실시협약의 위법성(무효)을 주장한 것이다.
최경식 시장도 지난달 열린 시민공청회에서 "사업이 잘되면 그에 따른 운영이익을 취하고 반대로 사업이 안 되면 사업을 포기해 지방자치단체인 남원시의 재정으로 대출 원리금 손해배상책임을 전부 부담하는 불합리한 구조"라며 "이 같은 사항은 지방재정법 제13조와 지방자치법 제47조를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관련 협약을 무효라고 판단하려면 묵과할 수 없는 하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볼 만한 사유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락가락 행정을 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남원시는 408억원의 투자비와 지연이자를 물어야 할 처지다.
남원시 "실시협약에 독소조항, 사업성 부풀려져"
민선 8기 남원시는 이 사업을 '전문적인 금융 지식으로 무장한 민간개발 사업자가 실시협약을 근거로 지자체를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취하려 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부도 등을 이유로 민간사업자가 테마파크를 운영하지 못하면 대출 원금과 이자를 남원시가 대신 갚아야 한다는 취지의 협약 19조를 대표적 독소 조항으로 지적하면서 협약 변경을 추진했다.
시는 2022년 9월 22일 발표한 감사 결과를 통해 "전임 시장 때 시가 면밀한 수익성 검토 없이 업체가 빌린 405억원 채무 보증을 섰다"며 "자칫 수백억원의 빚을 떠안을 우려가 있는데도 사업 검토를 소홀히 한 담당 공무원 5명을 징계했다"고 밝혔다.
최경식 시장도 이날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 사업과 관련해 자체 감사 결과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최 시장은 "그간 각계에서 제기된 공사비 과다 논란 등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사업 전반에 대한 특정감사를 실시한 결과 실시협약서 및 자금조달계획의 검토 소홀, 행정절차 상 문제점(투자심사 미이행 등) 등을 다수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남원시는 '사업성이 부풀려졌다'고도 주장했다. 사업자 측은 짚와이어 유료관광객은 연간 13만 명으로 계산해 일일 평균 448명 방문 총 1379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간 60억 원의 매출로 인건비 등 운영비 29억 원을 제외하고 31억 원의 순이익을 창출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모노레일의 경우 남원테마파크 측이 시에 준 자료에 따르면 예상 탑승객이 연간 27만명으로 하루 931명 수준이지만, 실제론 하루 396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나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수익구조라는 것이 남원시의 설명이다.
사업자 "최경식 시장이 행정 연속성 무시"
반면 남원테마파크 측은 "대주단이 사업성·신용 등을 엄밀히 평가해 돈을 빌려줬고, 계약서 초안은 행정 인력이 검토했다"며 "남원시와 시의회에서 필요한 시설이라고 해서 몇 년간 일사천리로 사업을 추진해 놓고, 이제 와서 협약을 어기고 사업자를 '도둑'이라고 욕하니 억울하다"고 반박했다.
이 사업을 직접 추진한 이환주 전 남원시장도 해명에 나섰다. 이 전 시장은 올해 3월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노레일 사업과 관련해 '저와 공무원들이 금품을 착복했다'는 등의 흑색선전이 유포되고 있다"며 "이는 근거 없는 음해성 흑색선전"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제22대 총선 예비후보로 출마한 이 전 시장은 "모노레일은 남원시장으로 재임 시절에 민간개발사업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완성한 사업"이라며 "그 사업이 후임시장이 들어와 영업개시(사용승인) 허가가 제대로 나지 않고 사업에 대한 근거 없는 부정적인 소문과 분위기로 인해 어려움에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개발 사업자가 현 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서 지난해 12월 남원시가 잘못한 행정행위에 대해 손해를 배상해 주라는 법원 판결이 났다"며 "사업 당시 사업협약에 대한 잘못된 내용이 전혀 없고 민간개발사업자가 건설 과정에서의 폭리는 근거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실제 남원테마파크는 2022년 7월 "남원시가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아 두 달간 문을 열지 못해 피해를 봤다"며 남원시를 상대로 5억7000만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지난해 12월 7일 "남원시는 1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당혹' 남원시 "부족한 부분 검토 후 항소"
그간 전임 시장이 벌인 사업이라며, 수백억대 빚을 떠안는 독소조항을 이유로 협약 무효까지 주장하며 선을 긋고 여론전을 벌여 온 남원시. 시는 1심 패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항소할 뜻을 밝혔다.
남원시 관계자는 "'끝까지 간다"는 기본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며 "1심 판결에서 부족한 부분을 검토해 전략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안팎에선 잇단 소송전을 두고 "테마파크 개발은 남원시가 전액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추진한 첫 사업인데 뒤늦게 후임 시장이 전임자 흔적 지우기식으로 문제 삼으면 누가 앞으로 남원에 투자하겠느냐"는 비판론과 "문제투성이 사업을 계속 끌고 가는 게 되레 시민에게 불이익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옹호론이 엇갈린다.
이와 무관해 다수 시민들은 채무가 누구 때문에 발생했는지, 누가 배상 책임을 져야하는지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원판 제2 레고랜드' 사태 우려…행안부 '중점 관리'
일각에선 "남원판 제2의 레고랜드 사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강원도 춘천의 레고랜드 사태는 2022년 9월 28일 김진태 도지사가 레고랜드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시장에서 한국의 채권 신용도가 폭락한 사건을 말한다.
강원도는 레고랜드 개발에 들어간 250억 원 규모의 PF 대출을 남원시처럼 전액 보증했다. 이 가운데 400억대 빚을 떠안게 되자 강원도지사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파장은 의도치 않게 자금시장으로 번졌다. 지자체가 보증한 우량채권이 부실채권이 되자 채권시장이 공황에 빠져 민간기업의 돈줄이 줄줄이 막힌 것이다. 정부가 시장 안정을 위해 50조 원을 투입하겠다며 진화에 나서자, 강원도는 뒤늦게 2000억대 보증 약속을 지키겠다며 말을 주워 담았다.
남원시의 경우도 국가적인 혼란으로 비화된 '강원 레고랜드 사태'와 흡사하게 전개되는 모습이다. 민간사업자가 사업계획을 담보로 한 'PF대출'로 끌어온 돈은 정확히 405억 원에 달한다. 남원시가 전액 빚보증을 섰는데 재작년 취임한 신임 최경식 시장이 '독소조항'이라며 약속을 뒤집었고, 돈을 빌린 민간 사업자마저 수개월 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상황이다.
이처럼 춘천 레고랜드 사태와 비슷하게 상황이 전개되면서 자본시장에 소용돌이가 될 가능성까지 거론돼 파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수백억대 빚더미만 남기고, 지자체의 빚보증 약속도 공중에 뜬 남원시 관광개발사업 역시, 채권시장에 소용돌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 전 미래에셋 애널리스트는 "지자체들이 앞으로 지역개발하거나 지방경제 살리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데, PF 신뢰에 대해 문제가 생기면, 향후 자금조달이라든지 아니면 투자유치가 제대로 안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는 금융시장에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뒤늦게 남원시 사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방침이라고 밝혔다.
남원시가 소송을 끝까지 이어간다고 하지만 민간사업자가 받은 대출을 남원시가 전액 보증을 서면서 결국 시민이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악의 경우 400억대 시민 혈세를 빚 갚는데 써야 할지도 모르는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분별없는 빚보증으로 추진된 지자체의 민자 개발사업이 재정 출혈은 물론 뒷날까지 두고두고 시 행정에 오점으로 남지 않을 지에 대한 걱정으로 시민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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