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받지 못한 ‘프락치 강요’…국가는 왜 저리 당당한가요”

장현은 기자 2024. 8. 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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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설명할 때 몇 번이고 항상 처음부터 말하던 아빠의 버릇, 깊이 잠들지 못해 항상 자주 깨고 낮잠도 꼭 자야만 했고, 항상 피곤해했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다 설명이 됐던 진술들을 아빠의 긴장된 목소리로 듣자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해줬다고, 아니 해줄 수 있는 게 왜 없다고 저렇게 당당한가요."

이봄씨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서관 앞에서 부친 고 이종명 목사와 함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가서 피해 진술을 하던 날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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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종명 목사 딸 이봄씨
재판부, 피해자들 항소 기각
정부는 진화위 권고 이행 안해
29일 오후 서울고법 서문 앞에서 고 이종명씨의 딸 이봄씨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장현은 기자

“뭔가를 설명할 때 몇 번이고 항상 처음부터 말하던 아빠의 버릇, 깊이 잠들지 못해 항상 자주 깨고 낮잠도 꼭 자야만 했고, 항상 피곤해했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다 설명이 됐던 진술들을 아빠의 긴장된 목소리로 듣자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해줬다고, 아니 해줄 수 있는 게 왜 없다고 저렇게 당당한가요.”

이봄씨는 29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서관 앞에서 부친 고 이종명 목사와 함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에 가서 피해 진술을 하던 날을 떠올리며 울먹였다. 이종명 목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0년대 군에 끌려가 학생운동 동향 밀고를 요구받은 ‘프락치 강요’ 활동의 피해자다. 이 목사는 2022년 11월 진화위로부터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이후 같은 프락치 강요 피해자 박만규 목사와 함께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 과정에서 정부는 진화위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이들이 제기한 3억원 규모의 위자료 중 9천여만원만 인정했다. 이들은 항소를 제기했지만 이 목사는 1심 판결 이후 지병인 우울증이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8-1부(재판장 김태호)는 이날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의 항소를 기각한다고 밝히며 1심과 동일한 결론을 내놨다. 정부는 1심 이후 항소를 포기했다. 원고 쪽은 “정부가 진화위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2차 가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라지지 않았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 6월 피고인 대한민국 쪽에 진화위 권고사항 이행 여부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지난 2022년 11월 진화위는 정부에 △국가사과 △병역의무 이행과정에서 부당한 인권침해 재발 방지 △피해회복 조치 △피해사실 조사기구 설치 △의료접근권 강화 등 5가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정부와 원고 쪽이 제출한 서면을 종합하면 사과를 제외한 4가지는 진화위 권고 이후 1년8개월 동안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이행했다고 하는 국가 사과 역시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의 언론을 상대로 한 ‘보도자료 사과’뿐이었다. 당사자인 이 목사와 박 목사 쪽에는 연락이 없었다.

이봄씨가 기자회견을 위해 적은 메모. 항소심 인용 여부에 따라 두 가지 버전을 준비했다. 장현은 기자

피해자 쪽은 선고 직후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상고 의사를 밝혔다. 박만규 목사는 “소송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진화위 결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과 원고들의 권리가 소멸했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라며 “40년 만에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40년 전 논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보도자료를 통한 사과 이후에도, 똑같은 논리를 가지고 소송에 임했다”며 “법무부 장관이었던 한동훈씨의 사과는 쇼였고,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단 생각이 들었다”며 선고 결과에 실망을 표했다. 이봄씨 역시 “왜 기각하는지 이유를 알려주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해달라”며 울먹였다.

“오늘 이 판결로 본인들이 프락치였다는 이유만으로 가해자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괴로워하시는 국가폭력 피해자분들도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본인들도 피해자라는 걸 알아주시고 그만 괴로워하시길 바랍니다.” 기자회견 이후 이봄씨는 수첩에 꾹꾹 눌러쓴 메모를 보여줬다. 재판부가 항소를 받아들일 때 말하려 준비한 이 문장을 이봄씨는 끝내 읽지 못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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