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서 한파로 숨진 ‘속헹’…국가 손배는 패소

장현은 기자 2024. 8. 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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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눈 이엠, 난 님씨. 피고 대한민국.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캄보디아 출신의 눈 이엠과 난 님 부부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딸의 죽음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유족은 "고용허가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송출 과정부터 사업장 배치, 사업장 변경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장하고 있는 제도"라며 정부가 속헹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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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 비닐하우스 숙소서 숨져
산재 인정받고…한국 정부 상대로 1억원 손배 소송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 속헹이 한파 경보가 내려진 지난 2020년 12월20일 경기 포천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2020년 12월23일 오후 숨진 노동자가 일하던 비닐하우스와 숙소에서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 김달성 평안교회 목사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농장 대표는 기자들이 찾아오자 경찰을 불러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포천/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원고 눈 이엠, 난 님씨. 피고 대한민국. 주문.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캄보디아 출신의 눈 이엠과 난 님 부부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딸의 죽음에 대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이들의 딸 속헹(당시 31살)이 사망한 지 3년8개월만에 나온 선고다.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 속헹은 2016년 한국에 입국해 2018년부터 포천시의 한 농장에서 채소를 수확하는 일을 했다. 농장 기숙사는 샌드위치 패널의 비닐하우스 가건물이었는데, 전기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난방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이 농장에서 맞은 세 번째 겨울, 한파가 이어지던 2020년 12월20일 속헹은 숙소에서 숨진 상태로 동료노동자에게 발견됐다.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혈관파열, 합병증’이었다. 이주노동자 단체 등은 건강 관리를 할 수 없는 주거 환경에서 병이 악화됐다며 속헹의 죽음을 ‘사회적 죽음’이라 규정했다. 속헹의 죽음은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권 문제를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속헹은 2022년 5월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4개월 뒤인 2022년 9월 속헹의 부모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고용허가제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송출 과정부터 사업장 배치, 사업장 변경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장하고 있는 제도”라며 정부가 속헹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 기숙사를 제공하는 사업장에서 이주노동자가 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알선하고 고용허가를 내줬으며, 건강진단 점검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주거환경은 괜찮은지 등의 점검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 쪽은 “단순히 고용허가제의 구조적 부실이나 담당 공무원이 사업장을 충분한 지휘·감독 하지 않았단 사실만으로는 구체적 위법성, 불법성, 인과관계의 직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49단독 조영기 판사는 29일 “외국인 근로자의 주거권, 건강권은 국내 근로자와 동일하게 인정되고 국가 배상법상의 국가책임 판단 역시 동일한 잣대에서 내려야 한다”면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망인의 사망과 국가의 부작위 부분이 상당인과관계가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유족 쪽을 대리한 최정규 변호사는 “고용허가제도 아래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 정부만을 믿고 입국을 해서 일을 하는데, 이주노동자 사업장에 더 엄격해야 할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너무 좁게 해석한 것”이라며 “사용자의 책임뿐 아니라, 그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정부의 잘못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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