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 기본권' 다룬 아시아 첫 기후소송…일부 인정 결실

이대희 2024. 8. 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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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 4년 만에 "2031년 이후 공백, 미래에 과중한 부담" 헌법불합치
일부 기각됐지만 유럽·미국 판결 발맞춘 첫걸음…일본 등 영향 줄 듯
착석하는 헌재재판관들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9일 오후 헌법소원·위헌법률 심판이 열린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입장해 착석하고 있다. 2024.8.29 saba@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어린이·청소년에 태아까지, 대한민국 미래 세대들이 주축이 돼 아시아 최초로 제기한 기후소송이 4년간의 심리 끝에 일정 부분 열매를 맺었다.

2031∼2049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공백은 정부가 환경권을 침해한 것으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끌어낸 점에서다.

다만 가장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던 2030년까지의 감축 목표에까지 전향적 판단이 나오지는 않아 첫 시도는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 됐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기후 위기 헌법소원은 2020년 3월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첫발을 뗐다.

이들은 당시 저탄소녹생성장기본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소극적이기 때문에 청소년의 생명권·환경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아시아 최초의 기후 소송이었다.

2021년 10월에는 같은 문제의식으로 시민단체와 정당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2022년 6월에는 당시 태명이 '딱따구리'인 20주 차 태아(이후 같은 해 10월 출생)를 비롯해 2017년 이후 출생한 아기 39명과 6∼10세 어린이 22명도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재는 첫 청구 후 4년 만인 올해 4월 이같은 소송을 병합해 첫 공개변론을 열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갔다. 이 역시 아시아 최초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청구인 측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법)과 시행령, 국가 기본계획 등에서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설정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문제 삼았다.

이같은 정부의 대응은 충실하지 못해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온실가스 40% 감축 자체가 기존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것으로, 제조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주요 선진국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이 늦은 점 등을 고려하면 경제계·산업계에서 느낄 부담이 크다고 반박했다.

마지막까지 최종진술 연습하는 한제아 어린이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국내 첫 기후소송 2차 변론 시작에 앞서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인 한제아 어린이가 최종 진술문을 확인하고 있다. 헌재는 20년부터 23년까지 제기된 기후 소송 4건을 병합해 심리하고 있으며 이르면 올해 9월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2024.5.21 superdoo82@yna.co.kr

5월 열린 두 번째 공개 변론에서는 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12) 학생이 청구인 대표로 직접 출석해 미래세대 당사자로서 "기후변화와 같은 엄청난 문제를 우리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은 절대로 공평하지 않다"며 어른들의 전향적인 결정을 촉구했다.

결정권을 쥔 재판관들은 2030년 이후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기까지 감축 목표량이 없으며, 정부 발표상 감축 목표연도와 목표점이 계속 변경되면서 투명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져 시선을 끌기도 했다.

결국 헌재는 이날 정부가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감축목표를 규율한 것"이라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환경권을 침해했으므로 2031년 이후 기간에 대해서도 법률에 직접 규정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만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로 기각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은 비록 전면적인 판단은 아니지만 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흡하다는 다른 국가의 선행 판결에 일부 발맞춘 '첫걸음'으로 받아들여진다.

네덜란드 환경 단체는 정부의 기후 변화 조치가 불충분하다며 2013년 소송을 제기했고, 2019년 네덜란드 법원은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는 이른바 '위르헨다 판결'을 했다. 기후소송의 시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2021년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55% 감축'이라는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이에 따라 독일 연방정부와 의회는 법을 개정해 2030년 감축 목표를 55%에서 65%로 올리고, 2040년 목표를 88%로 신설했다. 탄소중립 시기도 2050년에서 2045년으로 당겼다.

이밖에 프랑스, 아일랜드, 미국 몬태나주 법원, 유럽인권재판소에서도 기후 소송에서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다.

기후 대책에 대한 정부 정책이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점을 우리 헌재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일부라도 인정하면서,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있는 대만·일본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소송 판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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