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실린 간호사, 힘 빠진 의사…안갯 속 의료정국은?
'두 고래'(정부와 의사집단)의 싸움에 6개월 넘게 힘들어한 간호사들에게 힘이 실렸다. 전날(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사들의 숙원인 간호법안이 통과되면서 이들에게 승기가 쥐어졌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집단은 정부가 내년과 2026년 의대증원 규모를 못 박은 데 대해 "의대 교육의 질이 얼마나 잘 유지되는지 감시하겠다"라고도, 간호법이 통과된 데 대해 "더는 의정 대화할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밝혀, 사실상 정부의 의대증원책을 막는 데 힘이 빠진 분위기다.
29일 전국적으로 예고된 병원 총파업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호사가 전체 구성원의 60%가 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당초 29일 총파업을 예고했지만, 이들 노조가 소속된 전국 62개 병원 중 58곳에서 임금 등 협상이 타결되면서 전날 간호법의 본회의 통과 이후 또 한 번 승기를 잡은 셈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은 노조가 병원 측에 임금 6.4%를 올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장시간 협상 끝에 1%대 올리는 데 합의했다. 29일 이 대학병원 관계자 A씨는 "병원 재정난이 심해진 현 상황에서 임금 인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인상 폭은 요구한 만큼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간호사들의 요구가 관철된 셈"이라고 언급했다.
간호사들은 업무 범위를 명확할 법적 근거인 간호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다, 재정난 속 임금 인상까지 성공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간호계에선 PA 간호사를 포함한 간호사들의 전반적인 지위가 안정화하면서 숙련된 간호 인력이 현장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본다. 특히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환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간호법 29조에선 병원급 의료기관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백찬기 대한간호협회 홍보국장은 "간호사들이 과중한 업무로 환자들 응대를 바로 못 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었다며 "(하위 법령을 통해) 간호사가 제대로 간호할 수 있도록 담당하는 환자 수부터 바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 임금 협상 타결을 계기로 전공의들이 돌아올 자리는 사라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학병원 관계자 B씨는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상황에서 간호사들이 전공의의 업무까지 떠안았는데, 병원이 전공의에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 아낀 돈으로 간호사 등 의료 인력에 임금을 인상한 셈"이라며 "결국 병원 내 전공의가 다시 들어오기 힘든 구조로 체질이 바뀔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간호법이 제정돼 PA(진료지원) 간호사가 합법적 직역으로 인정되면 전공의 자리는 사실상 사라질 것이란 게 의사집단의 경고다. 전국의과대학교수비상대책위원회·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대한의학회·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7일 공동 성명서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PA 간호사 활성화는 전공의들에게 의료 현장에서 떠나라고 부채질하는 정책"이라면서, "불법적으로 간호사에게 의사의 업무를 시키는 일부 관행을 합법화하는 정책으로 엄습하는 의료 파탄을 해결할 수 없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더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PA 간호사로 채우면 앞으로 전공의 수련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전공의 수련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간호사를 의사로 둔갑시키는 발상으로 밖에 달리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간호사가 두 차례 승기를 잡자, 의협의 동력은 크게 떨어졌단 분석이 나온다. 지난 28일 의협 최안나 총무이사 겸 대변인은 일일 브리핑에서 "여야가 졸속으로 간호법안을 처리하면서 양당에 해결점을 기대하는 것을 포기했다"며 한숨지었다. 또 정부가 내년과 20206년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해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그는 "의협은 의대 증원 후 의대의 교육 질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엄중히 평가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사실상 의대증원을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을 자인한 것으로, 증원은 막지 못하되 증원 이후 대응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의협은 28일 "'불법간호신고센터'를 마련했다"며 "국민들께서는 PA 간호사의 불법 진료 행위를 확인하면 신고해달라"고 대국민 호소했다. 하지만 간호법안이 제정에 탄력받는 상황에서 PA 간호사의 업무가 불법에서 합법의 영역으로 옮겨올 것이 확실시되자 이마저도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나온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C 교수는 "임현택의 말(정책)은 믿을 게 없다. 믿지 않아도 된다"고 쓴소리를 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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