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의 AI시대] 〈13〉장기적 관점의 AI 육성체계가 필요하다
얼마 전 개최된 파리 올림픽에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장면이 있다. 메달 시상식에서 선수들이 '갤럭시Z플립6'를 손에 들고 촬영하는 사진이다. 삼성전자가 올림픽 참가선수 전원에게 지급했던 이 스마트폰은 자체 인공지능(AI) 모델인 '갤럭시 AI'를 최초로 탑재한 제품이었기에 더욱 많은 관심을 끌었다. 애플 역시 다음달 출시 예정인 아이폰 16에 자체 AI 모델 '애플 인텔리전스'를 탑재할 전망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6시간 이상을 사용하는 스마트폰에 생성형 AI를 탑재한다는 것은 이제 AI 서비스가 우리 삶의 일부분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기술 트렌드의 변화 속에 AI 산업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요소가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AI 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법령과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간 여러 전문가들은 AI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합리적으로 규제하기 위한 AI기본법 제정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여러 이슈로 인해 21대 국회에서 AI기본법이 통과되지 못했고, 그 역할은 22대 국회로 넘어왔다. 현재 국회에는 안철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 등 총 7건의 AI기본법(안)이 발의돼 있다. 하지만 아직 한 건도 소관 상임위 심사를 거치지 못한 채 국회에 머물러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을 받아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되는 AI기본법 이외에도 산업통상자원부 주도의 AI산업 활용 촉진법, 방송통신위원회 주도의 AI 서비스 이용자 보호법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AI 개발 개인정보 가이드라인을, 문화체육관광부는 AI 저작권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AI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러 부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법안과 가이드라인으로 인해 규제 충돌은 현실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AI 신뢰성 검·인증제도'와 방송통신위원회의 'AI 생성물 워터마크 제도'는 다른 부처의 법안 및 업무계획과 중복돼 있으며, 업계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각 부처가 해당 업무와 관련하여 물샐 틈없는 AI 정책을 준비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개별 부처 단위의 정책 추진으로 인해 '규제 총량'이 늘어나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할 AI 기업에 족쇄를 채워서는 안된다. AI 산업 육성과 관련해 각 부처가 협조해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함은 물론, 각 부처를 지휘할 수 있는 AI 정책의 컨트롤타워를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AI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중요한 사항은 현장 감각을 지닌 AI 전문가들로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일이다. 또 민·관·학이 함께 중요 어젠다를 논의할 수 있는 분과위원회를 구성하고, 각계의 혜안을 모아야 한다. 또 기존에 AI 정책을 추진해 왔던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과의 역할 조정도 명확히 해야 한다.
세계 주요 국가들은AI 관련 법, 제도를 정비하고,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컨트롤타워 구성을 마쳤다. 미국은 2020년 국가AI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하고, AI 산업 육성을 위해 17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EU 또한 AI법 제정을 통해 산업 육성과 규제 기준을 명확히 마련했다.
이제 우리도 예측 가능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AI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의 사기를 제고해야 한다. 더불어 사후 규제, 중복 규제가 AI산업을 이끌어갈 민간 기업과 혁신 스타트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네거티브 규제 위주의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빅데이터'가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 때 데이터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부처 간 갈등으로 야기되었던 혼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데이터기본법, 산업디지털촉진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데이터 관련 중복 입법과 상이한 규제로 인해 산업계가 겪었던 어려움을 반복해서는 안된다. 더이상 '따로국밥' 식의 부처 단위의 정책 추진은 지양해야 한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은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가까운 과거를 돌아보면 된다. 성공의 비결은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데 있다. 지금이 바로 장기적 관점의 AI 육성체계를 정립할 시기다.
황보현우 홍콩과기대(HKUST) 겸임교수·전 하나금융지주 그룹데이터총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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